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사람답게 살지 않기 위하여

-8월의 '어떤' 페스티벌에 대하여

  "어허, 그대의 말대로라면 사람이 만물과 다른 점이 없지 않소? 피부에 털과 살갗이 있는 것은 식물도 사람과 다를 게 없소. 또 부모의 사랑과 피가 섞여서 자식을 낳게 되는 것도 식물과 사람 모두 같은 것 아니오? 하물며 짐승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다르단 말이오?"

...(중략)...
  "허허, 그대는 정말 사람이구려. 사람에게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오륜(五倫)이나 오사(五事) 같은 예의가 있다오. 그렇지만 동물에게도 예의가 있으니,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함께 먹이를 먹는 것이 그들의 예의라오. 식물에게도 예의가 있으니, 군락을 지어서 가지를 뻗어 나가는 것이 그들의 예의지요. 사람 입장에서 만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만물이 천하지만, 만물 입장에서 사람을 보면 만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할 것이오. 그러나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나 만물은 균등한 것이오.
  지혜가 없는 존재는 남을 속이지 않고, 감각이 없는 존재는 하는 일도 없는 법이오. 그렇다면 만물이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이 아니겠소?"

-홍대용, "의산문답" 중에서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돌베개, 김아리 편역, pp.199-200)


33km 라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돌무덤'을 쌓아 만든 (세간에서는 그걸 "방조제"라고도 부른다) 새만금 간척지를 '국제적 관광문화 지역'으로 알리기 위한 축하행사의 일환으로 올해 8월 1일부터 5일까지 군산에서 '새만금 락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한다. 이는 세계 최장 규모인 33km의 방조제 완공이라는 '성과'와 '친환경적 개발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친환경적 개발'이라는 '대안'을 모색하는 행사라 한다.

그 래서, 방조제 건설을 기념하며 새만금을 "재발견"하기 위해 8월 3일 오후 3시 33분, 3만 3천명이 방조제 위에서 길놀이를 하며 풍물을 치고, 동시에 3만 3천개의 풍선을 띄워 올려 기네스 세계 기록에 도전을 할 것이라고 한다. 또 관람객들이 '새만금에 대한 추억과 갯벌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어패류를 '확보'해서 갯 벌KTX, 진흙 머드팩 체험, 갯벌 생태계 체험, 조개 구워먹기 체험 등도 할 수 있는 별도의 행사장까지 마련한다. (제 손으로 죽여놓고, 그렇게 해서 죽은 것을 '추억'하는 법도 다 있다.) 그리고 이 축제의 음악 공연을 위해서는 윤도현 밴드, 동물원, 여행스케치, 유리상자, 자전거 탄 풍경, 김장훈, 바비킴, 부가킹즈, 마야, 강산에 등의 가수가 출연할 예정이다.

그 런데 그들은 과연 알까? 그들이 33km라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 건설을 기념하고, '친환경적 개발'을 역설하고 있는 바로 그 땅 위에서 3억 3천일지 33억일지 알 수 없는 수의 갯벌 생명들이 한결 같은 시간, 어김없이 들어오던 바닷물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속수무책으로 자신들의 죽음을, 서서히 썩어 들어가는 몸뚱이를 지켜보며 고통스럽게 죽어갔으며, 바다가 길을 터주는 하루 5시간 동안만 갯벌에 나가 '그레'에 몸을 기대고 서서 바다와 놀고 조개와 이야기하며 일하면 되었던 전라북도 2만의 어민들이, 생활고에 쫓겨 일당 3만5천원을 위해 몸에 익지도 않은 밭일을 나가서는 새벽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을 하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견디다 못한 어민 한 분이 바로 지난 주에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으셨고, 바깥 사람들은 이미 죽은 것이라고 단념해 버린 갯벌과 그래도 마지막 숨결까지 함께 하기 위해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바다에 나갔던 어민들 가운데 한 분인 류기화 님이, 공사로 인해 달라진 바다의 낯선 결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당신 몸이나 다름없었던 갯벌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던 사실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우연히 일어난 불운한 사건이나 예기치 않은 사고가 아닌, 사람 손으로 일으킨,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던, '인재(人災)'라는 사실을.

그 러나 우리는 몰살당한 뭇생명들을 위한 진혼제를 올려도 시원치 않을 이 마당에, 이제 우리 손으로 불러온 재앙을 기념하고 우리 손에 학살당한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을 축하하는 축제를 열겠다고 한다. 이것이 대체 무슨 노릇인가. 사람으로서 할 짓인가,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사람이라서, 너무나 사람다워서 할 수 있는 짓이니까. 차라리 이렇게 사람다운 짓은 그만하자고 말하고 싶다. 더 이상 사람답게 살지 말자고, 사람 노릇 좀 하지 말고 살자고 말하고 싶다. 인간들 자신 뿐만 아니라,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존재들의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는, 그런 식의 "인간적" 특권을 더 이상 누려서는 안 된다고, 더 이상 누리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그 들은 과연 알았을까? 이른 바 '락' 가수라고 하여 8월에 열리는 그 축제라는 것에 초대된 그 가수들은 과연 그 축제의 의미를, 자신들의 동참의 의미를 충분히 알았을까? 물론 앞에 거명된 락 가수들을 락 가수라고 여기지 않는 음악 팬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세간의 평은 오히려 중요치 않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든 스스로를 락 가수라고 자기 규정했을 때, 그들이 이어받은 것은 락 가수'다운' 옷차림이나 락 음악'스러운' 리듬과 노래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아니었어야 한다.

그 들이 이어받은 것은 소위 락 음악의 정신이라야 했다. 국가주의나 애국심에 휘둘리지 않은 채, 제 나라 병사들의 헛된 죽음 때문만이 아닌, 그들 손에 죽어갈 '적국'의 사람들을 위해, 그저 모든 존재들의 평화를 위해 베트남전 참전 반대를 노래하던 그 락 가수들의 정신이라야 했다. 자신들을 길들이기 위해 뻗쳐 오는 사회의 손길에 대해, 남들 눈엔 그저 치기어린 반항으로 비칠지 몰라도, 스스로 만큼은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다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그런 락 가수들의 정신이라야 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체인 목걸이를 목에 감고 헤드뱅잉을 해댄다고 해서 자신을 락 가수라 생각해 왔다면, 그들은 당연히 이제껏 큰 착각을 해왔을 뿐이다. 다만 이제껏 착각을 해 왔다고 해도, 진심으로 그 착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이제라도 깨어나면 된다.

혹 은 자본의 논리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락'의 이름을 위해, '친환경'의 선한 취지를 위해 동참하고자 한 것이었다면 자신이 노래하려는 '락'과 자신이 실현하려는 '친환경'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신이 실현하려는 선의가 어떤 것인지 지금이라도 돌아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라도 돌아서면 늦지 않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을 내딛어 죽음의 길에서 한 발짝 빗겨 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순간 그들은 락 음악의 정신을 살고 있는 것이고, 그런 한에서 락 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렇게 되면 우리 역시 제 손으로 죽인 것들을 억지로 '추억'하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그대로의 그들을 이제서라도 마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나약하게 말하는 대신, 추억이 되지 않은 그들을, 사랑으로 간직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추억'에 스스로를 옭아맨 채,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시간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겠냐"며 지레 체념하려는 바로 그 찰나, 삶은 우리에게 나직이 말한다. 살아가는 한, 삶은 추억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살아가는 한, 삶은 오직 삶일 뿐이라고.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