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친구를 만나 어느 카페에 들어갔는데 꽤 한산했다. (처음엔 우리 말고 한 사람밖에 더 없었다.) 그러다 따로따로 들어온 두 쌍의 커플이 벽쪽 자리에,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 한 커플은 마주보고, 다른 커플은 나란히 붙어서. 나란히 붙어앉은 커플은 사귄 지 오래 되지 않은 건지 원래 공공장소에서의 애정행각에 다소 소극적인 것인지, 입을 맞추거나 뭐 그러진 않았고, 간혹 손을 잡고 이야기하거나 어깨에 손을 얹고 앉아 있거나 뭐 그러면서 닭살을 떨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던 커플 중 여자 아이가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울면서 남자애에게 뭔가 끊임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딱 보아하니 남자애의 태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다. 남자아이는 옆모습만 살짝 보였는데, 여자애를 달래려 한다거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기는 커녕, 별 공감조차 표현하지 않은 채 의자에 다소 삐딱하게 기대앉은 자세로 울고 있는 여자애를 정말 '무심히' 쳐다보며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흐르는 눈물을 냅킨으로 훔치던 여자애가 중간에 카페에 놓인 냅킨을 더 가져오기 위해 자리를 한 번 뜨고, 남자애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자리를 비운 때를 제외하고는, 이 커플은 아줌마스러운 호기심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한 우리가 카페를 나올 때까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두 시간이 넘도록 그런 상황을 지속하고 있었다.
남의 불행이나 심각한 상황에 대해 그러면 안 되는 것이겠지만, 같이 앉았던 나와 친구는 우리의 대화 중간중간에, 가십에 굶주려 남의 이야기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아줌마들의 태도로, 나름대로 그 커플이 그 순간 하고 있을 말들을 막 상상해서 덧씌워보고, 그 옆에서 닭살을 떨고 있는 커플이 그 싸우는 커플을 보며 얼마나 또 의기양양해 하고 있을까,라는 상황을 상상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런 식으로 누군가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고, 기력을 소진하고, 그래서 포기해 버리기도, 또 그러다가도 기적처럼 회복되기도 하던 순간들이 내겐 참 아득한 기억 속에나 남아 있지만,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난 왠지 내가 어떤 관계들 속에서 그랬던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문득... 피로감이 확 몰려왔다. '역시 저렇게 감정소모가 많은 연애는 젊었을 때나 하는 거지, 난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라는 늙수그레한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나올 만큼.
그 아이들을 보면서, 언젠가 한 번쯤은 저런 연애를 경험해 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런 과정을 통해 관계에 대한 지혜도, 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에 대한 판단력도 생기는 것일 테지만, 정말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젊음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늙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얼마 전에 ㅌㄹ마을에서 잠시 화제가 되긴 했지만 난 왠지 저런 순간들을 생각하면 --혹시 어떤 마법이나 기술의 힘으로 그런 일이 가능하게 되더라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젊음의 풋풋함이 아무리 사랑스럽더라도 그것도 한 번이면 족한 것 같고, 무엇보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미워하고 싸우면서 사랑하는 것도, 한 번도 안 해본다면 좀 아쉬울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할 수 있을 때 한 번 해보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다는.
이러다 보면 '행여' 누구를 만나더라도 ('행여'에 강한 방점 ㅋㅋ) 나처럼 몸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만성적 귀차니즘에 깊이 빠진 사람이나 만나게 되는 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