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하고 논리적인 분석의 글이라기보다는 풍자를 통해 문제의식을 시사하는 성격이 훨씬 강하긴 하지만 '가장 열등한 동물(The Lowest Animal)'이라는 글에서 마크 트웨인은 열등한 동물로부터 고등한 동물인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관점을 반박한다. 그리고 그 문제의 출발점을 인간의 '도덕의식'에 있다고 본다.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란 것이 결국, 다른 동물들이 설혹 서로를 죽이더라도 아무런 악의가 없기 때문에 '결백하고/순진하고/무고한(innocent)' 것과는 다르게, 악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서 악한 행동, 잔인한 행동을 하게 하는 일종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크 트웨인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케 하고, 결국 악한 행위도 가능케 하는 원천을 '도덕의식(moral sense)'라고 표현했지만, 이것을 아마도 동양의 언어로 표현하면 '마음(心)'이 되지 않을까 싶다. 유학이나 불교에에서는 본성과 감정, 욕망이나 의지 등도 이야기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을 아우르는 좀 더 상위의 층위에 있는 것을 마음으로 보고, 상대적으로 본성을 별로 언급하지 않는 도교에서도 '마음'에 관한 언급들은 나온다.
다른 동물이나 존재들과는 달리 이 '마음'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에 비추어 자신의 시비판단을 하기도 하고, 그 판단의 결과 괴로움이나 기쁨에 휩싸이기도 하고, 거기에 또 흔들려 다른 종류의 행동이 비롯되기도 한다. 그러니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각자의 삶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의 경험상 마음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일 수 있을 것 같다. 차라리 '뜻대로', (T 광고처럼) '생각대로' 하는 것은 의지와 의식의 차원인 것 같은데, 마음은 그것을 우리가 통제하기는커녕 제대로 볼 수 없는 경우도 훨씬 많은 것 같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여기는 '마음' 안에는, 그 사람에게 잘 하고 싶은 '의지(志)'도 있지만, 그 사람을 독차지하고 싶은 '욕망(欲)'도 있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즐거운 모습을 보면 질투가 일어나는 '감정(情)'도 있고 뭐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네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영화 같은 데서 쉽게 던지는 말은, 사실 결코 쉽지 않다. 그 마음 안에 뒤엉킨 온갖 감정과 욕망과 의지 가운데서 어느 선(線)을 타야할지 종잡을 수 없어 '내 마음 나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내가 '내 마음 가는 대로 한다'는 건 대체 뭘까. 단 한 번도 순정한 하나의 감정이나 의지, 욕망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 뻔한 이 혼탁한 마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음'이란 건 무엇일까. 그래도 끊임없이 정화하고 앙금을 가라앉혀 그 무엇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만든 뒤에 행위하면 되는 걸까.
일단 상정할 수 있는 건, 감정과 의지, 욕망의 줄다리기 가운데 분명 무언가 하나가 이겼을 때 마음은 어떤 선택을 한 것이고,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떤 행위로 나오게 된다는 것일 터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순정한 마음이란 없지만, 그 선택의 순간에 가장 강하게 발현한 의지가 곧 그 순간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그 욕망이 먼저 발동하여 행위를 한 순간, 내 의지는 그것이 아니었다거나 내 감정은 그게 아니었다고 변명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 줄다리기의 성패에 따라 나온 마음이 자기 마음이 아니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