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틴에이지 팬클럽의 공연을 보며 눈물 흘리는 키드니를 보고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성장기를 함께 겪어오고 그러면서 현재의 자기를 만들어온 뮤지션, 그리하여 오랫동안 좋아했던 뮤지션을 눈앞에서 보며 가슴이 벅찬 그런 느낌은, 그를 처음으로 만나고 이제 막 알게 된 사람으로서는 항상 부럽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로 그것이 내가 2001년부터 해왔던 이병우 기타 콘서트를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절묘한 우연이었지만, 내가 미국에 가 있던 해에는 심지어 콘서트를 하지 않았었다.) 새내기 시절 한 선배의 생일선물로 우연히 받게 된 그의 CD '야간비행', 내가 그날 받았던 선물은 한 장의 CD였지만, 사실은 그 이상, 내가 십 년을 함께 할 친구를 선물 받은 셈이었다. 비록 기타라는 악기를 칠 줄도 모르고, 음악적 재능이라곤 손톱 만큼도 없는 나지만, 그 한 장의 음반으로, 그 음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어느 기타리스트의 삶'이라는 곡 제목처럼, 한 기타리스트의 삶을 만나고 내 심장은 뛰었다.
물론 그는 많이 변했다. 곡 사이사이에 말 한두 마디 하는 것조차 쩔쩔 매던 모습이나, 꼭 필요한 경우에만 친구들이 연주해주는 피아노나 몇 가지 악기를 곁들여 소박한 실내악처럼 꾸며졌던 첫번째 무대와는 달리, 해를 거듭해 가면서 여전히 서툰 농담이긴 하지만 말 하는 걸 그다지 겁내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무대에는 화려한 오케스트라는 물론 뒤에 걸린 스크린 위로 영화 캡쳐 장면까지 동원되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기타리스트' 이병우를 좋아했던 팬들 중에선 '영화 음악감독' 이병우에게 등을 돌렸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 그 변화가 모두 달갑지만은 않기도 하고, 안타깝고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가 여전히 그의 음악을 해오고 있다는 것, 그 오랜 세월동안 그가 단 한 순간도 기타를 놓지 않았다는 사실 그 한 가지만은 변하지 않았기에 그 변화까지 받아들이려 노력 중이다. 어쩌면 10년동안 함께 했는데, 내 청춘의 시간을 지켜온 사람인데 아직은 놓고 싶지 않다는 내 고집과 오기가 발동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콘서트는 그의 기타 솔로 5집 앨범인 '흡수'에 수록되어 있던 곡, '흡수'와 '인연'으로 시작했다. 그가 생각한 사랑과,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각각 담았다고 했던 그 슬프고도 따뜻한 곡들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흡수'의 사랑은 왜 그리 슬프고 아릿한 건지, 들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 이어서 두 곡의 기타 연주곡을 제외하고는 영화 영상과 함께 한 영화음악이 1부 무대를 끝까지 채웠다.
그러나 이번 공연의 압권은 단연 2부에 나왔던 '어떤 날'의 음악들이었다. '어떤 날'의 경우 이병우를 알게 된 뒤, 그의 음악활동을 거슬러서 찾아보다가 뒤늦게 알게 됐는데도, 너무나 좋아하게 되어 그 음악만큼은 꼭 LP로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심지어 턴테이블도 없으면서 LP를 사버렸던 밴드다. (그 시절의 밴드들, 뮤지션들이 많이 그렇기도 하지만, '어떤 날'처럼 LP와 잘 어울리는 감성을 지닌 밴드는 다시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번 공연에서 그 시절의 곡을 연주한다는 기사를 봤을 때, 내 기대감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2부 무대에 나타난 이병우는 '어떤 날' 앨범에 들어간 사진을 찍을 때 입었던 빨간색과 파란색 줄무늬가 들어간 폴로셔츠를 그대로 입고 나왔다.
내가 봤던 사진은 흑백이었던 터라, 그 티셔츠가 빨강과 파랑의 배색인 줄은 어제 보고서야 처음 알았는데, 인터넷엔 컬러사진이 있었다. 조동익의 형 조동진이 미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왔던 그 셔츠를 받고 '미제는 역시 좋군요'라며 농담을 했다던 그는 그 셔츠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날'이라는 밴드가 그에게 어떤 존재감을 가지는 것이었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프로그램 순서를 정한 사람들은 원래 조용한 노래로 시작해 신나는 분위기로 가는 것이 좋다고 하여 '그런 날에는'을 먼저 연주한 뒤 '출발'과 '너무 아쉬워하지 마'를 부르는 것이었는데, 이병우가 착각을 해서 '신나는 걸로 먼저 시작하는 게 아닌가요?'라고 해 결국 '출발'을 가장 먼저 불렀다. 유희열과 이적이 게스트로 나온다는 것이 그다지 탐탁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병우가 유희열에게 예전에 보컬을 부탁하면서 했다는 말처럼 '음정이 불안하다'는 장점(?)을 가진 유희열이 부른 '너무 아쉬워하지 마'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유희열 음성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아쉬워하지 마'에서 울컥 해버리고. 이어진 '그런 날에는'은 노래 없이 기타 연주로만.
