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한 공연의 후기를 꾸역꾸역 쓰고 있는 나의 이 뒤틀린 심사(?)가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예매한 이후로 내내 기대에 차서 기다렸던 오늘 줄리아 하트의 단독 공연은 실망스러웠다. 그들의 노래 자체가 실망스러웠을 건 없다. 노래를 좀 더 해주기만 했더라면. 지난 번 정바비와 계피의 프로젝트 그룹인 '가을방학' 공연을 가서, 가을방학 공연에선 정바비가 노래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오프닝 공연에 생각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경험'에 비추어, 줄리아 하트 공연에선 정바비의 노래를 '원없이'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로 공연에 갔다. 하지만 공연 홍보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읽어 봐야 했나 보다.
게스트 이름이 많이 있는 것만 보고 오프닝에서 지난 번 '가을방학' 공연처럼 30분 정도는 할애할 것을 감안해 벨로, 키드니, 나는 아예 7시에 맞춰서 갔다. 그런데 우리가 들어갔을 즈음엔 이미 줄리아 하트가 노래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두어 곡 쯤은 불렀지 싶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축가'성 노래가 몇 곡 더 이어진 뒤, 우리가 이번 줄리아 하트 앨범에서 가장 안 좋아했던 'IS'의 피처링 곡이 나왔다. 그것이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정바비는 덧붙였다. 내가 다른 줄리아 하트 팬들의 입장까지 대변해서 말할 순 없지만, 줄리아 하트 공연에 오는 관객들에게 과연 그 곡이 하이라이트라고 말할 수 있을까. IS가 퇴장한 뒤 줄리아 하트의 노래가 몇 곡 정도 더 이어진 뒤 (그런데 이때도 사실 줄리아 하트의 '명곡'이 아니라 각 멤버가 택한 '비운의 걸그룹'의 사라진 곡들을 커버로 불렀다) 1부와 2부 사이에 IS의 공연이 있었다. 관심이 없어서 전혀 알아보지도 않았지만 자신들의 표현에 따르면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공연하는 이 세 자매 밴드는 각각 가야금, 거문고, 해금을 들고 나와 연주하며 가요를 불렀다. 그저 튀고 싶고 특이해 보이고 싶어서 하는 크로스오버를 굳이 그렇게 거창한 명분을 붙여 노래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2부에선 정바비의 노래를 본격적으로 들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2부에서도 처음엔 스윗 소로우의 성진환, 그 다음엔 전멤버였던 이원열이 게스트로 나와 각각 2곡씩을 함께 부른 뒤엔 '도전 3곡'이라는 관객 이벤트로 40분을 허비...했다. SBS에서 일요일 아침에 방영하는 TV 프로그램인 도전 1000곡을 패러디해서, 3곡을 무작위로 뽑아 1절 가사를 틀리지 않고 부르면 팬들에게 상품을 주는 이벤트였다. 첫번째 사람은 노래도 워낙 잘해서 재미도 있었지만, 이게 네 사람까지 이어지고 거의 30분 이상 이어지자, 솔직히 좀 화가 난다면 화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한 곡인가 부른 뒤, 앵콜로 두 곡을 부르고 나자 공연이 끝났다. 그리고 6시 반부터 치면 이미 세 시간이 꽉 차게 흐른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줄리아 하트의 노래는 한 시간이나 들었을까 싶은 생각만 들었다.
공연에 가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는 물론 여러 가지일 수가 있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도 있고, 심지어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이벤트를 즐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공연에서 기대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같은 공간 안에서 그의 육성으로 듣는 것이다. 나는 그저 그의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것, 기본에 충실한 것이 가장 좋다. 게스트나 이벤트로 도배하는 공연은 기본이 취약하거나 이제 막 데뷔한 신예밴드라 자신들이 부를 수 있는 자신들의 곡이 별로 없을 때나 하는 것 아닌가. 줄리아 하트 같은 밴드가 굳이 이런 공연을 할 필요가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그동안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자기 노래만 많이 해서 지루해졌던 걸까. 이번 공연의 컨셉은 만약 줄리아 하트가 '팬 미팅'을 기획했다면 딱 어울렸을 컨셉 같다. 그렇지만 그의 음악을 듣고 싶어서 굳이 돈까지 내고 '단독 콘서트'에 간 팬들에게 베풀 수 있는 호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새 앨범 발매 기념으로 한 콘서트이니 그의 예전 앨범 곡들을 많이 듣는 건 물론 무리였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빗방울보'나 '영원의 단면' 같은 곡을 그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아쉬움과 더불어 왜 굳이 공연에 갔던가 하는 후회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