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맥락

grey room 2010. 5. 23. 22:19
텍스트,라는 '용어'를 굳이 작품이라는 말 대신 사용하는 '학자'들은 그것이 'textile'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직조물'의 의미를 표현함과 동시에, 우리가 흔히 문맥이나 맥락이라고 번역하는 'context'라는 말과 함께 놓였을 때 의미가 있는 말이라 그렇다고 설명한다. (context란 '-와 함께(with)'라는 의미의 'con-'이라는 접두사와 'text'라는 명사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조어이다.) 그러나 '작품'이란 말도 결국 '지어진/만들어진(作) 물건(品)'이라는 말의 한자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마찬가지인 것 아닌가. 왠지 그런 개념어 선택은, '작품'이란 말에 의미화 작업을 할 열의가 없는 학자들의 게으름의 소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쨌든. 많은 작품들이 그 시대나 역사의 맥락과 문맥을 떼놓고 그대로 흥미롭거나 재미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 맥락을 알지 못한 채로 재미있는 작품을 보고 재미를 느낀 경우에도 역시나 그것이 대체 어떤 맥락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일까,라는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나는 종종 의문이 든다. 어떤 작품이 정말 그런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임팩트'가 없을 때, '그건 이러저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것이고, 네가 그 작품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네가 그런 맥락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야!'라고 사람을 다그치는 건 부당한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런 '구체적'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서 흥미를 느낄 수 없는 건 결국 그만큼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작품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많은 '학문적' 작업은 그런 작업인 것 같아서,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당신들이 이 작품의 '진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그 역사,문화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서다,라고 사람들을 다그치며 그 맥락을 이해(실은, 강요)하는 과정 같은 느낌. 그 과정이 충분히 공유되지 못한 건, 결국 자신들의 무능이나 나태의 결과인데, 대중의 잘못이라고 다그치는 것 같은 느낌.

왠지 유쾌하지 않다. 내가 어린 시절 지식인들에 대해 불신을 품었던 이유가 그런 맥락이었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자신들의 무능함의 원인을 다른 사람들의 무지에 돌리는 듯한 비겁함,이랄까.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