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드 님 블로그에서 보고 재밌을 것 같아 해보는 2006 베스트 문답!
정식 문답으로 제안하신 것은 아니지만, 문답으로 탈바꿈시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뭔가 돌이켜 보며 정리가 되는 느낌도 있으면서, 재미도 있는 훌륭한 문답이 아닌가!^^
나 역시 키드님과 마찬가지로 순서는 순위와는 무관.
암튼,
가장 객관적(?)이고도, 주관적인(!)
2006 최고의 책 3
사실 책읽기를 업으로 삼은 후부터는 전공 서적들이나 어떤 식으로든 전공과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이 취미란에 "독서"라고 기재하는 것과는 의미가 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다. 그래도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즐거운 순간들도 있었던 것은 사실. 나의 2006년을 남다르게 해줬다고 느껴지는 책은 "고바야시 히데오 평론집", "선(禪) 스승의 편지", 그리고 "삼라만상을 열치다."
고바야시의 책은 아직도 야금야금 읽고 있는 중이라 마무리는 안 됐는데, 문장 하나하나 수월하게 넘어가지지 않는다. 읽기 뻑뻑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각의 촘촘함과 그것을 표현하는 문장의 견결함이 평론이라는 것을 다시 읽게 해준다. 그리고 "선 스승의 편지"는 "서장"이라고도 알려진 중국 남송 시대의 대혜 스님이 벗이나 제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편지글 모음집. 그 가운데는 당대의 유명한 유학자들도 많다고 한다. 물론 그 당시에도 이단 논쟁이 있었지만, 종교나 사유의 경계를 뛰어넘으며 서로와 교유했던 그 흔적 자체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마지막의 "삼라만상을 열치다"는 김풍기 선생님의 한시 모음 및 해설집 신간. 선생님의 시심이 선생님의 명문에 절묘하게 맞물린 훌륭한 해설서다.
- 관련글: 삼라만상을 열치다
2006 최고의 영화 3
아무도 모른다 |
브로크백 마운틴 |
원더풀 라이프 |
올해의 영화들은 주로 연초에 본 것이 강세인 듯. "아무도 모른다", "원더풀 라이프", "브로크백 마운틴" 세 편 모두 1,2월에 봤던 것 같은데. 아무도 모른다와 원더풀 라이프는 고레에다 하로카즈라는 감독을 발견하게 해 준 영화. 둘 다 뭔가 둔기에 맞은 것과도 같이 서서히 파고들면서도 명치 끝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감각을 느끼게 해준 그런 영화였다. 브로크백 마운틴도 "미국 영화"치고는 간만에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 듯. "아무도 모른다"는 디비디로만 봤지만, "원더풀 라이프"는 디비디로 본 후, 올가을 시네큐브에서 특별상영해줄 때 다시 찾아가서 봤다. "아무도 모른다"도 극장에서 꼭 한 번 보고 싶다.
그런데 "원더풀 라이프"는 그것이 원제임에도 불구하고, 미국판에서는 "내생(Afterlife)"이라고 번역했는데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번역이다.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Life is Wonderful"이라 혹시 그것과 헷갈릴까봐 나름대로 전략을 구사한 건지는 몰라도, 작품이 주는설정상의 은유와 신비감을 확 반감시켜 버리는 정말 즉자적인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그 제목 딱 보고 나면 작품의 설정이 너무 단숨에 들어와 버려서 그것이 어떤 상황일까라고 궁리하며 궁금해하는 단계를 지워버리는 거 같아서 미국 있을 때 디비디 빌려보면서 마음에 안 들었다, 정말.
그리고 벨로와 키드 님 추천으로 "귀향"을 꼭 보고 싶었는데 그것은 끝내 못 봤다. 극장에 끝끝내 가지 않았던 게으름의 소치. 2007년엔 그거 보고 싶고, "수면의 과학"도 꼭 봐야지!
- 관련글: 아무도 모른다/ 원더풀 라이프
2006 최고의 음반 3
빗방울보들 (EP) |
Healing Process |
Cracker (Soundtrack) |
2006 최고의 드라마는 단연 넬의 새 앨범인 "Healing Process"! 최근 들어 이렇게 감동적인 음반 들어본 것도 드문 일이었다. 아마도 그저 2006년 최고의 음반이 아니라 당분간 내 생애 최고의 음반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듯. 그 외에 "크래커"라는 만화를 위한 사운드트랙이었던 "Cracker - compilation for a bitter sweet love story". 그리고는 줄리아 하트의 "빗방울보들". 물론 2006년에 나온 앨범은 아니었고, 내가 올해 처음 접한 것이긴 하지만, 함께 올여름을 났던 음반이라 내 마음만은 각별하다. 그 외에 하나 더 꼽자면 "클라우드 쿠쿠랜드"가 될 듯. 그러나 "다시" 정도밖에는 반복해서 다시 듣는 것이 없어서(^^;) 빗방울보보다는 다소 비중이 약하지.
- 관련글: 얼음산책 (Healing Process)
2006 최고의 지름 3
1세대 아이팟 셔플 |
케이트 스페이드 토트백 |
모토로라 레이저 라임 |
뭐, 올해는 반백수 생활을 하다 보니 큰 사고를 저지른 것은 없는 듯하네. 가장 큰 것이야 단연 눈물 젖은 모토로라 레이저 라임. (ㅠ.ㅠ) 몇 년동안 고이 썼던 나의 애니콜을 완전 반으로 동강낸 후, 눈물을 머금고 살 수밖에 없었던 것. 흐음. 그 외엔 진짜 없던가.
