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난생 처음으로 팻 메스니 공연을 다녀왔다. 팽선생 팬인 아우가 노트북을 넘길 때 아이튠즈에 앨범을 대부분 넣어놔서 몇 번 들어봤었는데, 솔직히 집에서 들을 땐 별로 좋은지 몰랐다. 내가 좀 단순하고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좋아하는 편이라, 화려한 팻 메스니의 사운드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내 귀에는, 특히 좁은 실내에서 들으려니 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오늘 표도 실은 6월이면 귀국해 있을 거라 예측해서 미리 예매해놨던 아우가 불가피하게 가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그의 표를 가로채서(ㅋ) 간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정말 충격을 받았다. 악기들과 마주보고 눈을 맞춰가며 정말 '말 그대로' 교감하며 화려한 음색을 창출하는 그의 연주는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미래'였다. 아, 참고로 이번 '오케스트리온' 공연에서 연주를 하는 '사람'은 팻 메스니 하나뿐이지만, 수십 개의 악기가 그의 조율에 의해 '저절로' 연주를 한다. 일종의 악기 로보트의 탄생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완전히 신기원이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역설적인 것은 이런 '악기'의 탄생은 그의 어린 시절의 꿈, 즉 과거의 것이었다는 점이었다.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100년 된 '자동' 피아노가 있었는데, 그걸 본 뒤로 줄곧 그런 악기'들'과 함께 연주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런 팻 메스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꿈을 (꿈과 분리된) 현실에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꿈과 현실의 그런 예리한 선을 따라 구분하지 않기에 꿈을 이룬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팻 메스니의 그런 꿈은, 아마도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예리하게 분리되지 않은,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면 꿈과 현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꿈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꿈이 곧 현실이고, 현실이 꿈이었기에 그것이 지금 이 순간 현재가, 미래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는지.
색이 날은 듯한 까만 티셔츠에 까만 배바지를 입고 거기다 까만 운동화를 신은, 외모로 보면 조금도 '미래적'일 것이 없는 이 꾸밈없고 소박한 사람이 미래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장면은 너무 멋져서 때때로 심장이 저릿할 지경이었다. 표값은 며칠 전 줄리아 하트 공연 가격의 4배나 됐는데 감동은 400배쯤 됐던 거 같다. (물론 그날의 줄리아 하트 공연이 너무 형편없기도 했고.) 오늘부로 팽선생님, 진정 존경합니다! +_+ 그리고 '오케스트리온' 공연은 확실히 귀로만이 아니라, 눈으로도 함께 들어야 하는 공연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