grey room
enough, enough.
papyrus
2010. 3. 18. 03:14
기억을 섬세하게 갈무리하는 데 별 재주가 없는 나는 '네 인생에서 가장 *** 했던 순간?' 같은 질문을 받으면 항상 말문이 막힌다. 물론 삶이 원체 밋밋한 탓도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예각화된 기억들도 평평하게 만들어서 기억의 무덤 속에 파묻어버리고 잘 끄집어내지 못하는 내 습성이 결국 삶을 그렇게 밋밋하게 만든 데 일조했다는 것이 더 옳을 듯하다. 그래서이기도 할 것이고, 또 별로 살가운 딸이었던 적이 없던 터라, 나는 20년 넘게 나의 아버지로 살아오셨던 어른에 대해 두드러진 기억이 많지 않다. 사춘기의 반항이 조금 기억나지만, 그건 아버지를 어떤 구체적인 상으로 그려낼 수 있게 하는 기억이기보다는 아버지에게 반응했던 나의 행동들, 나의 감정들이 기워진 몇 조각 기억의 넝마 같은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그 기획 자체가 -다행히도- 무산되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 때, 아버지의 제자들이 고인에 대한 기억을 담은 글들을 친지와 지인들이 써서 책으로 묶자고 했을 때 몹시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대학시절부터 또 직장인이 된 이후에도 항상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관심을 가졌던 아버지는, 처음부터 '좌파 진보 지식인'이라기보다는 '건전한 보수'를 지향했던 것 같다. 민주화는 일종의 수단이자 과정이기도 하면서, 일종의 '체계'이자 '틀'로서 정착시켜야 할 것으로 보셨던 것 같다. 그런 분이여서 그랬던 것 같다. 나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사건'이라기보다 구체적인 '삶의 지침들', 즉 언어로 남아있는 것이 많다. 언제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반드시 낳아야 하고, 공부는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서 하고 등등. 헌데 애석하게도(?) 아버지가 기대했던 그런 내 삶의 거푸집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게 좀 다른 점인 것 같다. 아버지에게 삶이란, 잘 만들어진 거푸집 하나에 쇠붙이를 녹여부어 만들어진 주물 같은 것이었다면, 내게는 그것이 단단한 재료를 제각각의 손길로 깎아 만든 조각이거나, 점토 따위를 뭉쳐 저마다의 형상을 빚어내는 소조에 가깝게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아버지의 가르침이 모두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것은 물론 아버지의 가르침이 아버지만의 특별한 가르침이 아니라 대단히 보편적인 가르침들 가운데 하나여서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내게 유난히 의미있게 다가오는 말들이 종종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다른 사람 뒷말 하지 말라'는 것과 '아는 것보다 적게 말하라'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둘은 모두 말에 관해 경계를 시키는 점에서 서로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도 같다. 말에 관해 무게를 많이 싣고 신중하도록 했던 점은, 아버지에게 너무 많이 듣다보니 점점 인이 박여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내 성향상 그런 가르침에 일찌감치부터 동의가 돼서 그랬던 건지는 몰라도, 나에게 오랜 시간 중요한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다른 사람 뒷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은 아버지가 엄마의 가장 큰 미덕 가운데 한 가지로 서슴없이 꼽았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삶이 나에게 그다지 관대하지 못했던 탓이기도 할 것이고, 내가 너무 나약하기도 했을 것이고, 나는 그런 삶의 지침과는 거리가 너무 멀게 살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언어에 대해 지나치게 엄숙하고 진지했던 내 무게가 좀 덜어져서 내가 한결 가벼워졌다는 긍정적인 면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긍정성으로 무마해 버리기엔, 내가 너무 많은 말의 그물 속에 걸린 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건 뒷담화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지금처럼 뒤섞여 살아가는 한, 서로를 통 견딜 수 없는 관계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차라리 키드니나 벨로가 말한 친구관계나 사회생활에 대해 우리가 갖는 '근본적인' 딜레마와 문제점과 더 가깝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그것이 인간적으로 친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든, 아니면 거리를 유지하는 프로페셔널한 관계가 되었든, 우리는 모두가 서로의 삶에 대해 넘치게 많은 말들을 한다. 그러면서 정작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해야만 하는 말, 하고 싶은 말들은 모두 감춘 채 제대로 꺼내 보지도 못한다. 그게 고이다 보니 어느 순간 다른 방향으로 흘러서 뒷담화가 되는 건 차라리 당연한 거 아닌가.
