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편견

grey room 2010. 6. 29. 15:42
<부처님의 생애>를 읽고 있는데, 재미는 있지만 이름과 지명이 까다로워 생각만큼 속도가 잘 나진 않는다. 스스로 수행자의 길을 택한 석가모니 앞에는 그의 출가를 의아해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각주:1] 그 가운데에는 그가 이미 출가를 해서 스승을 찾아 떠난 여정 중 들렀던 마가다국의 왕 빔비사라도 있었다. 석가모니의 정체(?)를 알게 된 빔비사라 왕은 "사꺄족 왕자여, 당신처럼 귀한 신분에 훌륭한 재능을 갖춘 분이 사문(수행자)이 된다는 것은 매우 애석한 일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자기 대신 나라를 다스려 달라고도 부탁해보고, 그저 무엇이든 제공할 테니 삶을 즐기라고 청한다. 물론 석가모니는 이를 거절하고 수행의 길을 계속 갔다.

헌데 이 대목에서 내가 의문이 들었던 것은 바로 빔비사라 왕의 말에서 표현된, '당신처럼 귀한 신분에 훌륭한 재능을 갖춘 분이 사문이 된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일종의 통념이었다. 우리는 왜 어떤 능력이나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이 소위 그 능력에 걸맞거나 그 능력을 발휘하는 삶을 살지 않는 것에 대해 '애석해' 할까? 그리고 나는 이 '애석함'이란 표현 속에 많은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다고 느껴진다. 그나마 빔비사라 왕은 자신의 왕국과 모든 것을 그에 걸맞는 사람인 석가모니에게 얼마든지 내줄 용의가 있었지만, 많은 경우 실제로 이 '애석함'에는 '내가 당신의 능력을 갖고 있었더라면'이라는 가정을 담은 질투나 시기, 실망의 감정이 담긴 경우도 많다.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능력을 다 사용하라고 독려하는 호의를 담아 말할 때도 있지만, 실은 어떤 일을 성취하고 싶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했을 때, '당신 같은 사람이 그 능력을 쓰지 않는 건 낭비지.'라고 말하는 의중에 '내가 당신의 능력을 가졌다면 얼마나 많은 일을 했을까.'라는 어떤 뒤틀린 가정이 숨어있는 경우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대체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용해야 하는 능력과 지위라는 것은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왜냐면 사람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한 가지 능력만 가지고 태어나진 않는다. 수학을 잘하면서 음악적 재능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러면서 요리를 잘 할 수도 있다. 그나마 이런 것들은 우리 사회의 기준에서 '유용한' 능력들이다. 그런 '유용성'의 측면에선 전혀 능력으로 간주되지 않는 능력을 지닌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신발끈을 예쁘게 묶는다든가, 간지럼을 잘 태운다든가, 발을 잘 까딱거린다 하는 거라면 어떨까. 그것도 유용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능력인 것일까? 만약 그런 유용성의 측면에 부합하고 싶은 의지가 전혀 없다면 어떨까.

그리고 무엇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단 한 사람에게만 의미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그 능력을 단 한 사람에게만 사용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걸 보고 '그런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서 사용하지 않는 건 낭비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용해야 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는 데는, 어떤 사회의 통념에서 유용한 것, 그리고 그것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는 것,이 중시된다. 하지만 정말 그래야만 하는 걸까? 단 한 사람만을 웃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건 능력이 아닐까? 혹은 태어나기 전에 아이스크림 맛을 고르듯 자신이 갖고 태어나고 싶은 능력을 선택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아무런 능력도 없다면 그건 무의미한 걸까?

물론 음악적 재능이 있고, 스스로 음악의 길을 택하고, 그리하여 나에게 감동을 주는 음악을 연주해주는 음악가들을 보면 고마운 마음이 들지만, 그 사람에게 '이런 음악적 재능을 갖고 태어나서 음악을 하지 않는 건 낭비다'라고 당위적으로 말할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에겐 음악적 재능이 정말 저주 같이 느껴질 수도 있고, 그래서 그냥 음악을 하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혹은 자신의 노래를 자신이 사랑하는 단 한 사람에게만 들려주겠다고 의지적으로 택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의 그 선택을 두고 본인 이외의 사람이 낭비라고 말하는 경우, 그건 진심어린 애석함이라기보다 전적으로, 그 재능을 자신이 타고 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하는 질투와 시기심에 불과한 것도 부지기수일 것이라 생각한다. 헌데 그런 능력을 타고나지 못하고도 그런 분야의 일을 하고 싶은 것이 어떤 사람의 선택일 수 있듯, 그런 능력을 타고나서도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도 그의 선택인 것 아닌가. 마치 꽃이 사람의 눈에 아름다워 보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듯, 그 인간적 재능 역시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목적과 결부되지 않은 채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이, 조용히 숨쉬고 살아가다 세상에 아무런 (가시적)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가는 존재보다 반드시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도 그저 하나의 편견에 불과한 것 아닐까.



  1. 불교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석가모니와 부처가 둘 다 이름이라고 혼동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석가모니가 그의 이름이다. '석가'란 그의 출신 종족의 성이라고 보면 된다. 즉 그는 '석가'족 출신의 왕자였다. 그리고 '부처'란 '깨달은 자'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 단어 'Buddha'에 대한 음차이다. 물론 우리가 통상적으로 '부처님'이라고 지칭하는 사람은 물론 '석가모니 부처님'인 경우가 많지만, 사실 부처란 '깨달은 자'에 대한 통칭이기 때문에, 불교에는 석가모니 부처 말고도 부처들이 많다. 그리고 학자들의 경우엔 그가 깨닫기 전 시기의 석가모니를 '부처(님)'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잘못된 호칭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