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tless sleep' 이라는 표현이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restless'라는 단어를 접하면, 마음이 저 하나 뉘일 곳 없어 한 순간의 휴식조차 취하지 못하는 불면의 뒤척임 같은 것이 떠오른다. 구스 반 산트의 새 영화 'Restless'는 바로 그러했던 세 영혼이 각자의 휴식을 찾는 여정을 그린 듯하다. (뭐 딱히 맥락이 닿은 것은 아니나, 'Fringe' 라는 미국 TV 시리즈에서 '영혼 자석(soul magnet)'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영혼에 서로를 끌어당기는 자석 같은 것이 있어서 같은 영혼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끌어당겨 이 영화 속 세 명의 주인공이 만나게 된 것 같은 그런 느낌.)
하나는 2차대전에 참전해 가미가제로 희생되어, 이미 영면의 상태에 있어야 하지만 유령이 되어 이승을 떠도는 일본군 병사 히로시.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있던 자동차가 사고가 나면서 몇 주? 몇 달 동안 의식불명 상태, 일종의 긴 가사(假死) 상태에 있다가 깨어났다고 할 수 있을 에녹. 마지막으로는 암으로 3개월 정도 남았다는 최후통첩을 받고 영면을 준비하는 애나벨. 이 세 영혼의 매개자가, 나머지 두 영혼 사이의 다리 같은 상태에 있는 에녹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에녹과 애나벨의 사랑이 서사의 주된 모티프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 세 명의 영혼이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할 수 없는 (restless)' 상태에서 휴식을 찾아가는 여정이 이 영화의 큰 줄기라고 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왠지 제목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난 사실 에녹과 애나벨의 사랑보다도 영혼의 불면의 뒤척임이 사그라드는 그 과정이 더 도드라져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함께 영화를 봤던 키드니, 벨로와도 얘기를 했지만-- 가미가제의 희생자인 일본군 히로시 캐릭터의 등장은 납득하기 힘든 설정. '가미가제'라는 대표성, 혹은 2차대전이라는 전쟁 외에는 이름조차 지워진 채로 흩어져 간 청춘들에 대한 나름의 장송곡인 건지, 무슨 화해의 제스쳐인지 뭔지. 혹은 그런 거대담론의 명분 자체를 버리고 봐야 하는 건지 몰라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었을 뿐. 전쟁의 명분이라는 대표성을 지우기엔 이미 그의 존재 자체가 '개체'라기보다는 추상적 관념 혹은 하나의 클리셰처럼 느껴졌다. 전쟁과 가미가제라는 역사적 명분을 그저 고스란히 뒤집어 놓아 그 자체가 화해라든가 이름없는 존재들에 의한 미시사라든가 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역사적 명분이 되고 만 것 같은. 이 작품이 단순한 로맨스 영화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라서 굳이 이렇게 이질적인 존재를 그려넣은 것인지는 몰라도, 마치 풍경화 속에 불쑥 들어가 있는 프로파간다용 포스터의 이미지 같은 느낌? 뭐 그랬다. 그렇지만 영화 막바지에 나레이션처럼 들어간, 히로시가 이승에 두고 떠나야 했던 연인에게 마침내 보냈다고 할 수 있는, 부치지 못한 편지의 구절구절들은 좀 뭉클하긴 했다.
그리고 에녹 역을 했던 헨리 호퍼의 풋풋한 외모와 애나벨 역의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튀지 않으면서 사랑스러운 연기, 그리고 그들을 통해 보이는 첫사랑의 '클리셰'들은 보고 있노라니 흐뭇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마치 첫사랑을 추억하는 노년의 관점 같은 걸로 보면 말이지. ㅋㅋ 뭔가, 참 좋을 때다-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장면장면이었다고나 할까. 또 한 가지 언급하자면, 마지막의 장례식 장면과 상가(喪家)의 풍경이 내겐 특히 인상적이었다. 죽음이란 것이 원래 슬픈 것이긴 하겠지만 그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도 있을 텐데, 난 사실 우리 나라 장례가 너무 침울하고 무거워서 힘이 들 때가 많다. 만약 내가 내 장례의 방식을 택할 수 있다면, 그렇게 컬러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좀 있다. 공간은 컬러풀하면서, 내가 좋아한 노래들 중 너무 슬프지 않은 노래 같은 거 틀어놨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암튼 그래도 구스 반 산트 영화를 보게 만드는 매력이라고 하면,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으로 다루어질 때조차 치밀하게 재고 깎아서 날렵하게 날이 서게 만든 느낌보다 투박한 느낌이 드는 점인데, 이 영화도 다소 어색하고 옹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없진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의 연장선상에는 있었다. 뭐랄까, 굳이 비교하자면 헨리 무어(Henry Moore)의 조각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결코 둔감하거나 서툴어서가 아니라, 부러 그렇게 빚어낸 뭉툭하고 투박한 곡선과 물질감으로 충만한 육체에서 다듬어지거나 길들여지지 않은 생명력을 가진 이야기들이 꿈틀거리며 나오는 느낌.
어쨌든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헨리 호퍼의 꽃미모와 최근 할리웃에서 주목하는 어린 연기파 배우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넘치지 않는 지적인 연기를 보고 싶다면, 히로시의 존재가 주는 의아함을 꾹 눌러참고, 혹은 그 의아함을 곱씹으면서, 한 번 정도는 볼 만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