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키드니의 흥미진진 터키 대장정기--17일이면 여행기 수준이 아닐 듯 ㅋㅋ--가 올라오기 시작하자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더 올라오기 전에 썰렁한 후기를 매듭지어놓는 것이 좋을 듯하여 쓴다.

8월은 일주일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많은 공연에 다녀왔다. 너무 좋아서 같은 공연을 두 번 연달아 간 것도 있었고, 운좋게 공짜표가 생겨서 덥썩 물어서(?) 라디오 공개방송을 다녀오기도 했고, 오랫동안 팬이었지만 한 두 해 정도 공연은 보지 못했던/않았던 가수의 소극장 콘서트에 오랜만에 가기도 했다.

특히 '루시드 폴'의 공연은 
공짜 라디오 공개방송을 유난히 시큰둥하게 다녀온 뒤였고, 내가 지금도 좋아하는 많은 곡들을 부른 가수의 콘서트를 몇 년만에 다시 가는 거라 여러 가지로 기대를 품고 갔다. 그런 후기를 이제서야 쓰는 건, 왜 후기를 아직도 올리지 않았냐며 별로였냐고 반문했던, 벨로가 말한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별로여서 쓰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갔던, 지금까지도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하리 만치 성의없던 그의 대규모 콘서트에 대한 나쁜 기억과 가장 최근의 앨범에 대한 실망감을, 초심으로 돌아간 듯한 이 소극장 콘서트가 어쩌면 씻어주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콘서트도 이미 꺼진 그의 음악에 대한 애정의 불씨를 되살리기엔 역부족이었지 싶다.

매주 이틀씩은 공연이 없긴 해도 기본적으로 한 달 동안 하는 콘서트이다 보니 자칫 셋리스트가 미리 공개되어 버릴 수도 있는 컨셉트의 공연이었다. 하지만 그날그날의 공연 셋리스트는 매번 다르다고 했고, 그것은 공연 당일, 노래하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관객들에게 공개하게 된다고 했다. 대규모 콘서트 셋리스트에 반드시 포함되지는 않는, 그의 곡들 중에서도 나름대로 마이너한 곡이라 할 수 있는 몇 곡의 노래들을 반드시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고, 그 중 두 곡이나 들었으니 운이 좋은 편이라면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노래를 듣는 내내, 마치 한때 좋아했던 마음은 이미 희미해져버린 헤어진 연인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느낌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오랫동안 좋아했지만 이젠 아무런 마음도 남아있지 않은 연인에게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말을 하고, 그런 말을 들은 그가 애써 마음을 돌리버려 하는 이런 저런 말들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느낌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도 같다. 아, 내가 저 사람을 좋아했었지,라고  마음 속으로 되뇌어 보지만 아무런 감흥도 설렘도 없는 과거형의 어떤 존재를 보고있는 느낌.

그나마 지금도 CD를 들으면 종종 울컥하거나 설레기도 하는 예전 곡들을 들을 땐 좀 나았다. 헌데 너무도 설레는 표정으로 수줍게 내민 그의 신곡들은 하나같이 실망스러웠다. '사랑합니다'와 '감사합니다'라는 표현들이 아무런 여과나 장식없이 그대로 나오는 가사들이 어찌 보면 담박하고 솔직하다 느낄 법도 하고, 마치 나에게만 하는 고백 같은 느낌에 두근거릴 법도 했다. 그렇지만 그저 참 적나라하다,라는 인상밖에 없었다. 게다가 어쩌면 그것과는 지나치게 대비된다 싶을 만큼 나머지 가사들은 또 너무 다듬어지고 매만져져 있어 불균형하다고 느껴지기조차 했다. 

난 대체 뭘 기대하고 갔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나는 사실 그가 
조금은 날이 서 있는 듯하고, 어딘가에 부딪치면 스스로 더 많은 상처를 입을 듯한 얇은 유리조각 같은 표면을 가진 그때 만든 노래들을 좋아하고, 그가 여전히 그런 노래를 해주리라 바라고 있었다. 그런 곡들이 나에게 위로를 주었던 것은 거기에 나를 '위로하는' 말들, 이제 괜찮아질 거야, 나는 널 사랑한단다,라는 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다른 모든 이들처럼 상처받고 살아가고 그러면서도 그 아픔을 노래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있구나,라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지금 그의 노래는, 나에게는 위로 전도사,가 부르는 노래라고 표현해야 하나, 뭐 그랬다. 

사실 그는 그저 세월과 함께 모난 곳이 조금은 둥글어지고 편안해지는 것, 세월이 동반하는 당연한 변화를 겪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미 지난 앨범의 변화를 보면서 그가 변했든, 혹은 내가 변해서이든, 이젠 그의 노래를 듣는 것이 나에겐 무덤덤하고, 그렇게 때문에 그의 노래를 듣는 것이 버겁다는 걸 이미 한 번 확인했었는데도, 난 여전히 내가 원하는 그의 어떤 상을 버리기 싫었던 것 같다. 좋아했던 이들이 변해가고, 혹은 누군가를 좋아하던 나의 감정이 빛바래 가는, 그런 것들을 겪는 것은 항상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역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뭐, 너무 오버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일을 겪을 때면 역시 어떤 대상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시들어버린 사랑을 잘 갈무리하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그의 옛날 앨범들을 종종 꺼내서 듣고, 그 노래들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할 테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앞으로는 그의 새로운 노래들에 심장이 쿵 내려 앉는 그런 기분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것 같다.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