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ㅌㄹ마을 블로그 불황 타개를 위한 왕자님의 노력에 대한 주민 호응의 의미로 나도 포스팅 하나. ㅋㅋ 키드니가 만든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통 기억나는 게 없어서, 대충 질문을 만들어가며 해 봤음.
유년 시절의 영화
정확히 어느 영화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의 초등학교 시절의 극장 영화는 팔할이... 우뢰매와 영구 시리즈였다. 심형래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ㅋㅋㅋㅋ 키드니와 비슷하게, 동네 아이들 여럿을 모아서 그 아이들 엄마 중 한 사람이 애들을 극장에 넣어놓고(?) 영화가 끝나면 데리러 오던 그런 시스템으로, 나름 동네 아이들이 즐겨 단체관람한 영화들이었다. 그 당시 영구는 대체 왜 그리 재미있었던 것이었을까? ㅎㅎ
그 외의 영화들은 주로 텔레비전에서 봤다. 춘천도 시골이었던지라, 내가 자라던 즈음에 극장이라곤 육림극장과 피카디리 두 개뿐이었는데, 그나마도 극장에 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휴일 낮의 특선 영화나 주말의 명화가 내가 영화를 보는 가장 일상적인 통로였던 것 같다.
그 시절에 관심을 기울이며 봤던 영화는 주로 엄마가 언급했던 것들이었다. 지금껏 기억나는 건, 엄마와 아빠가 데이트를 위해 처음 본 영화였다는 '닥터 지바고' (난 우리 부모님의 연애(?) 시절에는 별 관심도 없었고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도 거의 없는데, 이 영화만큼은 구체적으로 제목이 거론되어서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 로마 여행을 가서 엄마가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다녔던 곳을 이야기해서 스페인 광장의 계단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진실의 입을 찾아서 그 구멍에 손을 넣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 영화는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몇 년이 지난 뒤에야 봤던 거 같은데, 정말 오드리 햅번의 사랑스런 미모와 영화 속 장면들이 오래오래 기억난다. 오드리 햅번을 좋아했던 우리 엄마의 훌륭한 취향에 나중에 매우 감탄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절을 대표하는 추억의 명화라면 '사운드 오브 뮤직'!!! 이 영화 정말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게다가 영화 속에 등장했던 노래들로 영어공부도 많이 했었으니 진정 교육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ㅋ
암튼 엄마의 추억을 공유하며 함께 즐겁게 볼 수 있는 명화들이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좋은 거 같다. 예전의 할리우드가 좋은 점은 그런 거였던 거 같다. 뭔가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수위의 건전하고 감동적이면서 아름다운 영화들이 많았다는 거. 그리고 생각해 보면,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데는 엄마 덕이 참 컸다. 또 이건 딱히 영화와 관련된 건 아닌데, 어쩌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라도 끔찍하고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우리 엄마는 꼭 엄마 눈을 감고 내 눈을 손으로 가리곤 했었다. 크고 나서 엄마한테, 내가 무서운 영화를 못 보게 된 건 그때 엄마가 그렇게 해서인지도 몰라,라고 한 적도 있긴 하지만, 뭐 지금 내 상태를 보면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거지 엄마가 그렇게 해서는 아닌 거 같다. 생각해 보면 엄마가 그렇게 해 준 게 참 고맙다는.
청소년기의 영화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딱 두 편의 영화가 지배를 했던 거 같다. '죽은 시인의 사회'와 '흐르는 강물처럼'.
