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movie

The Be All and End All

papyrus 2011. 1. 20. 00:47



딱 알맞게 재미있고 딱 알맞게 슬펐던 영화. 열다섯의 때이른 죽음이, 어쩌면 너무 가볍게 다뤄졌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 친구의 소원 (The be all and end all)"은 불쾌하지 않았다. 

분출하는 호르몬을 어찌할 줄 모르는 열다섯 살 소년 로비(Robbie)와 그의 단짝 지기(Ziggy)의 평화로운 일상 속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총각딱지를 떼느냐다. 그런 그들에게 불쑥 로비의 불치병이 닥쳐 온다. 죽음을 준비시키려는 엄숙함 앞에서 이 아이들은 자신이 몰두해왔던 일상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절친이 열다섯에 총각으로 죽게 생겼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냐고! 죽기 전의 이 마지막 소원은 추잡한 것도 아니고 괜히 어른 흉내를 내는 것도 아니다. 딱 열다섯살 소년이 열다섯살로 살다가 가는 길일 뿐이었다.

물론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없는 데다, 아직 첫사랑은 커녕 변변한 풋사랑 경력(?) 하나도 없는 친구에게 미성년의 소년이 이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그 자체로 험난하기 짝이 없는 여정이다. 게다가 죽음이 코 앞에 닥친 상황에서 그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죽어가는 당사자의 몫만도 아니다. 그 죽음이 곧 이 세상에서 단 한 명의 단짝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건, 열다섯 소년에겐 버거운 현실이다. 그리고 열다섯 소년의 우주에 그것 말고도 그가 감당해야할 그만의 고민도 여전히 또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죽어가는' 친구의 소원 앞에 자신의 감정이나 고민은 사소한 것이 되어야 한다면, 더욱 힘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아이들의 우정이 사랑스러운 것은, 이 소년들이 마냥 의연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 않고, 자기가 감당할 만큼 감당하고 쏟아낼 만큼 쏟아내고, 또 그걸 툭툭 털어내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보듬어주기 때문이다. 

플롯이 대단히 탄탄하다거나 구성이 치밀한 건 아니어서, 이런 구성상의 결함 때문에 가혹한 평점을 준 평가들도 있었지만, '코미디'의 요소를 충분히 활용한 이 영화는 조금은 어설픈 그대로 사랑스럽다. (명작을 노린 것도 아니고, 소품이면서 이 정도 해냈으면 좀 관대해도 되는 거 아닌가? ㅋ) 하긴 코미디의 요소를 잘 살렸다는 점보다 어쩌면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코미디를 가능케 했던 소년들의 풋풋한 매력 그 자체 때문인 것 같긴 하지만. ㅋ 주연을 맡은 두 소년 '조쉬 볼트'(로비)와 '유진 번'(지기)의 사랑스러운 외모, 선하고 풋풋한 웃음이 자칫 어설플 수도 있었을 이 영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특히, 같이 갔던 친구가 '조쉬 볼트'를 보고는 대번에 '네 이상형이다.'라고 했는데, 유약하면서도 살짝 껄렁껄렁한 이 소년은 정녕 너무너무 귀여웠다는- >.< 이 작품이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신인인지라 인터넷 상에서 찾을 수 있는 사진조차 별로 없다 보니, 영화 속 매력을 충분히 살리는 마음에 쏙 드는 사진을 찾진 못해서 올리진 않았다.)

그 외에도 이 영화에 대한 호감을 상승시키는 데는 영화의 적재적소에서 흘러나오던 음악들 역시도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집에 오자마자 영화의 삽입곡들 가운데서 Karine Polwart의 "The Good Years"와 The Zincs의 "Sunday Night"은 일단 아이튠즈로 다운받아놓은 상태. 내게 있어 이 영화의 단 한 가지 결함(?)은, 리버풀 영어가 너무도 알아듣기 힘들었다는 거. "Happy Birthday!"의 "H"마저 묵음처리 되다시피하면 대체 어쩔 건데 ㅠ.ㅠ  헌데 이런 영화가 이 정도로 '귀엽게' 여겨지는 건 무엇보다 내 나이 탓이 제일 크지 않을까? 뭔가 애들의 뻘짓이 귀여워 보이는 뭐 그런 원리. ^^;;;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이 영화를 봤더라면 내 또래 남자애들이 다 변태로 보이지 않았을까? ㅋ

원제가 워낙 옮기기 까다로운 터라 "내 친구의 소원"이라는 한국어 제목도 --간혹 어처구니 없는 번역 제목을 접할 때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나쁘진 않은데, "be all and end all"이라는 관용어를 이용한 원제가 좀더 함축적이면서도 영리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