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줄리언 반스...
줄리언 반스의 2011년 신간 "The sense of an ending"을 읽느라
간만에 영어로 소설책을 읽었는데,
이건 정말, 단연 최고다.
이 소설은, 줄리언 반스 특유의 고요하고 차분하고 고백적인 어조를 유지하면서도,
그런 고요함 속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고 호기심이 끊임없이 자극된다.
마치 고요한 표면 아래 격류가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처음 3,40페이지 정도는 별로 속도감이 없고
인물들에 익숙해지는 데 서사가 많이 할애되다 보니
덩달아 나의 독서 속도도 더뎠는데
그걸 넘어간 뒤에는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밤을 새고 새벽까지 소설책을 읽느라 잠을 못 잔 건 정말 간만이었다.
이 소설 속의 사건(?)을 따라가는 여정은,
'플로베르의 앵무새'와 관련된 미스테리를 찾아다니던 중년의 퇴역 의사이자 플로베르 애호가인
화자 제프리 브레이스웨이트의 여정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어떤 상황들에 닥치고 그것을 겪어나가면서 그것을 마치 후일담처럼 이야기하던
'내 말 좀 들어봐'와 '사랑, 그리고'의 화자들 스튜어트, 올리버, 질리언을 연상시키는 구석도 있었다.
헌데 그러면서 내가 지금껏 느꼈던 줄리언 반스는
심리적인 요소에 치중하는 그런 글을 썼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은 그런 부분을 놓치지 않는 동시에 '극적인' 재미를 선사했다.
순수하게 '재미'로만 그의 작품을 매겨보자면 이번이 단연 최고라 할 정도다.
아무래도 그간의 작품들은 이미 소개되고 번역된 지도 이미 꽤 되다 보니
내가 책을 읽기 전에 어느 정도 자료를 접할 수 있는 상태였던 데다가,
심지어 키드니의 서평을 읽은 뒤에 작품들을 접해서 그런지
결정적인 스포일러는 접하지 않았을 때조차도
완전히 신선하거나 충격적인 적이 없었다.
반면 이번에는 우연히 책표지 안쪽에 뭔가 작품에 관한 설명이 있길래
아예 그 표지까지 벗겨낸 뒤에,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읽어서 그런지
완전히 낯설고도 충격적인 발견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유주얼 서스펙트'를 처음 봤을 때 입이 다물어지지 않던 기분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에 도달하는 순간,
그 전까지 하나하나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한순간에 후두둑 모여들면서
제자리로 탁탁 맞아들어가는 것을 보는 느낌.
그래서 나 역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일체의 발언도 하지 않겠음! ㅋ
그리고 그 조각들이 들어맞는 절묘함을 음미하기 위해
나도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처음 몇 페이지만 다시 읽었는데도 이미
'아, 이 말이 그 말이었구나-'라며 감탄 중.)
아마도 누군가가 (줄리언 반스 번역 전문 신재실 선생님? ㅋ)
이 책을 지금 손가락이 부서져라
한국어로 번역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번역된다면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미아니는 당장 영어로 읽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