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영정, 면앙정이니, 소쇄원을 돌아보며 유난히 좋았던 건
그곳이 여전히 사람이 올라가 앉을 수도 드러누울 수도 있는 곳이라는 점이었던 것 같다.
언제나 보호와 관리의 대상, 박물관과 같은 관람과 조망의 공간에 머무를 뿐인
다른 많은 고건물들에 비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그 점이 바로 그곳을 살아있게 한는 거 같았달까.
석불사(석굴암) 돌부처를 개방해 놓았더니 사람들이 아들 낳기를 비는 마음으로
오른쪽 무릎인가 하여튼 어딘가를 자꾸 쓰다듬어 닳기에
밧줄을 둘러치는 것도 모자라 유리 안에 가두어 버린 것,
보전을 위해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팔만대장경.
물론 사람들이 무절제하게 만져보고 쓰다듬었다는 거야 닳아진 흔적이 있으니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보았다고 그렇게까지 신기하게 여겨 그걸 이른 바, 훼손시킬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이미 그런 것들이 우리의 삶 안에 살아 숨쉬고 있는 공간도, 대상도 아니라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의 우리에게야 범접할 수 없는 선조의 고귀하고 고결한 문화유산이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그들 이전의 부처상이 그러했고 불교 경전이 그러했듯이,
그때의 지금에 생각하는 부처의 모습이 투영된 하나의 조각상일 따름인 것이 석굴암의 부처고
자신들이 믿는 세계를 자기 언어로 담아낸 글이 팔만대장경일 뿐이었던 것 아닌가...
답사지의 한 군데였던 광한루만 해도 워낙 잘 알려져 있다 보니
시설물 "보호"를 위해 올라갈 수 없게 해 놓았다.
뜨거운 햇살과 흙먼지 날려 흩어지는 그곳이
식영정이나 면앙정보다 조금도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조차 않는데도 말이다.
하긴 소쇄원은 개방시간이 지나서 간 바람에 들어가 보지 못하긴 했지만
그나마 문턱의 대봉대에라도 앉아 숨돌릴 수 있었는데.
너무 극단적인 말인지 몰라도 솔직히 난
그 건물들 우리가 억지로 보호하고 보전하고 복원해주려 애쓸 필요없는 듯했다.
그것들만이 영원불멸해야만 하는 무슨 절대적 이유 따위는 없는 듯...
그냥 사람들이 언제나 자연스럽게 드나들며 쉬어가고 살아갈 수 있게 하면
그 숨결이 배어 사람과 함께 살만큼 살다 함께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삶과 능동적 관계를 맺을 때 공간도 살아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미 죽은 공간인데
그곳에 살지도 않으면서 그곳의 목숨만 간신히 연명시키기 위해
이른 바 관리를 하는 사람에게도 그 억지스러운 관계는 고통일 뿐이고,
삶을 끌어안지 못하는 그 공간에게도 고통일 따름인 거 아닌지.
영국에는 셰익스피어 생존 당시 그 극단의 전용 극장인 "글로브"를 그대로 재현해서 복원되어 있다.
그곳은 목적자체가 그래서 복원되었겠지만 재건립 이후 계속 실제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단지 셰익스피어라는 신화화된 인물을 한층 더 초월적 존재로 격상시키기 위한 복원이 아니라
그를 삶 안에 끌어들이고 그를 그토록 특별하게 만든 삶의 원리를 직접 능동적으로 살아냄으로써
지금 여기의 삶의 원리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한 것이 그 공연장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과거의 공간이 그렇게 현재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곳이 여전히 사람이 올라가 앉을 수도 드러누울 수도 있는 곳이라는 점이었던 것 같다.
언제나 보호와 관리의 대상, 박물관과 같은 관람과 조망의 공간에 머무를 뿐인
다른 많은 고건물들에 비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그 점이 바로 그곳을 살아있게 한는 거 같았달까.
석불사(석굴암) 돌부처를 개방해 놓았더니 사람들이 아들 낳기를 비는 마음으로
오른쪽 무릎인가 하여튼 어딘가를 자꾸 쓰다듬어 닳기에
밧줄을 둘러치는 것도 모자라 유리 안에 가두어 버린 것,
보전을 위해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팔만대장경.
물론 사람들이 무절제하게 만져보고 쓰다듬었다는 거야 닳아진 흔적이 있으니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보았다고 그렇게까지 신기하게 여겨 그걸 이른 바, 훼손시킬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이미 그런 것들이 우리의 삶 안에 살아 숨쉬고 있는 공간도, 대상도 아니라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의 우리에게야 범접할 수 없는 선조의 고귀하고 고결한 문화유산이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그들 이전의 부처상이 그러했고 불교 경전이 그러했듯이,
그때의 지금에 생각하는 부처의 모습이 투영된 하나의 조각상일 따름인 것이 석굴암의 부처고
자신들이 믿는 세계를 자기 언어로 담아낸 글이 팔만대장경일 뿐이었던 것 아닌가...
답사지의 한 군데였던 광한루만 해도 워낙 잘 알려져 있다 보니
시설물 "보호"를 위해 올라갈 수 없게 해 놓았다.
뜨거운 햇살과 흙먼지 날려 흩어지는 그곳이
식영정이나 면앙정보다 조금도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조차 않는데도 말이다.
하긴 소쇄원은 개방시간이 지나서 간 바람에 들어가 보지 못하긴 했지만
그나마 문턱의 대봉대에라도 앉아 숨돌릴 수 있었는데.
너무 극단적인 말인지 몰라도 솔직히 난
그 건물들 우리가 억지로 보호하고 보전하고 복원해주려 애쓸 필요없는 듯했다.
그것들만이 영원불멸해야만 하는 무슨 절대적 이유 따위는 없는 듯...
그냥 사람들이 언제나 자연스럽게 드나들며 쉬어가고 살아갈 수 있게 하면
그 숨결이 배어 사람과 함께 살만큼 살다 함께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삶과 능동적 관계를 맺을 때 공간도 살아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미 죽은 공간인데
그곳에 살지도 않으면서 그곳의 목숨만 간신히 연명시키기 위해
이른 바 관리를 하는 사람에게도 그 억지스러운 관계는 고통일 뿐이고,
삶을 끌어안지 못하는 그 공간에게도 고통일 따름인 거 아닌지.
영국에는 셰익스피어 생존 당시 그 극단의 전용 극장인 "글로브"를 그대로 재현해서 복원되어 있다.
그곳은 목적자체가 그래서 복원되었겠지만 재건립 이후 계속 실제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단지 셰익스피어라는 신화화된 인물을 한층 더 초월적 존재로 격상시키기 위한 복원이 아니라
그를 삶 안에 끌어들이고 그를 그토록 특별하게 만든 삶의 원리를 직접 능동적으로 살아냄으로써
지금 여기의 삶의 원리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한 것이 그 공연장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과거의 공간이 그렇게 현재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