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즐겨 듣는 팟캐스트 'npr: fresh air'에 'In Treatment'라는 TV 시리즈 홍보를 위해 그 작품의 작가들이 출연했다. 팟캐스트를 듣다 보니 흥미가 생겨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원작은 이스라엘 작품인데 미국에서 번안한 것으로 2시즌까지는 인물이나 사건을 원작에 기반해서 썼는데, 3시즌부터는 완전히 새롭게 써야 한다고 한다.
작품은 폴 웨스턴(Gabriel Byrne 扮)이라는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소재로 한다.
그와 그의 환자들 사이의 상담은 물론, 그가 자신의 정신과 의사와 하는 상담 역시 작품의 소재로 하고 매 편은 25분 정도의 비교적 짧은 분량이다. 헌데 상담실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다루기 때문에 한 편 한 편이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이나 다름없다. (실제로도 이 작품을 담당했던 작가들 가운데는 극작가 출신들이 많았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설정인데 분량이 1시간 가까이 되다 보면 지루하기도 할 것이고 배우들에게도 지나친 고문일 것 같다. 어떤 사건에 대해 설명할 때조차 플래시백 따위에 기대는 일 없이, 실제 상담처럼 전적으로 환자의 언어를 통해서 상황을 전달하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력, 그것도 전적으로 대사를 통해 전달하는 연기력이 관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용하고 사색적이면서도 다소 음울한 느낌이 드는 가브리엘 번은, 환자들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정신과 의사 주인공 폴 웨스턴 역에 정말 제격인 듯. (이 사람 지독하게 음울하다는 건 알면서도 전부터 목소리랑 얼굴 너무 좋았는데, 나이 든 모습은 더 좋다는.) 그리고 나머지 배우들 역시도 아무런 액션연기 없이 서로 얼굴만 마주보고 20분이 넘는 시간동안 대사만을 줄줄 쏟아내는 거 보면서 감탄하는 중. (특히 십대 소녀 소피 역을 연기하는 스무살 배우 Mia Wasikowska의 폭풍 연기. 그녀는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 역을 맡았던 배우이기도 했고 구스 반 산트의 2011년 신작 'Restless'의 주연을 맡기도 했다고.)
작품이 좀 더 진행되면서 어떤 결론이나 매듭을 지어주는 경우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결론' 없는 대화의 과정 자체를 보는 것이 흥미롭다. 그건 어쩌면 나의 구체적인 인적 맥락이나 상황을 한 번도 직접 접해본 적 없는 '생판 남'에게 자신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는다는 이 '정신과 치료'라는 발상이 예전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는 그런 사람에게밖에는 이야기할 수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 이야기에 감정적으로 연루되고 그로 인해 영향받고, 그렇게 영향받은 사람의 감정이 또 그 이야기 속의 대상에게까지 다시 영향을 미치고, 그 감정이 다시 나에 대한 판단으로 되돌아오는, 겹겹의 감정의 도미노가 너무나 어지럽고 감당하기 힘들어질 때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 나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보이고 싶지 않고 보일 엄두가 나지 않을 때가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와 사적인 삶에 감정적으로 연루되지 않으면서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땅 속에 구덩이를 파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던 이발사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조차 한달까. 물론 그렇게 차분하게 아무런 감정의 동요없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듯한 폴조차도 결국 다른 의사에게 상담을 받으러 가야 하는 거 보면, 그 사람의 사적인 삶에 전혀 연루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연루되는 고리를 완전히 끊는다는 건 불가능해 보이지만.
어쩌면 그건 결국 우리가 삶에서 궁극적으로 바라는 건 그저, '나 자신을 잃지 않도록 말 걸어주는 사람과 나를 위해 조금은 들어줄 줄 아는 사람', '하고 싶은 말이 하나도 없을 때라도, 들어줄 만한 친구' 하나 쯤은 있었으면 하는 것이기 때문인지도. 1
- 고바야시 히데오, 'X에게 보내는 편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