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가난한 꿈

review/book 2010. 4. 11. 00:14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는 책 제목인가 어떤 구절인가를 본 적이 있다. 가난한 고학생이 성실히 공부해서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뒤에 썼던 수기였던 것 같은데. 동감하는 말이다. 그런데 짐작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저런 구절이나 저런 책에서 말하는,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는 말의 함의는 계속 '가난하라는 법은 없다'는, 일종의 신분상승에 대한 희망을 표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왜냐면 그것이 가난한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의 '성공 스토리'에 대한 우리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떼돈을 벌어 부자가 되라,는 걸 말하는 건 아니라고 해도, 어쨌든 가난에 발목이 잡혀,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한 채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은, 가난에서 벗어나리라는 어떤 희망, 노력해서 가난에서 벗어나라는 어떤 명령 같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가 최근에 재미있게 보았던 어떤 논문의 주장과 비슷할 것 같다.

"이타주의자들의 군대: 선행을 할 권리로부터의 소외"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부시 정권 하에서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선택에 대해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이미 다른 연구 결과에서도 많이 확인된 바였지만, 당시 참전을 선택했던 군인들 중에는 소위 극빈층이거나 빈곤계층 출신의 젊은이들이 많았다. 이 점을 두고, 반전 운동이나 참전 반대 운동을 벌였던 측에서는, '돈'을 미끼로 젊은이들을 낚아갔다는 식으로 부시 정권을 더욱 거세게 비난할 수 있었다. 이 논문도 그런 점을 간과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 좀 더 흥미롭게 주목하고 있는 점은, 사람들에게는 당장 목구멍에 풀칠할 궁리말고 좀더 '고귀한 이상'을  성취하는 일이나 '선행'을 하고 싶은 열망이 있게 마련인데, 미국의 체제 안에서 정말 생계 문제부터 고민해야 하는 극빈층의 젊은이들이 그런 열망을 펼칠 곳은 교회나 군대, 딱 두 군데밖에 없다는 것이다. 좀 더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고 국제인권 변호사라든가  NGO 활동, 혹은 문학, 예술 등의 분야에서 꿈을 펼치고 싶어도, 그런 일을 택할 경우 당장 처음 한,두 해는 예외없이 무보수로 일을 해야 하는데, 무보수로 일하면서도 목구멍에 풀칠할 수 있는 쌈짓돈 자체가 아예 없는 극빈층, 혹은 노동계층의 자녀들에겐 그런 꿈이야말로 '사치'인 것이다. 대학교육까지는 학자금 대출로 어떻게 받는다 해도, 졸업과 동시에 날아드는 대출금이자 상환 고지서에 꼬박꼬박 돈을 부쳐야 하는 이들에게 돈을 받지 않으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삶의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허울 좋은 말로 아무리 감싸봐도, 사실상 불가능한 선택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람을 죽이러 가는 전쟁터가 '고귀한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가는 곳이 될 수 있는가? 결국 그런 일들은 '국가에 복속되는 것'을 가장 높은 이상으로 치는 것, 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할 만큼 어리석은 데 불과한 것 아닌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해 저자 데이빗 그레이버는, '군인들이 그곳에 가서 가장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자신들이 군인이란 길을 택한 본질적인 이유라고 밝힌 것은 곧 지역민들에 대한 '봉사'였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듯하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도, 사람들을 죽이는 가장 원초적인 군인의 임무를 은폐하기 위한 자기기만의 장치라거나, 국가의 음모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의 순진한 생각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논문의 장점은 어쨌든 사람들의 말과 뜻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전쟁터에 간 사람들은 바로 우리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이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꿈'을 꾸기 때문에 자신의 길을 택했다'는 사실을 존중하고 인정한 기반 위에서, 그 일이 그들에게 가지는 의미를 밝히려 했다. 그들이야말로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는 마음 때문에 그 일을 택한 것이라고, 어찌 보면 슬프고도 아름다운 주장을 이 논문은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토록 '가난한 선택지'밖에는 주지 않는 국가나, 가난한 사람들을 둘러싼 우리들의 삶을 더욱 통렬하게 비판하는 의미가 있을 것도 같다.

<그린존>을 보면서,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찾아헤매며, "나는 지금 그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고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지금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라고 외치는 밀러 준위(맷 데이먼)을 볼 때 국가의 실상을 보지 못한 그의 행동이 '어리석다'는 생각에 슬퍼만 했는데, 실은 그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을 위해 좋은 일,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꿈과 사명으로 그 전쟁터에 왔다고 외치는 그런 군인들을 보며 과대망상이라거나 오만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나의 냉소주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문제는 그들의 '어리석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선 꿈 꿀 수 있는 권리조차 박탈하고 있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세계를 구성하고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은 나의 태연자약함과 무신경함인 것인데. 과연 누구의 꿈이 더 가난하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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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글의 저자를 건조하게만 언급했는데, 사실은 친구다. 물론 친구라기엔 연세가 좀 있는 교수님이지만, 정말 젊고 에너지가 넘치고 유머러스하고 말 많으면서도, 은근히 숫기 없고 수줍음 많고 귀여운^^ 정말 명석한 인류학자이자 왕성한 아나키스트 활동가. 인류학자라 그런가 이 분 글이 구어투에다 재미있는 예도 많이 들면서 설명해서, 미국이나 영어권 국가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문체로 평가된다. 우리 나라에 번역된 책으로는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그린비, 2009) 딱 한 권이 있는데, 이 책은 다소 초기작이기도 하고, 정말 '인류학적 접근'이 많아서 지나치게 전문성을 많이 띄고 있다. 개인적으로 좀 더 짧은, 아나키즘 관련 팜플렛이 있는데, 그 책이 번역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소망이 있다.

혹시 논문을 읽어볼 생각이 있다면, 아래에 트랙백 된 주소로- 번역본이 따로 없어서 그냥 내가 하면서, 앞으로 종종 영문 번역을 올리겠다는 원대하고 허황한 포부로 블로그도 새로 하나 만들었으나 '작심한건'으로 끝날까 봐 실은걱정- 냐하핫-^^; 번역에 자신없는 부분 밑줄 긋고 주석에다 원문도 달아놓았으니 확인해보고 이상하다 싶으면 지적해 주는 것도 환영.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