그 다음엔 '하늘'과 '초생달'을 이적의 목소리로 들었다. 이적 자신도 이병우의 전화를 받고 자신은 곡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며 고사를 한 뒤 몇몇 다른 가수들을 추천까지 했는데도 결국 그가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고 했는데, 솔직히 아쉬운 무대였다. 공연장 분위기로 가늠해보건대 물론 그의 '가창력'을 좋아한 관객들도 분명 있었겠지만, 뭔가 찬송가 같기도 하고 오페라의 솔로이스트 같은 느낌을 주는 그의 창법은 역시 내가 듣고 싶었던 '어떤 날'의 노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차라리 '패닉' 1집에서 '아무도'를 부를 때의 덜 다듬어졌던 그였다면 모를까, 뭔가 그 까랑까랑하고 거친 느낌이 없어진 그의 목소리는 목청이 좋다는 생각이 약간 드는 걸 제외하고는 그저 밋밋할 따름이었다. 노래를 부르고 너무나 부끄러워하는 이적을 보며 이병우가 ''하늘'은 딱 이적씨 곡 같지 않아요?'라고 물어보자 다들 '네.'라고 대답하는데, '아니요.'라는 대답이 튀어나오려는 걸 꾹 참아야 했다는. 이번만큼은 이적의 판단이 맞았는데, 이병우가 이적의 말을 들었어야 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헌데 내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영화음악 나오고, 유희열이나 이적 나올 때 좋아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뭔가 최근에야 이병우를 접한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이적 나올 때 막 좋아하는 거 보고 화마저 치밀던 나의 이 못된 심보란-_-; 게다가 이적이 자신을 낮추는 겸양의 의도로 한 말이긴 하지만 '유희열씨 같은 사람은 '어떤 날'의 DNA를 타고 난 사람이지만...'이라고 말하는 걸 듣는데, '대체 무슨 기준으로? 노래를 못한다고 '어떤 날'의 DNA를 타고났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고-
언젠가 조동익씨와 함께, 그리고 '어떤 날'의 곡들로만 채운 무대에 꼭 다시 서고 싶다는 이병우의 말을 들으며, 정말 그런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음악은 만들고 연주하고 싶지만, 너무 수줍어 무대에만은 결코 서지 말자,라고 약속했다던 조동익씨가 과연 그렇게 할 날이 올지에 대해서는 사실 상당히 회의적인지라, 그런 날이 오길 바라긴 하지만 왠지 그럴 거라 믿지는 않는다.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자전거'와 '야간비행'이 이어지고, 공식 무대는 모두 끝났다. 그리고 나서 밴드들이 모두 사라진 무대에 혼자 선 이병우는 '준비된' 앵콜 곡으로 '오후가 있던 일요일'을 불렀다. 자꾸 자신에게 노래를 청하는 분들에게, 이번에 노래를 불러보임으로써 자기 실력을 확실하게 보여주어 그런 요청을 일찌감치 봉쇄해버리기 위한 것이라고 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헌데 나는 애초에 그 노래인지 속삭임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 속삭이는 듯한 음색 때문에 좋아했던 곡이었는데 그 곡을 이병우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감격해 버렸다. 이병우가 직접 불러주는 그 노래를 듣게 될 날이 올 줄은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뭐랄까, 내가 장동건 같은 소위 조각미남보다는 조셉 고든-레빗이나 에드워드 노튼 같은 얼굴이나 느낌을 좋아하는 것처럼, 음악도 '가창력'이라는 객관적 잣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좋아한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중요한 건 역시 감성의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번 콘서트에서 라이브로 연주해주는 1집의 '새'를 듣는 순간, 단지 저 곡 하나를 듣기 위해서만이라도 나는 해마다 다시 그를 만나러 가리라는 것을 다시금 알아버렸다. 마치 처음으로 나는 법을 배운 새가 날개짓 하는 것 같은 손짓으로 기타를 두드려대며, 공기를 가르며 날아올랐다 다음 순간 공기 속으로 미끄러지듯 하강하기도 하는 듯한 한 마리 새의 비상을 표현해내는 그의 모습에서만큼은, 아무리 여러 해가 지나도 처음의 풋풋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손짓이 녹슬지 않고 항상 그런 선율을 들려주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란다. 어쩐지 나는, 사람이 가장 원숙해졌을 때조차, 혹은 가장 원숙해진 바로 그 때 비로소, 소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길 바라는 그런 생각이 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기타만으로는 싱겁고 심심하다는 일부(가 아니라 대다수일 듯?) 팬들의 충고를 듣고 점점 화려한 무대를 보여주는 그가, 다음에 언제 한 번 쯤은, 맨 처음의 그 '심심하고 담담한' 모습으로 단촐하게 기타 하나 들고 나와 그의 선율 하나로 무대를 꽉 채워주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