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철의 여인

review/movie 2012. 3. 21. 02:11


얼마 전, 키드니가 영화 '아티스트'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자신이 일종의 코미디 영화인 그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 '의외의' 사건(?)을 공개한 바 있었다. 나에겐 오늘 더 기막히고도 희한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철의 여인'을 보며 운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린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행여 있다면, 기껏해야 대처 딸 정도나 되지 않을까 싶은데. 눈물을 흘리면서 나도 스스로 의아할 지경이었다. 어찌 보면 이 글은 영화에 대한 리뷰라기보다, 나는 어째서 '철의 여인'을 보면서 울었는가,에 대한 변명이 되지 않을지. ㅋㅋ 내 글을 읽을 사람 중에 이 영화를 볼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변명을 하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스포일러가 있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영화는 1990년에 총리직에서 물러나고도 20년 이상 지난 시점에 마가렛 대처 '여사'로서의 노년의 대처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2003년에 남편이 죽었고, 영화에서는 그가 죽은 지 이미 8년이 지났다고 하는 대목이 있었으므로 영화의 시점은 2011년이었던 셈. 그녀는 뇌졸중으로 2002년에 쓰러진 이후 점점 건강이 악화되고 치매증상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그녀가 이미 8년 전에 죽은 남편의 환영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과거를 놓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현재와, 그런 그녀가 놓지 못하는 과거의 '삶'이 무엇인지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준다. 나는 이 치매 노인이 된 대처가 그녀의 남편, 혹은 그녀가 놓지 못하는 과거와 나누는 대화들을 볼 때면 왜 그리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헌데 그것은 남자들만의 세계인 것이 당연한 20년 전의 정치권에서 영국 최초일 뿐만 아니라 서구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한 여성의 눈물겨운 투쟁에 대한 공감의 눈물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것은, 그 지난한 투쟁, 보수당을 바꾸고 정치를 바꾸고 영국, 그리고 세계를 바꾸기 위해 스스로는 운명을 뚫고 나가고 생각했던 한 인간이 생의 막바지에 와서 부딪치게 된, 자신의 정신 하나조차 단단히 그러메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찌 보면 나약하고 무기력한 인간의 숙명에 대한 눈물이었다. '나약해 빠진' 이들을 끊임없이 독려하고 채찍질하며 강경해지기를, 그리고 스스로도 강해지려 버티고 버텼던 한 사람이 과거와의 대화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이어가는 듯한 모습은, 사실 인간이 운명 앞에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역설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도저하게 운명을 거스르는 양 자신만만하게 --어찌 보면 오만하게-- 살아가던 한 인간이 실은 운명의 소용돌이에서 한발자국도 걸어나오지 못한 채 그 안에서 무릎 꿇게 된, 오이디푸스적 비극의 한 단면을 본 것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 속 대처의 증상이 과연 대처의 실제 치매 증상과 어느 정도의 유사성이 있는지도 모르겠거니와, 결국 그런 노년의 대처를 그리면서 그녀의 과거의 고난을 스냅샷처럼 보여준 것이, 보수적 정치인들의 정책수행 방식을 막연히 낭만화한 혐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특히 우리 나라의 일부 여성 정치인들이 행여나 자신을 대처와 동일시하는 과대망상증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하여 더욱 우려되는 부분이다.) 특히나 그녀의 총리 재임기간에 경제부흥을 위해 광산들을 강제 폐광하고 광부들의 파업을 강경진압했던 것이라든가, 아르헨티나가 영국령 섬을 침공한 것에 대해 거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강수를 두어 무력대응을 한 것 등이 치매 노인이 된 그녀의 기억을 통해, 한 국가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외롭게 짊어지고 가야했던 아름답고도 당연한 희생이었던 것인 양 그려질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토록 강경하게 역사를 주도하는 한 인간인 양 살아오던 한 개인이 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갈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그 삶의 기억들이 그녀 자신에게마저도 조각난 파편들로만 남았을 뿐인 현실을 보면, 한 인간이 역사를 주도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행여 가능하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이 들게 했다. 나에게 그 영화가 눈물 흘리게 한 점은 그런 것이었던 듯하다. 뭐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내게 정치 영화였다기보다는, 노년에 대한, 인간과 운명의 싸움에 대한,  결국 그 안에서의 인간의 너무도 당연하고도 나약한 패배에 관한 영화였다. 그것은 종종 내가 삶에 대해 갖는 의문, 만약 인간이 운명에게 패배하는 것이 기정사실이라면 인간은 과연 어떤 삶을 택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다시금 환기시켜 주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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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몰라. 다 핑계고, 아무리 그래도 이 영화 보고 운 건 주책이고 불가사의야-_-;;; 근데 치매 할머니가 먼저 간 할아버지랑 대화하는 장면 왜 일케 슬픈 거냐구- 사실 그냥 그게 슬펐던 겨. 그리고 그 환영과 싸워보겠다고 '들리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아' 막 혼잣말로 되뇌면서 텔레비전에다 라디오 볼륨까지 한껏 높이고, 온갖 소리 큰 주방기기들까지 다 틀어놓으며 정신줄 잡아보겠다고 사투하는 장면이나, 마침내 마지막에 짐 정리하는 것도 그랬고... 
 


어쨌든 마지막으로 메릴 스트립 연기 좋았다. 지난 주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장 뒤자르댕의 연기와 더불어 과연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한 연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