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미국의 라디오 방송 가운데는 "This American Life" 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 나라의 라디오 방송은 대부분 '음악'을 소개해 주는 형식이라는 점에서 다소 획일적이라면 획일적인데, 미국은 거의 텔레비전 방송만큼이나 다양한 내용과 형식을 취하는 듯하다. (많이 들어보진 않아서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이 라디오 방송은 일종의 라디오 르포 혹은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매 주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에 맞는 내용을 취재하든,  제보를 받든, 픽션이나 넌픽션 서사를 선별하든 해서, 1시간동안 전달/소개하는 것이다. 다루는 주제 자체도 실연이나 가족 관계 등의 사적인 주제부터 시작해서, 정치, 경제, 학술적 분야의 대대적인 사건 등까지 광범위할 뿐 아니라, 한 가지 서사만으로 한 시간을 전부 채우는 것부터 자잘한 수십 가지 이야기를 하루 분량에 꽉꽉 채워넣는 등 다분히 고무줄 같은 면이 있다. (물론 서너 가지 정도의 이야기를 하루에 소개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한동안 열심히 듣다가 약간 시들해져서 잘 안 들었는데, 아무래도 한 시간 정도 분량이다 보니, 재미있는 내용이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탔을 때 음악 대신에 소일거리 삼아 들을 만하다. 오늘 들었던 주제는 일종의 '적과의 동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 중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패트릭 월'이라는 한 전직 신부에 관한 이야기였다. 세인트 존 수도원에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고, 언젠가는 자신과 같은 소명을 가진 수도승들을 가르치는 신부가 되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수도승으로서 공부를 하고 있던 그는, 1991년 26세의 나이에 생각지도 않았던 미션(?) 한 가지를 제안받는다. 그가 공부하고 있던 수도원의 기숙사 가운데 한 곳이었던 세인트메리 기숙사의 사감이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수도원 측에서는 바로 그날 일을 시작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갑작스럽게 그에게 그런 일을 맡기게 된 경위는 알고보니 바로 그 기숙사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을 수습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신뢰가 갈 만한 인품과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던 그는 그 일에 적임자였다. 그리고 그 일을 잘 해냈다.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을 잘 해내자, 이후로 그에게 돌아오는 직무는 항상 그런 것이었다. 성직자로서의 '금욕'의 계율을 깬 신부의 자리를 교체하고 새로운 인물로 대체한 뒤, 성직자에 의한 성범죄 피해자들의 상담을 해주고,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질 경우 수습을 위해 그 일을 수도원 내 '비밀문서'로 기록해 두되, 실제로는 그런 일이 없었던 양 사건을 '지우는' 일이 이후 4년 동안 줄곧 그가 한 일이었다. 신과 가까이 하는 '성스러운' 일을 하고 싶은 희망, 카톨릭 교회에서 계속 그런 일을 해나갈 인물들을 키워내는 일을 하고 싶었던 그는 교회 내에서 가장 '세속적인' 일만을 해야 하는 운명으로 계속 걸어들어가게 되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자신의 역할을 통해 교회 내 비리를 척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그는 자신의 소명을 다하려 했다. 하지만 몇 년의 기간 동안 '세속적인' 신부들로 인한 세속의 희생자들을 점점 더 많이 접하게 되면서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역할과 카톨릭 교회에 대한 신뢰를 잃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은 비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은폐하는 것일 뿐이라는 회의에 빠져들면서 더 이상 그 일을 계속할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4년 뒤 신부의 신분을 버리게 된다. 그는 다른 신부들의 타락을 덮어주는 자신의 일이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곧 자신의 진로로 삼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신학' 학위를 가지고 세상 밖에 나와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금방 찾는 일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그래서 공교롭게도 그가 시작하게 된 일은, 바로 성직자에 의한 성범죄 피해자들의 편에서 교회와 성직자들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많은 경우- 변호사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었다. 카톨릭 교회의 비리를 척결하는 것은, 성직자들의 비리를 조용히 지워주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들의 편에서 적극적으로 그들을 변호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방면에 있어 그 누구보다 '내밀한' 경험이 많은 전직 신부였던 그보다 그 일에 적임자는 없었다. 신부의 신분을 버린 뒤, 그 일을 하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졌던 이 신부는, 처음 자신의 일이 소개되었던 2003년까지는 가족과 함께 교회에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방송이 다시 소개된 올해, 그의 근황을 물어보니 수천 건에 달하는 성직자에 의한 성범죄 사건들을 접하고 또 접하는 가운데 그는 교회와 성직자들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고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한편으로 공감했다. 가장 '성스러운' 영역에서 살아가는 일을 택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 모두가 '성스러워질' 수는 없다. 이는 카톨릭 교회만의 문제도 아니고, 불교든 그 어떤 종교든 마찬가지다. 그리고 성스러운 일 뿐만 아니라, 의사나 선생님처럼 '숭고하거나 의미있는' 일을 하는 직종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 직업 자체가 그 사람을 그 직업에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경우는 결코 없다. 오히려 그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세상에는 성스럽고 숭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그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세상엔 숭고한 직업이 따로 있는 것도, 성스러운 직업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숭고하고 성스러운 사람, 숭고하고 성스러운 삶이 있을 뿐이다.

어떤 일을 오랜 기간 -십 년 이상- 하다 보면 항상 회의에 부딪친다. 내가 꿈꾸고 기대했던 길이라 생각해 어떤 직업을 택하지만 자신의 꿈과 기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부대끼고 치이면서 그 일 자체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어떤 직업이나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가 아닌 것 같다. 심하게 말하면 제비뽑기를 해서 어떤 길을 가게 됐더라도, 내가 적극적인 의지를 발휘해 선택한 길을 가는 것과 결과적으로 별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직업,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사람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만의 문제는 있다. 문학을 공부하고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는 일을 십 년 이상 해오면서 내가 그 일에 회의가 드는 것은, 졀대 그 일 자체가 의미가 없는 일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그 일을 하는 가장 범속한 사람들의 삶에 좌절하고 그것이 결국 그 일의 본질이자 전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느 곳에 가더라도 결국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 일이 뭐가 됐든 그 일을 가장 숭고하게 해내는 사람은 아마 세상 어디에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고, 내가 살면서 그런 사람을 만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그 일을 직업으로 삼았으되 그 일의 본질과는 무관한 방식으로 범속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부딪치는 일이 훨씬 잦고, 무엇보다 그것 때문에 회의하고 질리면서도 결국 세상이 다 그런 것이라 변명하고 위안하며 스스로도 그냥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 아마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나를 만나게 될 어떤 사람, 어떤 후배도 역시 나로 인해 그 일에 대해 똑같은 회의, 똑같은 좌절을 겪을 것이다. 나를 좌절하게 했던 그 사람이 결국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지금 내가 하는 것과는 다른 어떤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다르게 해나갈 수 있느냐,인 것 같다.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