'죽은 시인의 사회'는 중학교 때 첫 중간고사가 끝나던 토요일에, 시험을 다 마치고 나서 학교에서 정규 하교시간까지 학생들 붙들어 놓느라 틀어줬던 영화였는데, 결국 비디오 상편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하교시간이 되어 대부분 아이들이 먼저 다 가고 대여섯 명 정도의 아이들이 남아서 영화를 다 보고 갔다. 그리고 나서 바로 집으로 돌아와 하편을 빌려 끝까지 다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서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걸 녹화해놓고 보고, 그러면서도 텔레비전에서 행여 방영하면 또 보고, 책도 사고, 대사를 줄줄 외우고, '죽은 시인의 사회'와 관련된 건 무엇 하나 소홀히 여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웃기는 건, 그 시절에 대부분 친구들은 닐 역할을 한 로버트 숀 레너드나 토드 역의 에단 호크 팬이었는데 (그게 정상이고 당연한 거잖아???-_-), 나만 늙다리 로빈 윌리엄스를 좋아했던 것이지. 그 이후로도 로빈 윌리엄스 때문에 '사랑의 기적', '패치 아담스', '주만지' 등등 온갖 잡다한 영화를 참 안 본 것이 없었다. 정말 못말리는 취향이었다. ㅋㅋㅋㅋ
그리고 나서 '죽은 시인의 사회' 정도의 임팩트를 준 영화는 '흐르는 강물처럼'. 그 영화의 결말이 참 충격적이면서도 슬펐고, 그 영화에 다뤄진 시대의 미국의 풍경, 의상, 음악 등이 참 좋았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로우웨이스트 원피스 차림에 모자를 쓴 그 시대 여성들의 모습을 참 좋아한다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나레이션도 참 멋졌고, 그가 감독을 했다는 점도 좋았는데, 그 작품을 능가하는 연출작이 없다는 것이 좀 아쉽다.
나홀로 극장, 극장생활의 전성기이자 암흑기
대학에 들어간 뒤로는 극장을 정말 많이 다녔다. 친해진 친구들은 내가 숫기가 없다는 걸 의아해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난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누군가랑 친구가 된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미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가 다른 친구를 대동한 자리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비교적 말을 잘 섞는 편인데, 그렇지 않고 모르는 사람들만 우글우글한 자리에선 사실상 아무 말도 못한 채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다 오는 경우가 많다. 대학 시절이 그랬다. 대학에 들어왔는데 함께 고등학교 다녔던 친한 친구들 중에 같이 온 친구는 하나도 없었고, 사람들한테 어떻게 가서 말을 붙여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 시절의 나를 두고, 어떤 선배가 '쟤 벙어리인 줄 알았어.'라고 말한 적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ㅋ) 유일한 낙은 혼자 극장 가는 거였다. 그리고 소심증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던지라 괜히 누구한테 같이 가자고 했는데 재미없는 영화면 미안할까봐 그런 것도 싫었고. ㅍㅎ 참 이 시절은 영화를 많이 본 점에선 마음이 풍요로웠지만, 동시에 몹시도 황폐한 시기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혼자 극장 가서 영화 보는 거 좋아하지만, 함께 갈 사람이 있는데 혼자 보는 것과, 함께 갈 사람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혼자 간다는 기분은 역시 다른 듯. 함께 영화를 보러 다닐 친구들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친구와 최초로 극장에서 본 영화
실제로 친구와 본 최초의 영화였던 것 같지는 않은데, 어쨌든 친구와 극장에서 본 것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토탈 이클립스'다. 당시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조니 뎁의 정신지체아 동생 역할을 해서 연기력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헐리우드의 신예 '레오나리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했다는 사실과 천재 예술가들 사이의 뒤틀린 사랑에 관한 내용으로 화제가 된 작품이었다. 내가 그 영화를 보러 가게 된 이유에는 디카프리오가 너무 잘생겼다며 그의 팬을 자처했던 친구가 꼭 함께 가자고 한 것이 컸다. 헌데 그 영화의 소재 때문에 당연히 연령제한이 있었는데, 나와 친구는 어떻게든 나이가 들어보이기 위해 한껏 신경을 썼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그래봤자 화장을 한 것도 아니고, 귀밑 3센치 단발도 뻔하고, 게다가 지금도 이 얼굴인 내가 그 때라고 나이가 들어보였겠냐고-_- 그땐 햇볕도 잘 안 봐서 얼굴도 유난히 희멀게 가지고 정말 누가 봐도 중고생인 게 빤했는데. 그냥 매표소 아저씨가 별로 신경 안 쓰고 들여보냈을 텐데, 그 당시엔 들어가기 직전까진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들어간 뒤엔 얼마나 뿌듯하던지 참. ㅋ 암튼 이 시절 디카프리오 정말 앳되고 꽃답고 아름다웠다. 그렇게해서 들어간 보람이 있었다. ㅎㅎ
좋아하는 사람과 처음 단둘이 본 영화
후아유! 당시 내가 엄청난 짝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시절이었는데, 원래 몇 명이 같이 이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못 나오고 결국 나랑 그 사람 둘이서 보게 되었던 듯. 그 사람과 영화를 함께 본다는 것 자체도 콩닥콩닥했는데, 영화 내용도 그랬던 데다가, 나오니까 시네코아 출구에서 이 영화 관람객들에게는 영화 OST를 공짜로 선물하는 이벤트까지 하는 중이었다. 뭐 엄청난 감동이 있는 명작은 아니었지만, 영화도 딱 적당히 좋았었는데, 특별한 사람과 보았다는 사실도 좋았고, 그런 작은 이벤트라면 이벤트까지 더해져서 여러 모로 기억에 남는다. 음, 그 사람과는? 나중에 잘 됐지~ ㅎㅎ 근데 그 이후로 함께 본 영화는 도리어 별로 기억 안 난다는.
