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마도 내 생애의 절반 이상의 독서를 다 한 듯한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에게 책은 곧 소설을 의미했다. 물론 그 시절은 지금처럼 민음사나 열린책들 같은 곳에서 온갖 종류의 세계문학전집이 쏟아져 나오기 전이라 그렇기도 했을 테지만, 중·고등학생의 경제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책을 사려다 보니, 동네 서점에서 50%씩 할인해서 팔던 을유문화사나 일신서적의 문학전집을 주로 사서 읽었다. (그보다 더 싸게 팔 때도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키드니 포스팅에 댓글로도 썼지만, 대부분의 독서는 세계명작이라고 하는 것들 위주. 키드니가 안 읽었다고 했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 소설이나 이름 길고 복잡한 러시아 소설들은 어지간하면 다 읽은 거 같다. (아무리 봐도 톨스토이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낫다.) 물론 지금까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릴 때만 해도 소설의 등장인물 이름이나 줄거리를 기억하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아서 복잡한 러시아 이름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런데 그 시절만 해도 울프나 조이스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접하진 못했고, 그런 류의 의식의 흐름 기법의 소설들은 전공 수업 때문에 대학에나 와서 읽게 된 듯. 어쨌든 이 포스팅은 내가 읽지 않았던 책에 대한 간증이니까 주제로 들어가서-
90년대 후반 이후의 한국소설
현대 한국 소설가들 작품은 고등학교 때 신경숙과 윤대녕까지 열심히 읽은 게 마지막이었던 거 같다.특히 신경숙은 소설뿐만 아니라 산문집까지도 악착같이 찾아서 읽었고, 요절을 한 탓에 작품이 그다지 많진 않았던 김소진은 대학 새내기 시절정도까지는 읽었는데, 그 이후의 한국 소설은 정말 거짓말 보태지 않고 단 한 줄도 읽지 않았다. (블로그 같은 데 인용된 거 읽은 거 빼고, 내가 책을 집어들고 읽은 거.) 요즘 문단의 중요한 인물들이 된 은희경, 김영하, 그리고 최근 소설가들 중 대중적으로나 비평가들로부터나 고른 사랑을 받는 김연수에 이르기까지 전혀 읽지 않았다.
딱 은희경이나 김영하가 문학동네 문학상으로 등단을 하던 그 시점부터 이상할 정도로 한국 문학에 대한 흥미가 싹 사라졌다. 그냥 문학의 모든 징후가 우주에서 가장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일종의 신경증과 강박증처럼 느껴졌달까. 읽지 않고 내린 판단이기 때문에 사실은 지독한 편견이겠지만 어쨌든 도저히 흥미가 회복되질 않아서 지금까지도 계속 읽지 않고 있다. 특히 김연수 소설은 간혹 인용한 블로그들을 여기저기서 보기도 하는데, 그렇게 몇 줄을 접해 봐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질 않으니, 당분간 읽을 일은 없지 않을지. 그런데 한국 현대 소설에 대한 흥미를 사라지게 한 데는 공지영이나 이문열 같은 사람들의 역할(?)도 상당히 컸다고 본다. 읽고 나서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던 소설들. 이런 사람들이 버젓이 소설가라고 활동할 수 있는 문단이라는 것이 나에겐 너무 암울하게 느껴져서 그 이후론 그냥 도매금으로 평가절하했던 게 사실이라면 사실.
20세기 중반 이후의 일본소설
앞에서 얘기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쌍-무라카미, 즉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를 필두로 한국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아직까지도 한국 서점가의 서고를 채우고 있는 20세기 중반 이후의 일본 소설가들의 소설은 전혀 읽지 않았다. 아마도 코엘료나 벨로가 좋아하는 아멜리 노통브를 읽지 않은 것과 비슷한 맥락일 텐데, 난 대중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작품들은 읽고 싶지가 않다. 특히 한참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 그 흐름에 발맞춰서 읽기 시작했다면 모를까, 이미 인기가 정점에 달한 이후에는 --게다가 이런 소설가들일수록 다작을 한다-_-;;;-- 도저히 손을 대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냥 포기해 버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는 단편이라고 할 수도 없는 분량의 짧은 소설을 친구가 편지와 함께 '복사'를 해서 보내준 적이 있어서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어쩌구 저쩌구 하는 제목이었는데...-_-) 딱 한 편 읽긴 했지만, 유명한 장편들은 단 한 편도 읽은 적 없다.
미국소설
우선 대표적으로 20년대 초중반의 헤밍웨이, 포크너, 스타인벡의 작품을 들 수 있다. 미국이 진정 자랑하는 대표적 소설가들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고, 특히 포크너는 교환학생 갔을 때 미국 소설 강의하던 교수가 문체를 엄청나게 극찬했는데, 난 아무리 읽어도 그 맛을 모르겠더라는. 헤밍웨이는 너무 진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또 별로 땡기지가 않았다. <노인과 바다>의 경우엔 영화도 간혹 방영되는 거 봤는데, 영화조차도 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 본 적이 없다는. 스타인벡의 경우 내가 고등학교 때 사들였던 전집 중에 심지어 <분노의 포도>가 포함되어 있었고, 그 시절만 해도 사놓은 책을 다 읽기 전엔 새 책을 사지 않았는데도, 읽지 않았다. 그 전집 중에서 사놓고도 읽지 않은 거의 유일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듯. 그리고 이름은 꽤 들었는데 읽지 않은 소설가 중 하나가 헨리 제임스. 이상하게 이 사람은 이름이 주는 이미지가 영국의 시대물 어설프게 흉내냈을 거 같은 미국 소설가다. (진짜 그렇다는 게 아니라, 나의 근거없는 편견. 미국 사람들은 '헨리'라는 이름 많이 안 써서 좀 그런 듯.)
