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라 바월(Sarah Vowell)이라는 대중음악 평론가가 있다. 그녀의 음악 평론 자체가 우리 나라에 잘 알려져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나라에서 알 법한 이력이라고 한다면, 픽사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에서 검은 머리 치렁치렁 늘어뜨린 다분히 사회부적응자의 면모가 보이던 사춘기 딸 바이올렛의 성우 역할을 했었던 것 정도일 것 같다. (나이는 사춘기를 훌쩍 넘긴 걸로 알고 있지만, 실제 이미지가 이 캐릭터에 상당히 가깝다. 좀더 통통해 보이는 외모가 좀 다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내가 즐겨 듣는 This American Life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당신의 꿈, 나의 악몽 (Your Dream, My Nightmare)"라는 주제의 한 에피소드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여기서 그녀는 취재차 '로큰롤 판타지 캠프'라는 곳에 간다. 미국에서는 이런 '캠프'의 명목으로 유명한 밴드에서 활동했던 음악가들을 초청해 악기 연주의 몇 가지 주법 같은 걸 배우기도 하지만, 주된 컨셉은 유명한 뮤지션과 몇 박 몇 일 동안 밥도 먹고 술도 먹으며 어울려 논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종류의 드라마나 영화 캠프 같은 것도 있는 것 같다.) 이 취재를 하면서 오프닝에서 사라 바월은 이렇게 말한다.
나의 로큰롤 판타지는 이런 것이다. 이따금, 어쩌다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 그렇다, 아주 소박한 꿈이란 거 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일 년에 한두 번 쯤, 이 꿈은 실제로 실현되기도 한다. 나는 대중음악에서 필요한 모든 걸 한 곡 한 곡의 노래에서 얻는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의 뮤지션과의 만남이다. 2,3분 동안 스피커를 통해, 뭐라 꼬집어 말하기 힘든 너무나도 많은 무언가가 농축된 슬픔 혹은 어떤 감정이 흘러나와, 그 순간만큼은 마치 세상이 멎어버린 듯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내 우상격인 락 뮤지션과 친구가 되는 것을 꿈꿔본 적이 거의 없다. 그건 어쩌면 내가 보통 성격 나쁜 뮤지션들을 좋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내가 참 퍽이나 제리 리 루이스랑 새해 첫날을 맞으며 축하 인사를 나누고, 코트니 러브랑 신발 쇼핑을 다니고, 루 리드랑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고 싶어 하겠다. 내 마음 속에서 최고의 뮤지션으로 꼽히는 이들은 대부분 성격 괴팍한 별종들로, 그들은 자신의 사회성이나 기품있는 태도로 인해 유명해진 사람들이 아니란 말이다. 내가 그들을 내 마음 속에 담아놓고 싶다고 해서 그들을 내 삶 속에까지 들여놓고 싶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꼬박 닷새 동안이나 마이애미에 갇혀, '로큰롤 판타지 캠프'라는 명목으로, 과대포장된 한물 간 락 가수들로부터 기타를 배우고 그걸 위해 삼천 불이라는 거금을 들이는 것은 절대 내 판타지가 아니다. 차라리 내 최악의 악몽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듣고 받아 적은 것이라 불확실한 부분도 있음.)
My rock and roll fantasy is this--that occasionally, every now and then, a song I like comes on the radio. It's a simple dream, I know. And every so often, once or twice a year, it actually comes true. I get all I need from pop music song by song. And that's how I like it best. Two or three minutes of speed or sorrow coming out of speakers with so much something that the world stops cold. I rarely daydreamed of befriending my rock idols. Maybe it's because I tend to admire cranks. Like I really want to toast in the new year with Jerry Lee Lewis or go shoe shopping with Courtney Love or build sand castles with a peach like Lou Reed. My musical heroes are mostly snotty weirdos, who didn't become famous because of their social graces. Just because I have them in my heart doesn't mean I want them in my life. So the very idea of spending five whole days cooped up in Miami, taking guitar workshops from moldy rock big shots and paying upwards of three thousand bucks to do it at something called 'rock 'n roll fantasy camp' isn't my fantasy. Try my worst nightmare.