이상하게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세포단위로까지 보든, 육안으로 저 멀리 떠 있는 별들을 바라보듯 보든, 비슷한 문제에 부딪친다. 이상하게도 '사생활'의 문제에 엉겨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가까운 사람들은 관심과 애정이라는 이유로 현미경까지 들이대고 보면서 실낱 하나마저도 낱낱이 쪼개려들듯 하고, 멀리 있는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그다지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거리감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공통된' 사안이라면서 자신과는 전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생활'에 대한 관심으로만 서로를 겨우 얼기설기 엮는다. 그런데 나는 너무 밀착해서 거의 간격이라고는 없는 인간관계에서 내 삶을 해부당하는 것에도, 개인으로서의 나에 대한 아무런 관심도 없이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는 듯한 태도로 멀찍이서 내 삶의 문제를 깔짝거리는 태도에도 질린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이 다른 사람이 내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만을 일방적으로 가리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나 역시도 그런 일상 안에 함몰되어 주변과 전체를 조망하는 시각을 잃어버리면서, 순식간에 그런 시점에 고정된 채 사람들을 바라보고 -무엇보다- 무서운 말의 거미줄을 자아내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이 의미를 잃은 말의 거미줄은 그것에 걸린 희생물 위로 마치 고치를 만들듯 감아들어 숨통을 죄어든다. 그리고 그런 삶이 오래 지속될수록 나는 점점 내 말의 그물에 걸려 파닥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 말이 겹겹이 그들을 덮어 들어가 숨구멍조차 남기지 않게 되어도, 일말의 가책이나 감흥조차 느끼지 않게 되어버린다.
의미있는 관계 안에서, 칭찬이 됐든 욕이 됐든 사랑의 고백이 됐든 이별의 통보가 됐든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가 친 거미줄이 엉켜버린 채로,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쟤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계산하며 실의 원류가 어디서 왔는지 찾으려 드는 짓도 그만하고 싶고, 또 '관심'이란 이름으로 간섭하지만 실은 상대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하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적용되는 '공통의 관심사'를 들이대서 각자의 돌출된 삶을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납작하게 눌러버리는 짓도 정말, 그만하고 싶다. 진실이 얼마나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고려하여 몇 그램(g)의 거짓을 관계 안에 타도 되는지 계산하지 않고, 진실로도 충분한 관계 안에서 살고 싶다, 진심으로.
@ 아버지와 기억의 문제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낸 거 같지만, 결과적으로 별 상관은 없었다는 거- ㅋ
대신 글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보니, <러브 액추얼리>에서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자책감 때문에 유난히 차갑게 그녀를 대하던 남자가, 결국 크리스마스를 틈 타, '선'을 넘지 않으면서 그녀에게 진실을 말했던,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enough, enough.)"고 혼잣말처럼 되뇌던 것이 이 순간 문득 떠올라 제목을 그렇게 붙였다는 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대학시절부터 또 직장인이 된 이후에도 항상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관심을 가졌던 아버지는, 처음부터 '좌파 진보 지식인'이라기보다는 '건전한 보수'를 지향했던 것 같다. 민주화는 일종의 수단이자 과정이기도 하면서, 일종의 '체계'이자 '틀'로서 정착시켜야 할 것으로 보셨던 것 같다. 그런 분이여서 그랬던 것 같다. 나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사건'이라기보다 구체적인 '삶의 지침들', 즉 언어로 남아있는 것이 많다. 언제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반드시 낳아야 하고, 공부는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서 하고 등등. 헌데 애석하게도(?) 아버지가 기대했던 그런 내 삶의 거푸집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게 좀 다른 점인 것 같다. 아버지에게 삶이란, 잘 만들어진 거푸집 하나에 쇠붙이를 녹여부어 만들어진 주물 같은 것이었다면, 내게는 그것이 단단한 재료를 제각각의 손길로 깎아 만든 조각이거나, 점토 따위를 뭉쳐 저마다의 형상을 빚어내는 소조에 가깝게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아버지의 가르침이 모두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것은 물론 아버지의 가르침이 아버지만의 특별한 가르침이 아니라 대단히 보편적인 가르침들 가운데 하나여서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내게 유난히 의미있게 다가오는 말들이 종종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다른 사람 뒷말 하지 말라'는 것과 '아는 것보다 적게 말하라'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둘은 모두 말에 관해 경계를 시키는 점에서 서로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도 같다. 