그리고 "케이트 스페이드"의 몇 해 전 스페셜 에디션이었던 "Maira Kalman"의 그림이 그려진 토트백을 미국 있을 때 ebay에서 샀다. 가방을 잘 망가트릴 수밖에 없는 평소의 습관 때문인지, 큼지막하고 튼튼하면서도 예쁘다 싶은 가방을 보면 자제를 잘 못한다.-_-; 쯧. 암튼 그 가방 올겨울에 잘 쓰고 있으니 뭐 -핑계를 대자면- 괜찮은 지름신이었던 듯.
그리고 마지막은 아직도 내 손 안에 들어오지 않은 1세대 아이팟 셔플! 아 놔- 그 시카고에 출장가신다는 분 말씀만 없었어도 그냥 한국에서 사는 거였는데, 괜히 동생한테 사놓으라고 해서 이게 뭐냐규- 엉엉- (음... 맥북은 내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며, 지금쯤 아우님이 실컷 쓰고 있을 테니 지름신에서 제외제외-)
2006 최고의 공연 3
루시드 폴 (2006.12.28) |
이병우 영화음악 콘서트 (2006.5.20.) |
이건 세 개를 꼽는 게 별 의미가 없네. 공연을 달랑 세 개밖에 안 다녀와서. 근데 하나는 초대권 생긴 친구가 초대해 준, 이런저런 사람들 다 나오는 강원도 수재민을 위한 자선음악회. 블라디밀 펠츠만이라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처음으로 접한 것이 좋긴 했지만 -그는 옷차림이나 감각이 클래식 피아니스트라기보다는 재즈 피아니스트 같은 느낌을 주던 슬림하면서도 멋진 은발의 노신사(?)였다- 전체적으로 인상적인 것은 별로 없었던 공연.
좋았던 것은 "이병우의 영화음악 콘서트"와 며칠 전에 다녀온 루시드 폴의 "노래의 불빛: silent night, nylon night". 둘 다 몇 년동안 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엇갈려 계속 못 갔던 공연들. 새삼스레 들어도 둘 다 너무 좋았지만, 이병우는 영화음악 대신 기타 콘서트로 다시 만나고 싶다. 그리고 루시드 폴 새 앨범 기다려진다.
- 관련글: 그건 사랑이었지 (루시드 폴) / 이병우, 그와의 첫 만남
2006 최고의 문화생활 3
Stephan Balkenhol, Big Parade (2001) |
Alex Katz, Magnolia (2005) |
갔다온 것 자체가 별로 없다. 롭스&뭉크 전 다녀왔었는데, 난 의외로 별로였다. 작품 자체가 별로였다기보다 뭔가 보고 나니 심란해서 오래 두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달까. 도대체 무엇이 누군가로 하여금 그토록 하나의 생각에 거의 평생토록 사로잡히게 하는지 궁금해지긴 했지만, 나로서는 보고 나와서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전시회지 싶다.
음, 괜찮았던 것은 '갤러리 현대'에서 했던 "My World in Your Eyes". (당신 눈에 비친 나의 세계,라는 의미인 것인가.) 알렉스 카츠, 슈테판 발켄홀, 산탈 조프라는 세 명의 각기 다른 예술가들의 목조각과 그림을 접했었는데 슈테판 발켄홀의 거칠면서도 미완인 듯한 목조각과, 인물화에 좀더 방점을 찍긴 했지만 알렉스 카츠의 색채가 강렬하면서 대상이 간결한 풍경화들이 좋았었다.
2006 최고의 싸가지 사건
남에게 한 몹쓸 짓은 다 잊은 것인가. 왜 이리 기억이 안 나냐. ㅎㅎ
없을 리는 없겠지만 기억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듯하다.^^;
(자신이 싸가지없음을 잊어버리는 싸가지, 이거야 말로 진정한 싸가지가 아닌가! ㅋㅋ)
2006년 한 해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기시감 (deja-vu).
한동안 떠나있다가 돌아온 해다 보니 못 봤던 사람들, 못 갔던 공연들도 몇 년만에 다시 보다 보니 언젠가 보았던 풍경과 순간을 다시 살아내는 느낌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몇 해동안 무뎌져 있고 살았던 고통의 순간, 상실의 슬픔을 몇 년만에 다시 느껴야 했다. 물론 동일한 대상은
아니었지만 너무 흡사한, "가슴이 미어진다"는 상투적 표현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을 다시 살아내야 했던 것이 너무 아팠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강한 "망각력"이 있어 그 고통이 연말이 지나 새해를 맞고 보니 또 다시 무디어지고 둔탁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나의 잔인함 또한 다시 확인하는 기분이다. 어쨌든 돌이켜 보면 올해는 그런 해.
그런가 하면 한동안 심할 정도로 무디어진 나의 감성과 감각을 다시 깨워서 조금은 부지런해지고 끈기를 되찾은 해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도 역시 "기시감"을 느끼게 한 해가 아니었을지.
키드 님의 목록에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굿바이 솔로 (너무 좋아하는 장면!) 연애시대
드라마광인 파스 양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분야는...
"2006 최고의 드라마!"
그것은 바로 "굿바이 솔로" 와 "연애시대"!
(이런이런. "봄의 왈츠"에 분노하고 있던 시절 나를 구해준 "연애시대"를 잊어버리다니-. 이렇게 배은방덕할 데가 있나... ㅋㅋ)
그러고 보니 노희경 드라마도 참 오랜만.
나머지는 잠깐 잠깐 재밌게 보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신선함은 없어서 금세 질려버리곤 했다. 특히 사극들. (이를 테면,
"주몽"이나 "황진이".) 제발 특정한 역사관이나 관습적인 미의식 좀 강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군.
키드 님이 거론하신 것 외에도 좀 더 추가하고 싶은데 퍼뜩 생각나는 것이 없네. 조금 더 생각해 보다가 떠오르면 그 때 추가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