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오랜만에 나의 집착대상-_-;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 것 같다. 한동안은 그 대상이 '여배우'와 '김연아'였는데, 어제 키드니와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매그레 시리즈를 서로 맞바꿔 읽겠다고 교환한 탓도 있는 것 같고, 마침내 내일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캐슬' 4 시즌이 방영된다는 사실에 들떠 있는 나를 발견하며, 오늘 문득 떠오른 대상은 '추리물/수사물'.
어릴 때 추리물을 읽거나 그런 류의 TV 프로그램 보는 거 안 좋아하는 애들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취향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니까 알 수 없는 일. 어쨌든 난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유난히 그런 내용을 다룬 텍스트라면 책이든 TV든, 영화든 좋아했다. 그렇게 해서 처음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은, 어린이용 혹은 청소년용으로 각색되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였다. (우리 아파트에 오던 '이동도서관'에서 매주 두어 권씩 그 시리즈를 빌려보며 다음 주를 손꼽아 기다리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마도 시쳇말로 하면 까도남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세상 모든 사람들을 한 점 미안함 없이 대놓고 바보 취급하면서, 그런 취급이 전혀 과도하다 할 수 없는 지적 우월성을 보여주던 홈즈는 무한선망의 대상. 추리물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좋아한다고들 하고, 나 역시 접하게 될 경우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뭔가 첫정(이랄까 하는 것) 때문에 홈즈 사랑을 놓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동통한 외모의 푸와로보다는 키 크고 마른 홈즈에 대한 편파적 취향이 그 때부터 작용했던 것이라고밖엔 볼 수 없는 ㅋㅋ) 그 외에도 내가 보았던 것으로 지금 기억이 나는 것 중에는 "심지어" 셜록 홈즈의 첫사랑과 유년기를 다루었던 어떤 영화도 있었다. 정말 홈즈와 관련된 것이라면 빼놓지 않고 찾아 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나의 추리물 사랑을 키우는 데 또 일조했던 것은, 내가 중학생일 때 (1학년이었나, 2학년이었나?) 방영되었던 '레밍턴 스틸'! 그 당시 우리 아버지는 일주일에 단 한 개의 TV 프로그램만을 시청하도록 허용했었는데,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일요일 낮에 방영되던 레밍턴 스틸이었다. ㅋㅋㅋ (나는 지금도 나의 TV 중독 증세가 이 엄격한 규칙으로 인해 어린 시절에 TV를 너무 못 본 탓에 그 부작용으로 생긴 것이 아닐까,라고 주장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때가 있지만, 아마도 실상은 그렇게 말리지 않았으면 그 때부터 TV를 끼고 사는 것으로 귀결했겄지? ㅎㅎ) 그 향수와 사랑이 얼마나 깊었던지, 그런 지 십 년도 넘은 후였던 미국 유학 시절에 나는 심지어 이것을 디비디로 다시 사서 봤을 정도. (그러고 나서 다시 볼 것 같지 않은 디비디 몇 편을 아마존인지 이베이인지에 다시 팔고 왔는데 이것도 그 사이에 끼어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나서는 아버지의 추천으로 '형사 콜롬보'를 재미있게 보았고, 이후 대학, 대학원 시절에는 Law & Order 오리지널과 SVU, CSI 등을 거의 빼놓지 않고 찾아 보았다. 그리고 영화 중에서도 '유주얼 서스펙트' 같은 건 거의 열 번쯤 봤던 거 같다. 그런데 Law & Order 오리지널은 이미 끝나서 그렇기도 하지만, SVU나 CSI는 지금은 안 보는 프로그램들 중 하나. 사실 CSI 그리섬 반장의 후까시 때문에 봤던 거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그런 어설픈 후까시에 열광했던 내가 부끄럽다. ^^;; 그리고 형사 콜롬보의 경우는 마치 홈즈의 캐릭터를 뒤집어서 허술하고 어눌한 외모로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킨 상태에서, 도리어 범인들의 뒤통수를 치듯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콜롬보의 수사과정이 꽤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대체로 인기있는 추리물들에서는 무능한 경찰을 능가하는 유능한 '사설탐정'의 존재가 부각되었던 반면, 이 작품에서는 언뜻 그렇게 스테레오타입에 들어맞는 듯이 무능해 보이는 '형사'가 실제로 탁월한 수사능력을 발휘하는 데서 반전이라면 반전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주민들도 잘 아다시피-- 미드 중독 증세가 심각해지면서 (ㅋㅋ) 추리물이란 추리물은 일단 정보를 접한 경우에는 단 한 편이라도 찾아서 봤던 것 같다. (그 중에선 취향에 잘 안 맞아서 그렇게 몇 편 보다가 말았던 것도 있었고, 5,6 시즌이 넘어갈 때까지도 꾸준히 보고 있는 시리즈물도 있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의 미드 중독 증세가 심해졌던 것이 그 역의 이유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웬만큼 미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미드에 정말 많이 등장하는 소재가 법조계, 의료계, 그리고 형사계이다 보니 (ㅋ), 미드 중엔 추리물이 정말 많다. 그러다 보니 추리물을 좇다 보면 자꾸 미드로 미드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러고 보면 사실은 추리물 중독 때문에 미드 중독이 생긴 것일 수도!? (이거야말로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따지는 것인데, 그게 정말 중요해?-_-a) 뭐 이유야 어찌 됐든 그렇게 해서 보기 시작하여 지금껏 즐겨 보고 있는 것이 크리미널 마인드, 본즈, 캐슬, 프린지 등이고, 그것들이 쉴 때는 그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 다른 추리물까지도 아쉬운 대로(?) 또 찾아본다는. 그 목록에 들어가는 것이 콜드케이스나 라이 투 미, 고스트 앤 크라임, 덱스터 등등.
