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늘 그래왔던 것 같지는 않은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실존인물의 생애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 영화들을
무척 싫어하게 되었다.
그런 영화들은 애써 그 인물의 결점을 드러낼 때조차도
그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나 부정적 평가를 불러일으키려 한다기보다
그 인물의 "인간적 면모"를 강조해 "애정"을 구걸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교훈을 전달하려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판이하게 다른 인물의 삶을 다룬
일대기 영화들이 양적으로 쏟아져 나와도
그들의 삶에 접근하는 시선은 기본적으로 천편일률적인 듯이 보인다.
그들에게는 삶을 뒤흔든 단 하나의 사랑이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전생애를 바쳐 이룩한 하나의 업적이 있고,
이미 언급했다시피, 그런 초인적 업적 뒤에 자리한
그 인물의 인간적 면모로서 부각되는 인간적 결점이 있다.
주인공은 다른데,  서사의 구조는 모두 같다.


그러나 "아마데우스"는 서사의 구도 자체에서부터
실화에 기반한 그런 일련의 일대기 영화와는
성격을 달리 한다.
"아마데우스"는 주인공이 아닌 그의 숙적의 시점에서
주인공이 되는 인물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물론 남다른 인물의 극적인 삶을 다루는 데 있어
그 인물의 숙적이 등장하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 그 인물의 관점에서나
혹은 그 인물에 대해 호의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너무나 평면적인 악역을 맡는 경우가 많다.
(혹은 그런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마데우스"에서는,
최소한 영화에서 그려지는 인물의 성격에 기반해서는
숙적 살리에리는 물론, 주인공 모차르트조차도
전혀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인물은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어린 아이와 같은 직설적 태도로
불만과 오만을 드러내는 모차르트와
진심으로 모차르트의 재능을 알아보면서도
그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로
그를 파멸로 몰아가는 살리에리.

한데 이 영화는 전혀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인물들에 대해 놀랄 만큼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동일한 성격의 인물들로, 동일한 뼈대의 사건들을 다루었더라도
이 영화가 취한 시점을 통하지 않았더라면 영화는
분명히 다른 감상과 다른 이야기들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다.
하지만 단순하게 천재의 비범한 삶을 다루는 대신
이 영화는 음악적 성취를 둘러싼 각 인물들의 충돌하는
욕망의 곡선을 그려내며 인생에 대해 남다른 관점을 시사하였다.

그건 어쩌면 전형적인 일대기 서사 방식 대신
숙적의 눈을 통해 바라본 한 천재 음악가의 삶에 대한 서술이라는
독특한 시점을 택한 데서 누릴 수 있었던 이점인지도 모르겠다.
관객들은 살리에리가 그려내는 모차르트를 따라가며
묘하게도 그를 무작정 미워하게 되기보다
천재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성 때문에
이른 바 "어른답게" 행동하는 사회적 규범을 익히지 못하고
세상의 눈 밖에 난 천재의 비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그러하였을 것이듯,
대부분의 범인(凡人)들은
영화가 그려낸 극적 최후가 실화와 일치하는가 여부와는 무관하게,
모차르트를 그런 죽음으로 몰아갔던 "凡人" 살리에리의 심정과
그렇게 했던 살리에리를 광기로 몰아간 그 이후의 정황들에도
진심으로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이 이 영화가 지니는 차별화된 매력이다.
단순히 천재의 삶을 "인간적인 차원"이라는 잣대를 들이대
보통 사람들의 삶과 동일선상에 놓지 않으면서도,
그가 겪었을 고뇌나, 그가 일했던 여건, 그의 성격, 그리고
심지어 그의 지독한 술버릇에까지도 공감케 하면서
예술가로서의 그의 비범함을 충분히 인정하게끔 한다.

또 한편으로 그 비범함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과 투철하게 싸웠던 한 사람으로서
그 후광에 존재했을-실제 살리에리는 아니더라도-
살리에리와 같았을 무수히 많은 사람들,
바로 우리 자신들까지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보듬어 안고 갈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물론 영화 곳곳에 적절하게 들어간
모차르트의 작품들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음악적 소양이 부족한 관계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할 밖에.
어쨌든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모차르트 음악을 듣게 했던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됐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당구대 위에 오선지들을 잔뜩 펼쳐놓고
당구공을 굴려가면서 작곡에 몰두하고 있는 모차르트의 모습과
그 때 흐르던 서정적 선율이, 이 영화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