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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문학작가보다 나를 더 감동먹게 하는 극소수 --어쩌면 유일한?-- 사회과학 저자 중 하나인 고병권 선생님이 쓴
<코뮨주의 선언>이라는 책의 서문에서는 인간이란, 혹은 모든 존재란 어째서 본질적으로 '공동체'인가,라는 것을
설명한다. 지금 수중에 책이 없어서,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가 '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개체'조차도
실은 수억, 수십 억개의 미생물들이 공생하는 공동체적 신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 상에서, '중생(衆生)'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그러면서 고병권 선생님이 책에서 표현했던 말은,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고독할
때조차 '함께' 고독하다'라는 것이었다. 그 논증에 무척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리고 그 말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그렇지만 비관주의자에 불과한 나는 많은 순간, 인간은 '함께' 고독한 존재,라는 것보다, 함께 '고독한' 존재라는 점에 자꾸 방점을 찍게 된다. 다만 이 비관주의자인 나의 아이러니는, 별 특징없는 나에 대해서 사람들이 주로 기억하는 건, 크고 호방한 웃음소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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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페소아의 <금욕주의자의 교육(The Education of the Stoic)>을 번역하면서 -불행히도- 너무나 공감했던 구절이었다.내가 뭔가 잘못된 길을 가리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시작하는 고통스러운 회의의 순간에 나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의 과도한 무게였다. 나는 나의 세습적 영향과 가정교육을 결코 극복할 수 없었다. 나는 귀족성이나 사회적 지위라는 무익한 관념에 콧방귀를 뀔 순 있었지만, 그것을 망각할 순 없었다. 그건 마치 타고난 비겁함 같은 것이어서, 내가 그것을 혐오하고 그것에 저항하긴 해도, 그것이 내 마음과 정신을 불가해한 끈으로 묶어놓은 것까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나는 한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을 어떤 소녀와 결혼하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내 영혼의 우유부단함 속에, 나와 그녀의 사이에 가로놓여있던 것은 14대에 걸친 남작들, 내 결혼식에서 주민들 전체가 히죽거리며 능글맞게 웃을 모습에 대한 내 상상, 나와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의 빈정거림, 그리고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생각들로 이루어진 엄청난 거북함이었다. 너무도 많은 하찮은 생각들이, 내가 마치 범죄라도 저지른 것 마냥,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이성적이며 무심한 인간으로서 나는 내가 업신여긴 이웃들 때문에 내가 행복할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
내가 어떤 선택으로부터 발을 빼는 것, 어떤 싸움으로부터 몸을 피하는 것은 항상 이렇게 '부정적' 이유들 때문이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길을 가기보다, 그 행복 앞에 가로놓인 장애물들과 부딪치는 것이 껄끄러워 차라리 그 행복을 포기하는 길을 택한다. 페소아의 표현 그대로, 나와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에게 빈정거림을 받거나, 나의 어떤 선택을 보며 히죽거릴,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비방과 맞닥뜨리느니, 차라리 그 길을 가지 않는 편을 택한다. 이를테면, 결혼은 하지 않고 아이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더라도 굳이 미혼모의 길을 가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선다거나, 반대에 부딪칠 것이 뻔한 어떤 사람과의 결혼 같은 건 아무리 그 선택이 의미 있다고 해도 택하지 않는다. 내가 존중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싫어서, 그들의 편견의 그물에 붙들리는 것 자체가 너무 싫어서, 난 그들의 편견을 부수고 가는 길은 차라리 택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고 생각하는 그대로 살아갈 생각도 없지만, 굳이 순교자가 되고 싶은 생각 따윈 더더욱 없다. 최대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겠지만, 어쨌든 난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마찰은 피하는 방식을 택할 것 같다. 너무 불행한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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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歌 초대人"이라는 방송에 나왔던 '아마도 이자람 밴드'가 부른 '백만 송이 장미'를 듣는데, 왜 이리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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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에 '가을방학' 단독 콘서트 있던데, 혹시 주민들 중에 보러 갈 생각 있는 분 안 계시려나. 시간은 저녁 6시, 장소는 웰콤씨어터. (3호선 동대입구 1번출구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고- 사이트는 http://welcommtheater.com) 그리고 표값은 2만 2천 원. 예스24에서 예매가능.- '개체'라는 표현은 영어의 'individual'의 번역어인데, 이는 의미소의 측면에서 'in-dividual'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더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란 것이 곧 '개체'인 것이다. 이에 대한 일종의 반증으로서의 중생이란 개념은, 또 다른 사회학자인 이진경 선생님이 고안한 'multi-dividual' 즉, '여럿으로 나뉘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영어 조어를, 한자를 푼다면 '무리[衆] 생명[生]' 정도가 될 수 있는 의미를 가진 '중생'이란 기존 어휘와 연결시키면서 도입된 것이다. 물론 '중생'이 '짐승'을 뜻하는 '즘생'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선, 한국어의 어원학적 측면과는 다소 어긋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한자 풀이로만 보면 그렇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