난 이상하게 영문과에서도 영국 소설만 심하게 편식해서 미국 소설은 정말 맛을 들이지 못했던 거 같다. 그렇다고 전혀 안 읽었던 건 아니다. 미국까지 갔으니 미국인이 가르치는 미국 소설 강의를 들어보고 싶은 생각에 근대미국소설 강의 역시 교환학생 때 들었는데, 어쩌면 그게 역효과가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토마스 핀천이나 돈 드릴로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양대산맥이라고 하는 사람들 작품을 읽었는데, 그냥... (쌍욕 나올 뻔 했다 ㅋ) 근데 그 시기뿐만 아니라, 독립 시기의 미국 작품들도 안 좋아하니까. 암튼 미국 소설 재미를 잘 못 찾겠어. 유일한 예외라면 마크 트웨인이라고 해야 하나. 그건 어쩌면 어린 시절이기에 가능했던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에 대한 흥미 때문이었던 것도 같지만.
마르께스를 제외한 중남미 소설
솔직히 말하면, 마르께스를 읽게 된 이유는 신경숙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때 한창 신경숙에 미쳐 있을 때, 그녀의 어느 책에선가 <백년 동안의 고독>이 언급된 걸 보고 아마도 찾아서 읽었던 거 같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는. 세상에 이런 놀라운 소설이!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하지만, 실은 외가댁에서 자라면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썼다고 했던 이 소설은 뭔가 민담 같기도 하면서, 중남미의 상처투성이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기도 했다. 물론 그 시절엔 <토지>를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고 나서는, 역사소설을 <토지>처럼 쓰지 않고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라는 발견에 너무나 매료되었었다는. 그 이후로도 마르께스 단편이나 자서전 같은 건 더 찾아서 읽었지만, 나 역시 키드니처럼 '나 문학 좀 합네' 하는 사람들이 뻐기듯이 읽는 보르헤스 소설들은 읽지 않았다. 작년에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도 누가 좋다고 했던 거 기억나서 읽어봤는데, 역시나 뭔가 지루함을 넘어가지 못하고 접어치웠다는. 그래서 난 중남미 소설이 아니라 그냥 마르께스만 좋아하나 봐, 라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렸다.
D.H. 로렌스, E.M. 포스터
대충 1,2차 대전 전후의 제국주의 시대의 대표적 영국소설가라고 할 수 있으려나. 이들을 뭐라고 분류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암튼 이 두 명의 영국 소설가들의 작품은 읽은 적이 없다. 특히 D.H. 로렌스는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어떤 잘난 척 하는 사람이 '엄청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하는 거 듣고 나서, 별로 재미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더욱 안 읽게 된다. 포스터는 이상하게도 영화화된 작품이 많은데, 영화들 중에서 재밌게 본 작품이 없어서, 소설을 안 읽게 되었던 건지 뭔지. ㅌㄹ마을에선 인기가 많은 작가 중 하나인데, 아직까지도 별로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키드니가 빅토리아 시기를 별로 안 좋아한다면, 나는 1,2차 대전 전후의 제국주의 시대의 작품들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기도. 뭔가 그 전쟁에 대한 생각들이 때로는 너무 나이브하게 표현된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과민하게 표현된 것 같기도 하고, 나한테는 생각이 잘 정리가 되지 않는 작품들인 듯. 그런데 이렇게 분류하기도 힘든 게, 비슷한 시기인데도 반면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은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울프도 그런 편이고. 뭔가 모던한 감각이 좋다고 할까. 그렇지만 의식의 흐름 기법 안 좋아한다는 키드니 말은 이해한다. 내가 사실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 안 좋아하는 이유가 그것과 연장선. 전통적인 서사를 파괴한 소설들이 엄청난 혁명인 것처럼 문단에선 받아들였지만, 난 좀 심하게 말해서 서사의 능력이 결여된 소설가들의 편법처럼 느껴졌었다.
『아Q정전』
따로 분류하긴 힘들지만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이 노신의 『아Q정전』이다. 너무도 유명하고, 노신 작품 중에선 거의 유일하게 장편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난 이 작품이 그냥 너무 구질구질한 이미지라 읽기 싫어서 안 읽었는데, 그게 지금까지도 계속 됐다. '정신승리법'이라는 표현은 많이 들어서 익숙한 데다, 뭔가 줄거리를 듣고 나니 더더욱 관심이 안 생겨서 안 읽었다. 앞으로도 이 사실이 바뀌긴 힘들 듯.
이것 외에도 틀림없이 더 있을 텐데, 지금은 생각 나는 게 없으니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