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힘이란 역시 대단하다.
아메리칸 아이돌의 한국 버전인 '슈퍼스타 K'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음악을 하고 싶은 실력있는
사람을 발굴하려는 것이라기보다, M.net의 상술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서 일단 워낙 비호감이었던 데다가, 그런 대중음악 프로그램에서
소위 '노래를 잘 한다'고 평가하는 가수 역시 전형적인 발라드 가수들이라 음악적 취향에서도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아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 아우랑 앉아서, 미국의 American Idol을 필두로, (폴 포츠를 탄생시킨) 영국 버전
Britain's Got Talent, 그리고 한국의 슈퍼스타 K까지, 유독 리얼리티 프로그램 가운데서도 이렇게 보통 사람
가운데서 비범한 음악적 재능을 발굴한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은 어째서 지역을 막론하고 일관되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일까,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말 그 매력이 대체 뭘까 싶어 한 번 봤다. 물론 내가 생각한 전형적이고 통속적인 면이 없지
않았으며, 이 과정을 통해 선발되는 '가수'란 역시 반짝 인기를 누리는 일회용품인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숨을 멎게 하는 순간이 있었다.
최종 10인을 선발하는 중간 오디션 과정에서 비슷한 음악적 성향을 지닌 두 사람을 짝을 지어 같은 곡 하나를 듀엣으로 부르게
하는 라이벌 미션이 있다. 대부분이 기껏 잘해 봐야 그저 기존의 노래를 '잘' 부르는 정도에 그치는 데 비해, 독보적인 실력으로
편곡을 하고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를 하는 장재인과 김지수라는 두 명의 참가자가 있었다. 그들이 선택한 곡은 서인영의
'신데렐라'라는 곡이었는데, 전에 어쩌다 한 번 들었을 때 가사가 어이없는 트렌디한 댄스곡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도대체
두 명의 통기타 가수(?)가 이런 댄스곡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이
평범하다 못해 통속적이기 짝이 없는 댄스곡을 전혀 다른 음악으로 둔갑시켜 놓았다.
내가 워낙 어쿠스틱한 기타 소리를 좋아해서 그렇기도 할 텐데, 도입부에 들어가는 경쾌하면서도 감각적인 김지수의 기타 연주에서
나는 이미 반해 버렸다. (어떻게 보면 기타연주가 가장 좋았던 것 같기도 한데... ㅋ) 게다가 그저 어처구니 없어 헛웃음만
나왔던 "더 늦기 전에 들여보내, 12시 지나면 나는 변해/ 이때다 싶어 덤비지 마요/ 나는 신데렐라, 12시가 지나면 내가 널
어떻게 할지도 몰라, 놔요 잡지 마요 "라는 따위의 가사가, 장재인과 김지수의 독특한 음색을 통해 나오자, 뭔가 정말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어떤 사람에 관한 노래처럼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편곡과 연주라는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우월함도 있었지만,
이들의 마이너하고 헝그리한(?) 감성 자체가 이 곡에 전혀 다른 종류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느낌이 들었다.장르는 뭐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포크라기엔 비트가 좀 센 거 같고, 모던락이라고 하기엔 다소 순박한 거 같고 뭐 그렇던데. 어쨌든 바로 다음에
이어서 나온 다른 라이벌 미션 참가자 역시도 같은 곡을 선택했고, 뭐 춤이나 노래가 꽤 괜찮았다고는 하는데 --댄스곡엔 워낙
관심이 없는 터라 잘 알 순 없지만-- 전형적인 댄스곡으로 그 노래를 소화했던 그 애들의 춤과 노래는 --물론 그들은 나름대로는
대단히 진지했겠지만-- 애들 장난처럼 보이기조차 했다.
뭐, 요즘 같은 미디어의 마케팅 전략 속에서, 그런 '서사'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단 본인들의 이야기를 액면가대로 믿는다면, 어린 시절 왕따로 집단구타를 당하면서 외로움 속에 갇혀 있던 마음이 오로지 음악 안에서 치유를 받았다고 말하는 장재인이나, 가난 때문에 자신을 키울 수 없었던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맡긴 채 떠나버리고, 막노동을 하고 살면서도 음악을 손에 놓지 않았던 김지수라는 사람의 삶이 묻어나기 때문에, 대량생산된 공산품이나 다름없던 통속적인 댄스곡 하나가 순식간에 색깔있는 음악으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이들의 서사조차 M.net이라는 공장에서 생산되고 포장된 신화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음악이 시작되던 순간의 내 심장은 떨렸다는 것. 그들이 '결과'적으로 원하는 것은 상업적 성공에 불과한 것인지 뭔지는 몰라도, 어쨌든 각자가 지닌 현재의 절실함에서 폭발하는 그들의 감성 자체는 듣고 있는 사람의 심장까지 관통해서 들어오는 소리를 만들어냈달까.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이 선곡 자체가 그들의 신데렐라 스토리에 대한 전주일지도 모른다는 느낌마저 들었을 정도.
사람들이 그런 '보통 사람의 음악을 통한 성공 스토리'에서 발견하는 매력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을 얻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어쨌든, 드물게 마주치게 되는 힘있는 음악의 흡인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는 해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