말에 관해 무게를 많이 싣고 신중하도록 했던 점은, 아버지에게 너무 많이 듣다보니 점점 인이 박여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내 성향상 그런 가르침에 일찌감치부터 동의가 돼서 그랬던 건지는 몰라도, 나에게 오랜 시간 중요한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다른 사람 뒷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은 아버지가 엄마의 가장 큰 미덕 가운데 한 가지로 서슴없이 꼽았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삶이 나에게 그다지 관대하지 못했던 탓이기도 할 것이고, 내가 너무 나약하기도 했을 것이고, 나는 그런 삶의 지침과는 거리가 너무 멀게 살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언어에 대해 지나치게 엄숙하고 진지했던 내 무게가 좀 덜어져서 내가 한결 가벼워졌다는 긍정적인 면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긍정성으로 무마해 버리기엔, 내가 너무 많은 말의 그물 속에 걸린 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건 뒷담화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지금처럼 뒤섞여 살아가는 한, 서로를 통 견딜 수 없는 관계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차라리 키드니나 벨로가 말한 친구관계나 사회생활에 대해 우리가 갖는 '근본적인' 딜레마와 문제점과 더 가깝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그것이 인간적으로 친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든, 아니면 거리를 유지하는 프로페셔널한 관계가 되었든, 우리는 모두가 서로의 삶에 대해 넘치게 많은 말들을 한다. 그러면서 정작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해야만 하는 말, 하고 싶은 말들은 모두 감춘 채 제대로 꺼내 보지도 못한다. 그게 고이다 보니 어느 순간 다른 방향으로 흘러서 뒷담화가 되는 건 차라리 당연한 거 아닌가.
이상하게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세포단위로까지 보든, 육안으로 저 멀리 떠 있는 별들을 바라보듯 보든, 비슷한 문제에 부딪친다. 이상하게도 '사생활'의 문제에 엉겨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가까운 사람들은 관심과 애정이라는 이유로 현미경까지 들이대고 보면서 실낱 하나마저도 낱낱이 쪼개려들듯 하고, 멀리 있는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그다지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거리감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공통된' 사안이라면서 자신과는 전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생활'에 대한 관심으로만 서로를 겨우 얼기설기 엮는다. 그런데 나는 너무 밀착해서 거의 간격이라고는 없는 인간관계에서 내 삶을 해부당하는 것에도, 개인으로서의 나에 대한 아무런 관심도 없이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는 듯한 태도로 멀찍이서 내 삶의 문제를 깔짝거리는 태도에도 질린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이 다른 사람이 내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만을 일방적으로 가리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나 역시도 그런 일상 안에 함몰되어 주변과 전체를 조망하는 시각을 잃어버리면서, 순식간에 그런 시점에 고정된 채 사람들을 바라보고 -무엇보다- 무서운 말의 거미줄을 자아내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이 의미를 잃은 말의 거미줄은 그것에 걸린 희생물 위로 마치 고치를 만들듯 감아들어 숨통을 죄어든다. 그리고 그런 삶이 오래 지속될수록 나는 점점 내 말의 그물에 걸려 파닥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 말이 겹겹이 그들을 덮어 들어가 숨구멍조차 남기지 않게 되어도, 일말의 가책이나 감흥조차 느끼지 않게 되어버린다.
의미있는 관계 안에서, 칭찬이 됐든 욕이 됐든 사랑의 고백이 됐든 이별의 통보가 됐든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가 친 거미줄이 엉켜버린 채로,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쟤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계산하며 실의 원류가 어디서 왔는지 찾으려 드는 짓도 그만하고 싶고, 또 '관심'이란 이름으로 간섭하지만 실은 상대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하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적용되는 '공통의 관심사'를 들이대서 각자의 돌출된 삶을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납작하게 눌러버리는 짓도 정말, 그만하고 싶다. 진실이 얼마나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고려하여 몇 그램(g)의 거짓을 관계 안에 타도 되는지 계산하지 않고, 진실로도 충분한 관계 안에서 살고 싶다, 진심으로.
@ 아버지와 기억의 문제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낸 거 같지만, 결과적으로 별 상관은 없었다는 거- ㅋ
대신 글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보니, <러브 액추얼리>에서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자책감 때문에 유난히 차갑게 그녀를 대하던 남자가, 결국 크리스마스를 틈 타, '선'을 넘지 않으면서 그녀에게 진실을 말했던,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enough, enough.)"고 혼잣말처럼 되뇌던 것이 이 순간 문득 떠올라 제목을 그렇게 붙였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