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몇 가지 팟캐스트 리뷰

papyrus 2010. 11. 10. 13:43

'This American Life'로 서툰 걸음을 뗐던 나의 팟캐스트 편력은, 일주일에 하나씩 감질나게 올라오는 'This American Life'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기에는 더 이상 역부족일 정도가 되어 점점 그 범위를 확대해가고 있다. 그러면서 요즘 많이 듣고 있는 것은 'The World in Words'라는 언어관련 프로그램과 'fresh air'라는 인터뷰 전문 프로그램. 전자는 아무래도 언어관련 방송이다 보니, 언어학-꼭 고리타분한 학문 영역으로서만이 아니라-과 관련된 흥미있는 저서들을 소개해주는 경우가 많고, 후자의 경우는 재미있는 책들은 물론 TV 프로그램과 영화, 뮤지컬 제작자나 작가들과의 인터뷰가 많다. 그래서 듣다 보면 관심이 생겨서 읽고 싶어지는 책이나 보고 싶어지는 프로그램이 점점 많아진다는. 특히 인터뷰 대상으로부터 내밀한 이야기들을 별 거부감없이 이끌어내는 '프레시 에어'의 진행자인 테리 그로스(Terry Gross)는 처음엔 중년의 아줌마 목소리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노련하면서도 편안한 그 인터뷰 능력에 나날이 감탄 중.

1.
최근 접했던 'The World in Words'의 초기 방송분에서 엘리자베스 리틀이라는 프리랜서 작가가 나와서 자신이 중국어를 비롯해 한문,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을 배우면서 좌충우돌한 일화를 담은 <Biting the Wax Tadpole(밀랍(?) 올챙이 물기)>이라는 책과 관련된 내용을 소개했다.그 내용을 접하고 확 관심이 생겨서 결국 그 책을 사서 읽고 있는 중. (아직 2장(章)밖에는 읽지 못했다.) 이 책의 제목은 '코카콜라'가 처음 중국에 들어갔을 때 의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음차를 한 결과 바로 '밀랍(?) 올챙이를 물다'라는 뜻으로 번역되는 단어가 만들어졌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것이다. (지금 '코카콜라'는 그 원래 발음도 살리면서 의미도 훨씬 좋은 '可口可樂'(입에 맞아 즐겁다)이라는 표기를 채택한 상태다.) 즉,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세계들이 충돌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오해와 간섭, 그리고 배움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듯. 그리고 '한 언어광의 고백(Confessions of a Language Fanatic)'이라는 부제처럼 언어를 일종의 놀이처럼 배우길 좋아하는 사람의 내면?심경?이 발랄한 언어로 소개되고 있어서 흥미롭다. (아직 20대 초반이나 중반인 듯.)

2.
또 한 가지는 이제 막 'In Treatment'를 보기 시작해서 -게다가 In Treatment 1,2시즌은 특히 미국의 다른 드라마들 같지 않게 한 시즌의 분량이 40편이 넘어서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아직 시작은 하지 못했는데, 오늘 출근길에 'fresh air'를 듣다가 접하게 된 캐나다의 드라마 'Slings and Arrows'도 재미있을 것 같다. ('slings and arrows'라는 제목은 실제 '햄릿'의 대사에 등장하는 표현에서 따온 것.) 이 작품은 그 드라마에 설정된 가상의 셰익스피어 축제에 참가하는 한 극단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다루는 일종의 블랙 코미디라고 한다. 오늘 소개된 방송 클립 중에 헤로인 중독자인 한 늙은 배우가 거의 생애 마지막으로 하는 '리어 왕' 공연 장면이 있었는데, 이 배우는 실제로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해 이것이 그의 유작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공연 장면 클립이 뭔가 뭉클하고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서 조만간 또 찾아서 보게 될 듯.

3.
그 외에 '프레시 에어'를 통해 알게 된 미국의 정치 풍자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Jon Stewart)'의 이야기도 대단히 흥미로웠다. 그는 가상 정치뉴스의 형식으로 '데일리 쇼(The Daily Show)'라는 30분 정도 분량의 인기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직접 집필하고 진행하는 코미디언이다. (물론 혼자 다 하는 건 아니고, 함께 진행하는 팀이 있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자체는 미국 정치를 어느 정도 알아야 이해가 가는 내용이라 나는 봐도 별 재미는 모르겠던데,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는 그의 관점과 윤리의식 같은 것이 재미있었다.

지난 달 30일 그는, 보수적 성향의 라디오 및 TV 진행자 글렌 벡이 8월 28일에 워싱턴 광장에서 보수적 지지자들을 집결해서 진행했던 'Restoring Honor Rally(명예 회복을 위한 궐기대회)'에 대한 패러디로 'Rally to Restore Sanity(제정신을 찾기 위한 궐기대회)'라는 것을 워싱턴의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서 열기로 기획했다. 그것은 "난 정말 미친 놈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나라도 이건 더 이상 못 참겠다!"라고 이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사람들의 절박한 절규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 기획은 대단히 진지하지만, 한편으로는 엄연한 대규모의 정치풍자 코미디다. 그래서 이 기획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프레시 에어의 테리 그로스가 그와 인터뷰를 했고, 그 과정에서 그의 '정치적' 견해에 관한 재미있는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당신이 정치적 색채를 많이 띄게 되었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Did doing the show make you more political than you ever expected to be? More politically aware or more politically engaged?)라는 테리 그로스의 질문에 대해 그는 의표를 찌르면서도 재미있는 대답을 한다.

"사실 나는 내가 더 정치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나는 정치나 미디어를 가까이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오히려 덜 정치적으로 바뀌고, 부패에 대한 일종의 본능적 분노를 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변화를 정치적인 것으로의 변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정치적'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나는 항상 '당파적'이라는 것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그저 우리의 정치 상황에 뿌리 박힌 부패의 정도에 대해 지독히도 견딜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나는 사실 정치가들보다 미디어에 대해 더 화가 난다. 왜냐면 정치가들은... 음, 보통 내가 설명하는 방식대로 해보자면, 당신이 동물원에 갔다고 해보자. 원숭이가 당신한테 똥덩이를 던진다. 그렇지만 걔는 원숭이인데 뭘 어쩌겠는가. 그런데 그 옆에 사육사가 버젓이 서 있으면서 "그럼 못 써!"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건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누군가는 사육사의 역할을 해야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정치가들보다 미디어가 책임을 회피할 때 훨씬 더 분노한다. 정치가들이야 자기 지지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미디어는... 우리의 문화는 끊임없는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기반해 있는 거 아닌가.

우리가 폭정과 자유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의 가운데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관념이 있다. 거기에서는 끝없는 진자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진자운동의 폭은 시간이 지날수록 작아지고 있다. 나는 이 진자운동의 폭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대해 낙관적이라고까지 할 순 없지만 않지만 최소한 두려움이 전만큼 크지는 않다. 다만 내가 변하고 있다고 느끼는 점은, 책임있는 결정권자로서의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미디어의 감각이다. 나는 최근의 미디어가 엄청 겁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주의 미디어에서는 자신들에 대한 일종의 음모론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의 도덕적 권위나 판단을 표현하기만 해도 욕을 먹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내가 보기엔, 내부 검열 같은 것이 존재하는 듯하다."

이런 사람들의 날카로운 지성과 유머도 그렇고, 이런 것들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미국의 미디어를 보다 보면, 아무리 보수적 정신병자 같은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미국이란 나라가 우리 나라보다는 훨씬 흥미로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