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의 세상으로 되돌아간 기분을 맘껏 만끽하게 해주는 사랑스런 영화.
물론 나의 열일곱이 이 소녀들처럼 눈에 띄게 예뻤던 적은 없었지만^^
생각해 보니, 나도 중학교때부터 내내 등하교길을 함께 하던 단짝친구들이 있었다.
초여름이면 온몸을 휘감을 듯 향긋한 내음을 풍기는 아카시아꽃 흐드러지게 핀
가파른 언덕길을 숨이 턱까지 차올라 함께 걸어 올라갔고,
(바른 맞춤법 표기는 아까시 나무라고 알고 있는데, 참 익숙해지지 않는 어휘다)
우산을 가지고 가지 않았는데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구두 대신 실내화인 흰색 줄무늬 들어간 곤색 슬리퍼를 신고
비를 홀딱 맞으며 40분 꼬박 걸리는 하교길을 희희낙낙 걸어 왔고,
겨울 하교길엔 어김없이, 1000원에 3개 하던 호떡을 2000원어치 사서
셋이서 나눠 먹으며, 매일매일 만나도 그칠 줄 모른는 끝없는 수다로
추위도 잊은 채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 마음을 설레게 한 남자애가
내 이름을 알게 되고, 나를 한 번 쳐다만 봐줘도 좋겠다는
한숨 섞인 수줍은 고백을 처음 서로에게 털어놓기도 했더랬다.
참 오랜만에 바로 그 시절 그 마음으로 돌아가,
여리고 눈물 많은 그 또래 아이들의 순수한 감성과 우정의 미묘한 긴장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영화에 공감하며 미소지었다.
그리고 제 호흡대로 세상을 향해 내딛는 아이들의 더딘 걸음들을
템포를 서둘지 않는 롱테이크로 담았다는 것 역시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대놓고 튀는 극적인 대사 같은 건 없어도, 마치 아귀가 맞는 퍼즐 조각들처럼
영화의 흐름에 따라 제자리를 찾은 듯 꼭 들어맞는 자연스러운 대사도 좋았다.
앨리스 역의 아오이 유우는 장난꾸러기처럼 천진한 표정에서부터
일단 믿는 사람에게는 토달지 않고 절대적 믿음을 주는 사려깊음과
두 살때부터 배웠다는 기품 있는 발레 솜씨로
관객의 마음을 -사실은 내 마음을^^;- 완전히 빼앗는다.
(비 오는 날 검은 쓰레기봉투 같은 비옷을 뒤집어쓰고
무술도 뭐도 아닌 동작을 하며 "스트레스 해소"하고 있던
엉뚱한 행동까지도 다 귀여워 보일 정도로.
나에게도 딸아이가 생긴다면 꼭 한 번쯤 보여주고 싶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