볼 땐 좋아라 보고 나중에 그 사실이 부끄러워진 영화
타이타닉-_-;;;; 그런 뻔한 내용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엄청 감동하며 봤던 나의 감성(?)이 너무 촌스럽게 느껴져서 솔직히 부끄럽다 ㅋㅋㅋ 그나마 혼자 간직하면 됐을 일이지, 당시 미국에 있었던 시절이라 친구들에게 편지 쓰는 게 낙이었는데,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서 또 동네방네 떠들어대서 증거도 많이 남아있다. 아 창피해- ㅋ 이것이 내가 행여나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이유다. (별 걱정을 참... ;;) 털면 먼지 너무 많이 날 거 같다 ㅍㅎㅎ
절대 혼자 극장 가서 보지 않을 거 같았는데, 어쨌든 가서 본 영화
심은하의 '텔미썸딩'과 워킹타이틀 제작의 '러브 액추얼리'.
'텔미썸딩'은 뭐 뻔하지만 여배우 때문에 본 거다. 워낙 끔찍한 장면이나 무서운 장면이 나오는 영화는 꺼려서 혼자서는 절대 볼 생각이 없었다. 헌데 함께 볼 사람을 물색도 해보고 날짜도 맞춰 봤는데 영 시간이 안 맞아서 우물쭈물하다가 어느 새 개봉 마지막날에 임박해 버린 것. 결국 혼자 가서 봤는데, 극장에 사람은 너댓 명 정도밖에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나로서는 정말 엄청 무섭고 음산한 영화를 그렇게 썰렁한 극장에서 보려니 어찌나 무섭고 떨리던지. 물론, 영화 장면의 반 정도는 눈 감고 귀 막고 있느라 못 보고, 오로지 시크한 심은하의 미모로 마음을 달랬던 기억이 난다.
'러브 액추얼리'는 당시에 사람들 평이 너무 좋아서 궁금하고 보고 싶었는데, 그때가 그런 영화를 함께 볼 사람이 없던 시기였던 거 같다. 콜린 퍼스가 꼭 보고 싶어서 결국 이것 역시 마지막 상영날 혼자 연말의 인파 속에서 떠밀리면서 봤던 거 같다. 보고 나오면서 그냥 디비디로 볼 걸, 하는 후회 같은 걸 했던 것도.
학교에서 단체관람한 영화
이게 최초였는지는 모르겠고, 역시나 시골학교의 특징상 극장 자체가 별로 많지 않아서 단체관람 같은 걸 간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유일한 단체관람이었을 수도 있는데 그런지 여부는 잘 기억 안 난다. 어쨌거나 가장 기억에 남는 단체관람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극장에서 재상영할 때 본 것. 고2때였던 것 같고 (내가 좋아하던 국사선생님이 보고 나서 감상문 쓰는 숙제를 내주셔서 기억 난다.), 당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텔레비전에서도 보고, 책으로 읽은 뒤 한참 관심이 많을 때라서 무척 설렜던 기억이 난다. 막상 보고 난 뒤엔, 극장에서 보아서 특별히 좋았는지는 모르겠다.
영화 보다가 뛰쳐나간 적이 있다거나, 보기 싫은 사람과 함께 봤거나, 그럴 만한 영화가 아닌데 두 번 본 작품이 있다면 기억이 날 법도 한데, 그런 적이 전혀 없는지 통 기억 나는 사건이 없네. 혹시 떠오른다면 그건 나중에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