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조로(早老) (3)

grey room 2010. 5. 20. 00:32
지금도 기억한다. 내 삶에서 '영원' 혹은 '불변'이라는 관념이 사라진 순간을. 혹은 그런 관념에게 작별을 고한 순간을.

그 이전에도 그런 느낌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그런 느낌을 가졌던 최초의 순간은 막 열네 살이 되던 1991년 2월이었다. 1990년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무렵, 아버지의 직업적인 이유 때문에 1년동안 외국에 나가서 살아야 할 때가 있었다. 그 당시 3학년때부터 3년 동안 같은 반이었던 우리 반 친구들, 그리고 그 중 한두 아이들과 유독 친했던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 아이들과 '우정 영원히 변치 말자'는 약속을 하며 헤어졌고, 1년 동안 꽤 여러 번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물론 결국 정들었던 1년간의 영국생활을 뒤로 하게 될 시점이 왔을 때에도,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한국에 돌아갔다.

그런데 막상 1년 뒤에 돌아와, 6학년 졸업을 앞두고 돌아와 그 아이들을 만났던 1991년 2월... 나는 무척 어색했다. 그리고 우린 제대로 인사말도 주고받지 않은 채 헤어져 각자 다른 중학교에 배정받아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그 당시 이미 다른 학년, 다른 반이 되어 자신의 새로운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친하게 지내는 그 '친구'를 1년만에 만나 어색한 눈길로 서로를 몇 번 쳐다보던 그 순간, 내 머리 속에 떠올랐던 생각을 정확히 기억한다. 그것은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구나'라는 것이었다. 열네 살짜리가 대체 뭘 알았다고 그런 생각을 했을까 싶어 우습다는 생각도 들지만, 정말 그랬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세상의 모든 비밀을 다 알아버린 그런 느낌마저 들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게는 소위 '동심'과 헤어진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나의 존재를 잠식할 만큼의 치명적 슬픔과 우울함 속에 항상 침잠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친구들과 밖에서 즐겁게 놀았고, 남자 아이들에게 놀림당하는 것에 쉽게 발끈하던 초등학생의 시절을 지나, 여자 중학교에 진학한 뒤 다른 여자아이들을 놀리는 데 재미를 붙인 짓궂은 소녀이기도 했고, 선생님들에게 --나 자신의 의중이 무엇인지 나조차도 제대로 모른 채-- 연애편지(?) 같은 것을 쓰는 여중생, 여고생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많이, 잘 웃는 아이였다. 별로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타입의 아이가 아니었던 나를,  유일하게 사람들이 기억하는 코드는 웃음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나였음에도 '영원히 변치 않는' 우정과 사랑에 대한 낙관 같은 건, 열네 살의 그 겨울 이후로 없었다. 그것은 이후로 누군가와 '영원히'라거나 '항상' '변함없이'라는 약속을 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소한 그 말을 입 밖에 내길 주저했다. (헌데, 생각해 보면 영원을 믿지도 않는 사람이 영원히라는 말을 입밖에 내길 굳이 주저한 것은 일종의 모순이기도 하다. 영원이란 없다는 것을 철두철미하게 믿는다면, 어차피 그런 '말'조차 영원하지 않을 테니 굳이 말하고 싶어하지 않을 이유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꺼렸던 데는, 기실 그 말만큼은 '영원'하리라는 일종의 불안한 믿음 같은 게 있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종종 어른들이 --최소한 '나이'로 보면 어른이 된 나 자신을 포함해서-- 아이들이나 동심에 대해 뭔가 오해 혹은 착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최소한 그것이 어린들이 '나이'라는 것으로 선을 그어 그 선 안에 들어앉혀 놓았다고 간주한 '어린이'에게 속한 마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동심'은 이러저러한 것이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뭔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네 살이면 이미 어린이는 아닌지 몰라도, 어쨌든 일정한 수준 이상의 감수성이나 감각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런 나이의 아이들에게도 이미 삶은 그때보다 두 배나 더 나이를 먹은 어른이 된 내가 느끼는 무게만큼으로 다가온다. 감각이 세월로 무뎌지기 전이니, 어쩌면 그보다 더 첨예하게.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