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실체는 인간 아닌
그 어떤 것에도 깃들여 있지 않다.
프랑스의 어느 마을 제보당에
늑대로 추정되는 야수의 습격을 받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간다.
그곳에 파견되어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프롱삭과 마니는
단순한 늑대의 짓이라 치부하거나,
아예 자신들이 본 적조차 없는 환상의 동물들을 거론하며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려 하지 않는 마을의 상류층 사람들을 접한다.
그리고 사건을 대충 무마해서 왕의 심기를 편케 하려는
파리 궁정 사람들의 압력까지 가세한다.
괴기 소설 혹은 Gothic novel 이라고 주로 분류되는 서사의 장르는
일상이나 삶을 옭죄어 들어오는 미지의 공포,
그것의 실체를 밝혀내는 과정, 혹은 그것의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을
주된 이야기의 구조로 삼는다고 알고 있다.
결국 그 진실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의 영역에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대상,
인간 자신이나 인간이 길들이고 지배할 수 있는 익숙한 생명체가
바로 그 공포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아내고 나면
그 결과만으로도 아마 인간은 충분한 위안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이 영화에서도 결국 사건의 배후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신비의 동물,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야생의 동물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어떤 야생동물을 숨겨서 키우는 청년을
왕권에 대항하는 그 지방 신부가 교회의 세력 안으로 포섭해서는
그 동물을 풀어서 공포심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야수가 왕을 벌할 것이라고,
왕의 부덕함이 야수의 광포함을 낳고 있다며
사람들에게 공포심과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사건을 끝까지 추적했던 프롱삭 기사는 친구 마니마저 잃어가며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고는 사랑하는 여인과 아프리카로 떠난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마도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는 것,
신앙에 사로잡힌 한 신부의 광기가 그 모든 일을 초래했다는
결말에 대해 별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공포의 실체를 밝혀냈다는 것 그 자체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나 세계의 일이 아닌
"우리 인간"이 이해가능한 영역 안에서
모든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편안함을 줄 수야 있겠는가.
차라리 인간의 믿음, 인간의 손길이 미치는 곳에
사랑과 은총대신 어리는
분노와 적개심이라는 것이
인간 자신마저 황폐하게 만드는
스스로를 향한 저주라는 사실만을 확인하는
잔인한 과정이 있을 뿐.
그 어떤 것에도 깃들여 있지 않다.
프랑스의 어느 마을 제보당에
늑대로 추정되는 야수의 습격을 받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간다.
그곳에 파견되어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프롱삭과 마니는
단순한 늑대의 짓이라 치부하거나,
아예 자신들이 본 적조차 없는 환상의 동물들을 거론하며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려 하지 않는 마을의 상류층 사람들을 접한다.
그리고 사건을 대충 무마해서 왕의 심기를 편케 하려는
파리 궁정 사람들의 압력까지 가세한다.
괴기 소설 혹은 Gothic novel 이라고 주로 분류되는 서사의 장르는
일상이나 삶을 옭죄어 들어오는 미지의 공포,
그것의 실체를 밝혀내는 과정, 혹은 그것의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을
주된 이야기의 구조로 삼는다고 알고 있다.
결국 그 진실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의 영역에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대상,
인간 자신이나 인간이 길들이고 지배할 수 있는 익숙한 생명체가
바로 그 공포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아내고 나면
그 결과만으로도 아마 인간은 충분한 위안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이 영화에서도 결국 사건의 배후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신비의 동물,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야생의 동물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어떤 야생동물을 숨겨서 키우는 청년을
왕권에 대항하는 그 지방 신부가 교회의 세력 안으로 포섭해서는
그 동물을 풀어서 공포심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야수가 왕을 벌할 것이라고,
왕의 부덕함이 야수의 광포함을 낳고 있다며
사람들에게 공포심과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사건을 끝까지 추적했던 프롱삭 기사는 친구 마니마저 잃어가며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고는 사랑하는 여인과 아프리카로 떠난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마도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는 것,
신앙에 사로잡힌 한 신부의 광기가 그 모든 일을 초래했다는
결말에 대해 별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공포의 실체를 밝혀냈다는 것 그 자체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나 세계의 일이 아닌
"우리 인간"이 이해가능한 영역 안에서
모든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편안함을 줄 수야 있겠는가.
차라리 인간의 믿음, 인간의 손길이 미치는 곳에
사랑과 은총대신 어리는
분노와 적개심이라는 것이
인간 자신마저 황폐하게 만드는
스스로를 향한 저주라는 사실만을 확인하는
잔인한 과정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