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동심(童心)

grey room 2010. 5. 13. 00:14

처음 생각(?)과는 달리, 꼬박꼬박 챙겨보는 정도는 아니고 기회가 되거나 생각이 날 때면 <신데렐라 언니>를 간혹 보는데, 그 드라마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작가가 참 어린가 보다,라는 것이다. 혹 실제로 신체 나이가 어리진 않더라도, 최소한 감성은 참 어린 것 같다. 사랑에 굶주리고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이들의 눈에 그렁그렁 고인 고운 눈물 방울들. 그리고 독하디 독한 여자애라고 나오는 은조(문근영)를 보아도, 여리디 여리다는 효선(서우)을 보아도, 그들이 온몸에서 독기를 뿜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곤 눈을 부릅뜨고서, '죽여 버릴 거야.'라고 말하는 것밖엔 없는 이들. 그렇게 누군가에게 눈을 부릅뜰 수도, 혼자서 숨죽여 눈물을 훔칠 수 있는 것도, 다 어리고 풋풋한 탓이라고, 나는 생각하게 된다. 정말 사는 게 사무치면, 눈물도 흐르지 않고, 그렇게 상대에게 독기를 뿜어낼 기운조차 없어진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만 비밀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내겐,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만 상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들렸다. 누군가에게 뿜어내는 독기라는 건, 사실 그렇게 비밀을, 상처를 품은 자기 마음이 다칠까 두려운 생각으로 돋아난 가시 같다. 누군가를 해치려는 것이라기보다 나에게만 있는 비밀을 어떻게든 지키려는 방어본능 같은 것. 하지만 비밀이나 상처 따위 나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 마치 죽음이란 것이 모든 사람이 타고난 공통의 운명인 것과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저마다의 비밀과 상처 하나쯤은 있다는 거 알게 되면, 그렇게까지 울고 그렇게까지 날을 세우진 않게 되리라는 그런 생각이, 나는 들었다.


하지만. 아직 어리다는 거, 그다지 나쁜 거라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이 순간을, 내 심장이 너무 뜨겁게 달구어져 금세라도 터질 것만 같았던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을 내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걸 잊는 순간, '그게 영원할 거 같지? 그치만 그런 거 다 한때야.'라고 말하는 꼰대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잊지 않아야 그 순간에 몸부림치는 어떤 젊은이의 이야기를 웃으며 들어주고 그를 다독이며, '그래, 지금은 많이 아프지? 더 아프고, 다 아프려무나. 그러고 나면 자라 있을 거야. 하지만 너무 웃자라려고는 하지 마'라고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