사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이 모든 드라마들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될 예정이라 기대에 부풀어 있다. ㅍㅎㅎ 그런데 오랫동안 보아오던 미국의 추리물들 외에 지금 목을 빼고 기다리는 작품은 사실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영국 BBC에서 작년에 제작되어 시즌 1을 방영하고, 시즌 2를 원래 올해 하반기에 방영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가 내년 초로 미뤄진 '셜록'!!! 이 셜록은 정말 명작 중의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 중 하나인데, 셜록과 왓슨의 캐릭터와 구도를 정말 재미있게 살리기도 했거니와, 그것을 '현대물'로서도 정말 훌륭하게 각색했다. 대부분의 셜록 홈즈가 원작의 시대상에 충실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작품은 각 에피소드에 모티프가 되는 작품과 사건을 가져오되, 그 배경이 되는 시대를 2000년대로 옮겨 서사를 진행한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이라든가 블로그 같은 시대적 표상까지 적극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잘 활용해서 서사의 템포와 긴장을 잘 유지한다. 한 '시즌'이라고 말하기 뭣할 정도로 한 시즌에 3편의 에피소드밖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섭섭하기 짝이 없지만, 그 각색의 정도와 대본,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수긍하게 된다. 그 외에도 1편에 대한 평이 그가 주연했던 다른 작품인 '아이언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별로 좋진 않았지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주연했던 셜록 홈즈가 올 하반기에 2편이 나올 예정이라 BBC '셜록'의 공백을 메워줄 듯하다. 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하는 셜록 너무 재미있고 좋았는데, 사실 영화평은 그다지 좋지 않아서 좀 아쉬웠다. 그래도 2편까지 나온 거 보면 그래도 꽤 인기는 있었던 건가.
아. 그리고 '의학' 드라마의 탈을 쓴(?) '하우스' 역시 '홈즈'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이라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더 관심을 가지고 몰입해서 봤던 것도 같다. '홈즈(Holmes)-왓슨(Watson)'과 '하우스(House)-윌슨(Wilson)'이라는 이름 사이에 공명하는 유사점으로 보나, 하우스와 윌슨 역을 각각 맡은 휴 로리와 로버트 숀 레너드의 외모에서 느껴지는 홈즈와 왓슨 캐릭터의 흔적도 그렇고,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라기보다 병의 증상들을 사건의 단서처럼 추적해서 병을 진단해내는 데 더 열을 올리는 진단의학과의 의사이자 오만한 천재 독설가인 하우스의 독특함은 확실히 여러 면에서 홈즈를 연상시킨다. 어찌 보면 '셜록'에 앞서 홈즈를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데 성공한 것은 '하우스'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이 추리물 미드들이 쉬는 6-8월 사이에 내 추리물 사랑의 틈새에 들어왔던 것이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반장) 시리즈였다. 이거 없었으면 여름 어떻게 났을 겨-(라는 별 걱정을 다 할 정도!?) 괘래니가 매그레 시리즈를 읽어볼까 하는 궁금증에 트위터에 올린 멘션에 답을 하기도 했지만, 화려하고 치밀한 수사와 추리가 주는 흥미진진한 재미를 기대한다면, 매그레 시리즈는 별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반장/형사가 등장한다는 의미에서 굳이 장르 구분을 하면 수사물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의 수사에는 논리적이고 치밀한 추리는 부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매그레는 사건의 중심에 놓인 인물을 둘러싼 정황, 그리고 삶을 충실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관찰하는 인물에 가깝고, 그렇기 때문에 매그레 시리즈는 형사가 주인공인 소설이지, 수사물이라고 하기도 다소 어렵다. 오히려 매 편의 살인사건의의 베일이 벗겨질 때 궁금해지는 것은 사건의 범인이라기보다, 그를 사건을 둘러싼 여러 켜의 삶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그레는 아주 독특한 추리물이고, 그런 점에서 긴박감은 없지만 진득한 재미가 있다.
헌데 나는 추리물을 좋아한다고 하는 데 비해서는, 사실 그 추리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실제로 추리물을 본격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그 탐정이나 형사가 포착하는 단서들을 따라가며 본인도 기민하게 추리해서 범인을 밝히는 과정을 즐기는 것 같은데,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이 그런 의미에서는 정말 치밀하긴 하다.) 난 사실 그냥 주인공이 진행하는 추리의 과정을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으로 즐긴다.뭔가 베일에 싸인 사건을 파헤치는 긴박감을 즐기긴 하지만, 음... 내가 별로 동참하고 싶진 않다는. (역시나 몸만 게으른 게 아니라 머리도 게으르다...) 머리가 좋거나 몸이 부지런한 사람들이 그렇게 동분서주 좌충우돌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걸, 그저 전적으로 관찰하길 좋아할 뿐. 그리고 아가사 크리스티 같은 정통 추리물보다 오락성이나 대중성 있는 작품을 좋아하는 거 보면, 이러면서도 추리물을 좋아한다고 해도 되는 걸까, 싶긴 하지만 뭐 즐기는 방법은 각자 나름 아니겠어? ㅋ 나같이 몸도 마음도 게으른 애가 어쩌다 추리물을 좋아하게 됐을까 싶지만, 워낙 삶에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을 몸으로는 당최 하지 않으니까 이런 식으로 추리물의 서사적 긴장을 즐기면서 그것을 대행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ㅋㅋ
일단 내일 '캐슬'을 필두로 "나의 소중한" 추리물들(뭐냐. 나 스미골이여?)을 또 만나겠구나- 에헤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