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영화나 드라마 속 이별을 보노라면 가끔 화가 치밀 때가 있다. 3초 가량의 검은 화면을 띄우고, 잠시 뒤 이어지는 “몇 년 후”라는 자막으로, 시간을 견뎌야 하는 이별의 아픔이나 현실의 무게를 너무도 무성의하게 “빨리감기” “처리”해 버리고는, 기껏해야 달라진 헤어 스타일 하나로, 그 사이에 가로놓였던 시간의 벽을 너무 손쉽게 훌쩍 건너 뛰어 버릴 때 그렇다. 하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그려지는 이별 이야기만 그런 것도 아니다. 알고 보면 다른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상처에 대해, 삶의 많은 순간들에서 우리들 자신도 실제로 그렇게 “처리”해 버린다.
지난 일주일간 대한민국의 대부분은 자신의 평범한 일상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할 정도로 세월호 침몰 사고 소식에 분노하고 슬퍼하고 미안해 하고 또 무력해 했다. 그 와중에 많은 말들이 --제대로 된 것이었든 아니었든-- 오가기도 했고 우리의 몸과 마음은 쉴 틈이 없었다. 분노해야 할 일이 있는 순간엔 온당하게 분노하는 것이 옳을 터이다. 분노해야 할 순간에 분노하지 않고, 공감해야 할 일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한 인간으로서 또 한 사회로서 마비된 것임을 말해주는 징후일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긴 분노 혹은 슬픔으로, 비록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탈진해 버렸지만, 생각지도 못한 어느 순간 소스라치기도 하고, 잊고 있다가도 불쑥불쑥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이들은 바로, 이 일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 보낸 이들, 당사자들이다. 긴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틈입해 오는 슬픔과 무력감과 아픔과 후회와 직접 싸우고 그것이 자신을 잠식해가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켜가야 하는 건 그 당사자들이다. 멀찍이서 그들을 지켜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여기-는 우리들은, 마치 지금 이 순간의 열정이 언제 존재했었던가 싶을 정도로 무심히 이 일을 잊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러하기에, 많은 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의 분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래 기억하는 일이다. 때로는 함께 분노하고 공감하는 일조차도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정말 더 어려운 일은 오래 기억하는 일이다. 이 일이 방송에서 희미해지고,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의 SNS 공간을 지금만큼 빼곡히 채우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 기억은 이 일을 빨리감기해 우리 삶의 다음 순간으로 넘어가 버릴 것이다. 그러나 상실의 상처가 온몸에 새겨진 채로 "세월"을 견뎌내야 할 이들에게 시간은 그렇게 관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오래" 기억하고, 손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종종 --그 참혹함과 아픔이 무고한 어린 학생들의 희생으로 이어진 이번 일과 차마 비교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이와 유사한 종류의 사회적 재해를 몇 번이고 겪으면서, 그에 대해 “잊어 버릴 만 하면 이런 일이 꼭 또 터진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헌데 생각해 보면, 바로 그 말 속에 이런 사태가 되풀이해서 벌어지게 하는 우리의 잘못된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잊어 버릴 만 하면,이라니, 잊어 버릴 만 하면,이라니... 어떻게 그런 일들을 그렇게 쉽게, 또 그렇게 빨리 잊어 왔더란 말인가. 우리의 그 “집단 단기기억상실증”이 기어이 무고한 어린 생명들의 희생을 댓가로 한 이 참담한 사건을 낳은 것이 아니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런 일이 터졌을 때마다 책임자들이 “책임지고” 옷을 벗는 일들이,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작 이 일에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대체 왜 자신이 책임지지 못해서 잘못되어버린 일에 대해 끝까지 남아 --밑바닥에서부터든 어디서든--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 않고, 그렇게 쉽게 물러나 버리는 것인가. 그리고 나면 그들이 책임졌어야 하는 일은 결국 다른 이들의 책임이 되어 넘어가 버리는 것 아닌가. 그것이야말로 사실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책임질 몫은 “빨리감기” 해 버리고, 사람들이 “잊어 버릴 만 하면” 슬그머니 다시 나타나는 행태를 반복할 수 있게 한 너무도 손쉬운 면죄부가 되어 왔던 것은 아닌가.
사랑하는 이들이 겪었을 상상할 수도 없을 고통으로 인해, 오랫동안 아파하고 슬퍼하고 힘들어 할 것은 희생자 가족, 당사자들의 몫이다. 아무리 덜어주고 싶어도 그 고통은 우리가 감히 덜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그들이 그 슬픔을 극복하는 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그저 묵묵히 그들을 기다려 주어야 한다. 대신 그들을 둘러싼 우리들에겐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우리의 몫이 있다. 그러니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그것을 다하면 된다. 어떤 이들은 정말로 곁에서 손을 잡아 주고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그들이 겪은 고통을 다른 이들이 겪지 않도록, 이런 일이 절대 되풀이되지 않도록 체계를 만들고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슬픔에 공감하는 방식조차 사실은 모두에게 달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그 역할을 혼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나 국가 원수가 희생자 가족들의 손을 잡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러 굳이 행차하실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러라고 당신들을 국회에, 청와대에 보낸 게 아니란 말이다. 그건 그 친지와 가족과 친구들의 몫이니, 그저 당신들은 당신들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 하란 말이다.
그리하여 슬퍼할 이들이 슬픔과 아픔을 겪으며 시간의 무게를 견뎌내는 동안, 우리들 모두도 더 이상 이기적인 빨리감기로 우리만 시간의 벽을 훌쩍 건너 뛰어 버리지 말고, 오래도록 이 일을 기억하고 함께 그들의 시간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결코 잊지 말고 해야 할 최우선의 일이다. 그것이 우리, "세월"을 견뎌내야 할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절실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