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조로(早老) (2)

grey room 2010. 3. 12. 00:35
나는 가끔 나의 끈기라든가 우직함(?)이라든가 하는 것이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거의 줄곧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학군제가 아니었던 지방 중소도시이다 보니, 반드시 집 근처 학교를 배정받을 수는 없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모두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거리였는데, 집에서 학교 앞으로 다니는 버스 노선이 아마도 한두 개밖에 없었던 것 같다. (잘 안 타고 다녀서 사실 잘 모른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에 살다 보니, 한 동네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는 애들은 늘 많았고, 버스는 항상, 예외없이 만원이었다. 게다가 몇 개 없는 노선으로 여러 군데를 거쳐 가다보니, 버스를 탄다고 시간이 특별히 단축되는 것도 아니었다. 버스로도 3-40분은 족히 걸리지 않았나 싶다.

그런 데다 다리가 워낙 튼튼해서 걷는 건 별로 힘이 들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만원버스를 타는 건 끔찍이도 싫었다. 비 오는 날 철벅거리며 걷는 게 싫다고들 했는데, 나는 비오는 날 질척한 우산들과 다닥다닥 붙어선 채로 30분 이상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야 하는 게 훨씬 더 싫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차가 있던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아버지가 출근시간 맞춰서 데려다 주시는 경우를 제외하곤 등하교길 1시간 거리를 걸어다니는 것이 내겐 당연했다. 고등학교 때쯤 되니까 걷는 데 얼마나 이골이 났는지, 내 또래 애들이 걸어서 보통 한 시간은 걸린다고 했던 거리를 빨리 갈 땐 40분대에도 주파할 정도가 되었다. 그 여파인지 지금도 웬만큼 다리가 긴 사람과 걷는 경우가 아니면 항상 걸음이 빠르다는 말을 듣는 편이고, 산책이나 데이트를 할 때면 늘 어디 쫓기는 사람 같다는 핀잔을 듣곤 했다. 게다가 하루에 왕복 2시간씩을 걸어다닌 셈이니, 운동부족으로 인한 학생들의 체력저하를 걱정하는 시기에도 따로 운동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