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본방사수를 하면서 보는 드라마도 아니었고,
<홈랜드> 망언(?) 이후 판단에 많이 신중해진 터라
함부로 칭찬을 하지 않으려고 참아왔는데
아무래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뿌리 깊은 나무>는 정녕 훌륭하도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윳빛깔 한석규!
ㅋㅋㅋㅋ
혹시라도, 지금까지 이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 중에 볼 생각이 있는 사람은
절대 결단코 무슨 일이 있어도 홈페이지의 등장인물 소개는 읽지 말고 볼 것!
거기 중요한 스포일러가 있어서 보고 나면 극적인 재미가 반감될 것임.
이제 마지막 3분의 1에 해당하는 6회분이 남았으니
이야기의 매듭들을 잘 마무리하는 일이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중반을 넘어선 지금 시점까지만 보면 이작품은
서사의 엄청난 밀도와 응집력, 뒷골에 묵지근하게 생각이 머물게 하는 대사들,
미스테리 수사물로서 외국의 어떤 작품들에도 뒤지지 않는 치밀함과 모골이 서늘해지는 반전,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캐릭터들의 생생함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주연은 물론 사소한 조연들에게까지 이르는 고른 연기력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이 작품은 이미 트위터에도 한 번 언급했다시피
긴박감 넘치는 서사와 더불어 인간 본성에 대한 심원한 고민까지 녹여넣은 작품으로 꼽히는
'로열패밀리'의 김영현-박상연 작가 콤비가 또 다시 합작으로 쓴 작품이다.
특히 김영현 작가는 '대장금'으로부터 시작해서 '선덕여왕', '로열패밀리'에 이르는 작품들로
이른 바 '영현불패'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대중성과 작품성 면에서
고르게 호평을 받은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인 작가이다.
그래도 그간의 다른 작품들은 간간이 발연기를 보이는 연기자들도 있거나
내가 감당키에 너무 오글거리거나 오버스럽게 느껴지는 대사들이 종종 있었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필력과 배우들의 연기력, 연출의 역량이 모두 최대치로 발휘되어
어디 한 군데 흠을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는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모든 뛰어난 연기자들 중 그 누구보다 돋보이는 천의무봉의 연기력을 보여주며
세종 역에 한석규 이외의 다른 배우를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들 정도의
연기를 펼치고 있는 한석규,
그에게 완전히 압도되었다.
사실 그간에도 그의 연기력에 별 의문을 품었던 적은 없었지만
그가 지난 10년 정도의 기간동안 선택했던 작품들은
그를 기억의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지게 만들었었다.
(특히 지금도 생각만 하면 구토부터 나올 것 같은 영화 '주홍글씨'는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를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헌데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그야말로 벼락이 떨어지고 가뭄이 들어도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감내해야만 하는
한 국가에 대한 어마어마한 책임을 떠안고 있는 임금으로서,
또한 개인의 차원에서는 비범한 천재로서 세종 이도가 겪는 번뇌,
그러면서도 세상에 굳건히 발을 딛고 살아가고자 발버둥치는
한 인간의 지난한 노력 등으로 표현되는 그 인물의 결 하나하나는,
우선 그것을 충실히 살려낸 극본 자체가 가지는 힘에서 비롯된다.
그 재위기간 동안의 엄청난 성취 때문에 붙는 '성군'이라는 수식어,
그리고 세종이라는 시호에 자동으로 붙어나오는 '대왕'이라는 칭호는
사실 그의 외형적 성취에 대한 칭송일 뿐
그의 내면에 대한 형용으로서는 빈껍데기나 다름없다.
그에게도 어떤 '인간적' 면모와 고뇌가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해보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의 측면에서는 그것이 어떤 것일지
살을 붙이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우선 이 작품의 작가들은 그것을 해냈다.
그리고 그것을 완벽하게 체현해낸 배우 한석규에게서 그 힘이 폭발해 나온다.
말했다시피 모든 연기자들이 이 작품에서는 평균 그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매력 넘치는 무사 무휼 역의 조진웅도,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장혁도
여전히 '연기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눈초리나 입매, 말투 같은 것이
도저히 걸러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가리온 역의 윤제문 정도가
가히 한석규와 필적해도 부족하지 않은 연기력을 보여준다 할만하긴 하다.
그리고 송중기 역시 처음 몇 회에 나왔던 청년 이도의 연기,
젊은 날의 이도의 환영으로 등장해 한석규와 한 화면 속에서 연기할 때
한석규에게 밀리지 않는 소름돋는 연기를 보여주어,
그저 꽃다운 미소년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며 그를 다시 보게 했다.)
헌데 한석규에겐 그런 순간이 없다.
이미 세상에 없는 아버지 태종과는 다른 길을 가려 하지만 여전히 그의 그늘에서
그 유령과 같은 존재감과 쟁투해야 하는 임금의 외롭고 거의 광기어린 고뇌와 비애감을 표현할 때도,
이른 바 사사로운 개인의 감정과 국가와 역사를 위한 대의(大義)라는
시시각각 숨통이 조여오는 양자택일의 선택지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할 때도,
그런 엄청난 압박감과 고통으로 점철된 삶의 사이사이에 찾아오는 잠깐의 휴식에서
조금이나마 마음을 내려놓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벗'들에게
장난스레 농을 하는 짓궂은 소년 같은 모습을 표현할 때도
그는 손짓 하나 눈빛 하나에서조차
단 한 순간도 필요 이상의 감정이나 수준 미달의 연기를 보여주는 적이 없다.
그것은 그래서 마치 연기가 아닌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궁극의 연기다.
왜냐면 보통의 우리들은, 꼭 연기를 해야하는 상황에서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그런 감정의 극한이라든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에 적절한 말과 표현을 할 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기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표현의 방식이란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한 채 버버벅대거나
그냥 영문도 모른 채 눈물을 흘리거나 하는 정도일 뿐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속이 후련해지고 뒷통수를 때리는 것 같은 어떤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이하고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람의 말과 표현은
고도로 다듬어지고 정련된 연기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고는
사실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누구라도 글을 배우면 글자를 배열한 수준의 글을 쓸 수야 있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그것을 갈고 닦은 특정한 사람만의 특별한 능력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저히 연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보이지 않는
한석규의 연기는 그만큼 고도의 연기인 것이다.
아무튼 지금 내가 기껏 느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건
덜어낼 것도 보탤 것도 없는 세종 연기를 보여주는 한석규와
그를 둘러싼 긴박감 넘치는 사건들의 가슴 졸이는 전개,
그러면서도 인간과 삶,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는
이런 사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것이 되었든
창작하는 이들에겐 역시 경이를 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금 확인했다.
제발 남아있는 마지막 여섯 편에 홈랜드와 같은 불쾌한 반전은 없길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