이 구절은 처음 들었을 때도 상당히 공감했지만, 어제 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 가서 '틴에이지 팬클럽'의 공연과 몇몇 다른 밴드들의 공연을 보면서, 나는 사라 바월의 이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를 음악 이외의 방식이나 통로로 만나는 것을 별로 꿈꾸지 않는다. 물론 정말 우연한 어떤 기회가 있어서 그 사람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알게 된다면 그 상대를 민망하게 만들어가면서 그 상황으로부터 굳이 도망을 가진 않겠지만, 어쩌면 그 상황이 그리 달갑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도 요즘은 종종 든다. 뭐랄까, 그건 일차적으로는 누군가의 음악성과 인간성이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서 뮤지션의 인간성까지 구태여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만남을 통해 그 뮤지션의 인간적 매력까지 발견하고 그의 음악을 더 좋아하게 될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람에게 실망해서 그의 음악에 대해서마저 시들해질 것이라는, 나의 '비관주의'가 또 발동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틴에이지 팬클럽의 공연은 정말 매순간순간이 알찼다. 어제 봤던 다른 모든 밴드의 공연과 현격하게 비교됐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음악 이외의 방식으로 수다스럽게 친구인 '척'하며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콘서트의 매력은 CD나 음원을 통해 음악을 들으며 내 닫힌 세계 안에만 존재했던 뮤지션을 세상 속에서 직접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곡에 얽힌 특별한 사연 한두 가지 정도를 소개해주는 멘트는 물론 즐겁고도 특별한 경험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절대, 결단코, 그 어떤 경우에도, 그 사람의 음악을 그 현장에서 만나는 것보다 더 특별하지도 더 감동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팬미팅 이벤트 식의 '팬들과의 만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콘서트장에서 가수가 팬에게 노래 한 번 시켜줬다고 해서, 자기 일상사에 얽힌 사소한 이야기를 시시콜콜 들려줬다고 해서, 그 가수가 팬들과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는 굳이 접하자면 인터뷰를 통해서 접할 수도 있고, 심지어 그 이야기를 접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차라리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방식으로, 자신의 노래를 통해 자기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 가수가 팬들의 삶에 훨씬 더 성큼 다가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사람의 음악을 그 사람의 음성을 통해 한 호흡으로 듣는 것이 내가 콘서트에 가는 가장 큰 의미이고, 그것이 콘서트장에서 그 뮤지션과 만나는 가장 의미있는 만남의 방식이다. 그래서 어제 틴에이지 팬클럽의 공연은 정말 특별했다. 내가 공연의 '이상형'이라고 말할 만한 공연과 부합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대해 중간중간 짧게 '고맙다'는 정도의 말을 한 것과, 한 팬이 만들어온 '틴에이지 팬클럽'이라는 글씨가 적힌 플래카드(?)를 무대 위에서 보고 '거기 뭐라고 적힌 거죠? 멀어서 잘 안 보이네.'라는 말을 한 것을 빼고는 곡 사이사이에 소위 '멘트'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 대신 20년에 걸친 그들의 음악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가장 정직한 그들의 노래를 주어진 시간동안 최대한 꾹꾹 눌러담은, '몸집보다 더 큰' 선물을 주었다. 그것이 그들로부터 내가 가장 받고 싶었다는 선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고마운 선물인 것이다. 과장된 기교 없이 소박하고 진솔한 멜로디에다 그 '연세'에도 여전히 풋풋한 음성으로, 그러나 연주만은 원숙하면서도 열정적이었던 이 밴드는, 뮤지션이 세월과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노먼 블레이크는 시종 온화한 미소를 띤 채 객석을 쳐다보며 정말 행복하게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였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뭔가 응어리지고 뒤틀린 감성과 감각이 있어야만 좀더 격이 있는 음악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편견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너무나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며 후렴구 몇 마디를 따라 부르고 감미롭고 따뜻한 그들의 음악이 내 심장을 관통해 들어오는 순간, 세상에는 그 순간을 넘어서는 그 어떤 고원한 의미도, 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라 바월이 표현했던 대로 '세상마저 얼어붙은 듯' 오로지 그 순간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When I Still Have Thee' 나 'Sweet Days Waiting'과 같은 아련하고도 달콤한 노래는 그것대로, "Everything Flows"의 강렬하고도 애절한 사운드는 그것대로, 공연에 몰입할 수 있는 열정을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보컬 없는 마지막 부분에서의 연주에서는 어느 순간 정말이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분위기를 띄우겠다'는 의도로 굳이 얄팍하기만 한 '발랄'한 곡이나 노골적으로 '방방 뛰는' 곡만 연주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보여주었다. 애절하고 달콤한 곡들로도 얼마든지 강렬하게 팬들을 뒤흔들어 놓고 그들이 함께 호흡하도록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을 틴에이지 팬클럽의 공연이 증명해 주었던 셈이다.
잡다한 신변 이야기를 너절하게 늘어놓으며 팬들과 가까워지는 척 해봐도, 그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 없는 그들의 사적인 삶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며, 나는 그런 사생활을 엿보고 싶은 생각과 의욕 따위는 애초에 없다. 오히려 뮤지션이 그렇게 '인간적인' 매력으로 호소하려 하기 시작하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경향이 강해질수록, 그것이 때로는 가식처럼, 때로는 자신의 음악적인 빈약함을 감추려는 비겁한 시도처럼 느껴질 때조차 있다. 내가 그들의 삶에 가장 내밀하게, 가장 가깝게 다가갔다고 느끼는 순간은, 그들의 음악을 통해서이며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원래 어제 그랜드민트 페스티벌에 갈 때는 틴에이지 팬클럽 공연 다음에 디어클라우드 공연을 갈 생각도 있었지만, 가지 않기로 하고 벨로와 키드니와 함께 공연장을 나섰다. 그것은 무엇보다 내 심장을 쿵쾅대게 만든 그 순간의 감동을 그 어떤 것으로도 망치거나 희석시키고 싶지 않아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디어클라우드에 대해 나름대로 호감을 가지고 있던 내가 그 밴드에 대해 보일 수 있는 최대의 호의이기도 했다. 왜냐면 틴에이지 팬클럽 공연 다음에 그들의 공연을 봐서는, 절대 그들의 공연을 더 좋게 기억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디어클라우드마저 실망스러운 어제의 밴드들 중 하나로 묻혀서 시큰둥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틴에이지 팬클럽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디어클라우드라는 밴드를 위해서도 그 밴드에 대한 최대의 예의를 갖춘 셈이라고 할 수 있다. (ㅍㅎ 뭔가 이현령 비현령스럽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틴에이지 팬클럽이 사인회 장소에 올 것을 기다리는 사이, 야외 스테이지에서 공연 중인 디어클라우드의 노래를 약간 들을 수 있었는데, 어떤 곡에서는 충격적일 정도로 음정이 안 맞게 노래를 불러 음치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역시 안 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는.)
암튼 그래서, 벨로도 어제 틴에이지 팬클럽 공연 들으면서 가장 좋다고 했던 노래이고, 포스팅에서 이미 인용했지만, 나 역시도 마음에 들었던 구절이 있어, 조금 변형해서 적어본다. '당신의 음악만 있다면, 내겐 그리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I don't need much, when I still have thee.)'고. 그리고 무엇보다 무수히 많은 다른 날들처럼, 어제도 오늘도 음악에게 고마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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