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Howl

review/movie 2011. 3. 2. 22:58

다운받아놓은 지는 꽤 됐었는데 계속 미뤄두고 안 봤던 "하울(Howl)"을 오늘에서야 드디어 봤다. 영화는 미국 문단에서 '비트 제너레이션 (beat generation)'이라고 지칭되는 2차대전 이후 문학적 경향을 대표하는 시인인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의 대표적 장시의 제목을 그대로 따와 제목을 붙인 영화다. 미국에게는 비록 승리한 전쟁이었다고 해도,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 자체가 미국 사회에 가져온 전후의 패배적(beat) 분위기 속에서, 현대 산업사회, 그리고 그 사회의 기존의 도덕과 질서를 거부하고 원초적 빈곤을 감수함으로써 개성의 해방을 가져오려고 한 세대라는 의미에서, 물론 기성세대들에겐 일종의 광란적 취향을 가진 세대였다는 의미에서, 50년대 중반의 미국 문단을 '비트 제너레이션'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리고 '울부짖음'이라는 의미의 'Howl'이라는 긴즈버그의 시가 바로 그런 문학적 경향의 중심에 놓여 있다. 그리고 약물복용과 이성애는 물론 동성애의 성행위를 묘사하고 있는/환기하는 듯한 시적 표현이 문제가 되면서 이 시는 외설 논쟁에 휩싸여 더욱 많은 논란과 관심으로 5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시가 되었다.

영화 자체도 그 시의 창작 시기인 1955년 언저리를 배경으로 해서, 그 시에 대한 외설 논쟁으로 인해 일어났던 법정공방, 앨런 긴즈버그에 대한 인터뷰,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 자체를 낭송하는 1955년 10월 샌프란시스코 '식스 갤러리'에서의 낭송회 장면과, 낭송되는 시의 음성 위에 입혀진 시상(詩像)을 표현한 애니메이션 등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종종 그의 시 창작의 영감이 되었을 법한 과거의 사건 등을 몽타주의 형식으로 짧게 짧게 보여주긴 하지만, 그의 삶 전체나 삶의 긴 부분을 연대기적으로 구성하고 있지는 않다. 그의 삶의 가장 강렬한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을 '하울'이라는 시, 그 시의 창작 배경, 그 시가 사회적으로 미친 파급효과 등만을 간결하게 편집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특히 처음에는 시 낭송과 거기에 덧입혀 시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 지배적이라 초반 30분 정도까지는 몰입 자체가 힘들 수도 있다.

그런데 젊은 날의 긴즈버그가 살아돌아온 것 같은 모습의 제임스 프랑코, 그리고 그런 긴즈버그의 독특한 호흡과 억양을 고스란히 재현한 듯한 시 낭송의 리듬감과, 그 사이사이에 '하울'의 출판인 로렌스 퍼린게티(Lawrence Ferlinghetti)를 상대로 벌어졌던 시의 외설성에 대한 법정공방 장면과, 동성애자였던 긴즈버그가 시 창작 과정 전후에 --주로 전에-- 겪었던 사랑과 실연의 여정에 대한 파편적 조각들이 등장하면서 긴즈버그의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던 삶, 전후 50년대 미국사회, 그리고 '하울'이라는 시의 힘으로 영화는 나름의 서사적 긴장을 유지한다. 최소한 나에게는 1시간 20분짜리 시 낭송회에 가까운 이 영화의 러닝 타임이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실존인물의 생애를 다룬 영화의 경우 서사적으로 재구성된 다큐멘터리라는 인상 정도를 주고는 종종 거기서 그치고 마는 것을 본다. 그런데 시인의 '실제'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로 배우의 외모를 '재구성'하고 그 모습을 철저히 연기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에 대한 전기적 다큐멘터리로 '안전하게' 접근하지 않았다는 점도, 나에겐 오히려 이 영화가 보여준 흥미로운 요소 가운데 또 한 가지였다. 

Allen Ginsberg (오른쪽) & Peter Orlovsky. 그들은 1954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긴즈버그가 세상을 떠난 1997년까지 평생을 반려자로서 함께했다.

앨런 긴즈버그 역의 제임스 프랑코(오른쪽)와 피터 올로프스키 역의 아론 트바이트(Aaron Tveit).



시란 뭔가 '낭송'이 갖는 묘한 힘이 있어서 그 시 속의 어휘를 속속들이 알지 못해 완전히 알아듣지 못할 때조차도, 누군가 읽어주는 걸 듣고 있으면 묘하게 그 시를 이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영화 역시 그런 낭송의 힘을 느끼게 해서, '하울'이라는 시는 2000년에 학부 수업을 들으면서 읽었으니 이미 읽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영화 속 제임스 프랑코의 낭송을 듣고 나니 이 시를 새삼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을 정도였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는, <매드멘> 속 캐릭터를 고스란히 연상시키는 외모와 말투를 갖추고 등장하여 원고 퍼린게티의 변호인 역할을 연기한 배우 '존 햄'의 모습을 보는 건 마치 '도널드 드레이퍼'의 카메오 출연을 보는 것 같아서 <매드멘>의 열렬한 팬으로서는 이 영화에서 발견한 또 다른 재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주인공 제임스 프랑코는 내가 본 것만으로도 <밀크>와 이 영화 두 편에서 게이 역할을 했는데, 지금까지 출연작 가운데 세 작품에서 게이 역할을 했기 때문에, 실제로도 성적 취향에 대한 의혹을 많이 제기받는다고. (ㅋ 그런데 나머지 한 작품은 뭘까?) 뭐 실제로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애나 오라일리(Ahna O'Reilly)와 사귀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섣불리 '강추'는 못하겠고, 근대의 서사시를 한 번 읽는다는 기분으로 영화를 '읽어보고' 싶다면 한 번쯤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가볍게 추천'은 하겠다.





@ 거의 트윗 수준의 포스팅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양적으로만 보면 이로써 오늘만 포스팅 한꺼번에 다섯 개 했다. 뭔 짓이냐 -_-; 쿨럭~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