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Wallander

review/drama 2012. 3. 26. 12:41


<셜록> 속 셜록 홈즈의 사건 추리가 비상한 머리로 벌이는 일종의 지능 게임 혹은 그의 지루한 일상을 흔드는 유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면, <월랜더> 속 커트 월랜더의 수사는 온 몸의 민감한 촉수 하나하나틀 통해 타인의 고통을 마치 제 몸의 고통인 양 속속들이 느끼는 자의 감정이입이자 자신의 존재 자체와 인간 행위의 의미를 근원부터 되묻게 하는 실존적 질문이다. 나는 두 가지 종류의 수사물을 모두 좋아하긴 하지만, 확실히 나에게도 전자는 정교한 지적 유희가 주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후자의 경우가 좀 더 안이함을 당연시하지 못하게끔 하고 마음이 깨어있도록, 이 세계에 존재하는 고통에 민감해지고 눈을 뜨도록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라마의 주인공 케네스 브래너의 연기! 나름 <햄릿>과 <헛소동> 같은 데서 한때 꿈꾸는 듯한 눈빛의 꽃청년으로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 미모(?)는 이제 졌지만, 이 드라마의 배역, 다소 쇠락한 느낌을 풍기는 번민하는 중년, 월랜더 형사로서 완벽하게 변신한 그의 모습이 반갑다. 영국 배우들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아름다운 외모를 완상하는 즐거움이 분명 있긴 하지만-- 그가 비현실적이지 않은 정직한(?) 몸매인 점도 좋다.



또 한 번 셜록과 비교를 하자면, 세상의 가장 극단적 불행만이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양 사건을 찾아다니는 셜록의 반짝반짝 빛나는 기민함 대신, 이 드라마에서는 월랜더가 피로에 절고 우울에 젖은 몽롱한 상태에서 소스라치듯 깨어나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그것은 혹 사건이라는 것이 잠들려는 그의 현실 감각을 깨우는 것인 동시에, 그다지 달고 편안하지 않은 짧은 쪽잠마저 쉬이 허락하지 않는, 그런 불편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모든 사건들에서 자신의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심한 경우 자책감에 시달리는 그를 위로하려고 주변의 어떤 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인물을 밝히면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서.) "당신이 하고 있는 좋은 일을 떠올려 보는 게 낫지 않아요? 더 큰 그림이라든가? (Shouldn't you try to remember the good that you do? The bigger picture?)" 이에 대한 그의 반응.
"전 더 큰 그림 같은 건 있는 거 같지 않아요.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죠. 지금. 여기. 그저... 이게 우리 삶인 거에요. 부서질 듯 연약하고, 예측할 수 없이 불안한 그대로. 그리고 그 자체로 기적이죠. 우리가 갖고 있는 건 그게 다에요. (I don't really think that there is a bigger picture. This is where we live. Here. Now. Just... these are our lives. And they are fragile, they're precarious. They're miraculous. They're all we have.)"

그는, 그런 사람이다. 


<월랜더>는 2008년 11월부터 12월까지, 그리고 2010년 1월에 1, 2시즌이 각각 방영된 이후로, 만 2년을 넘기고 마침내 올해 7월 8일에 3시즌 방영을 앞두고 있다. 과연 이번 시즌에는 어떤 이야기를 펼쳐낼지 자못 궁금하다. 앞선 시즌들의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스포일러가 될 테니 생략하기로 하고, 미끼 하나만 더 던지는 셈치고, 1시즌 1회에 <어바웃 어 보이>의 주인공 소년이었으며, <스킨스>의 꽃청년으로 다시(?) 태어난 니콜라스 홀트가 등장한다는 것을 살짝 흘리는 것으로 이 포스팅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ㅋ (그보다는 못한 미끼가 될지 모르겠으나, <셜록>에서 셜록의 구박을 있는 대로 받으면서도 그의 도움을 차마 끊지 못하는 레스트라드 경감 역의 루퍼트 그레이브 역시 등장하니, <셜록>을 봤던 사람이라면 그를 발견하는 의외의 잔재미도 있을 것.)


@ 그나저나 어쩌다 보니 내내 포스팅 가뭄이다가 드라마 포스팅을 연달아 두 개나 했네. 그런데 중간에 포스터 사진 넣으려다가 실수로 앞 부분 두 단락 지워버려서 잠시 경악의 순간이 있었다. 그냥 포기할까 하다가 기억을 더듬어 다시 채워 넣었다. 별 대단한 얘기 쓴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글 날리는 건 언제나 무서워... 뭐 우여곡절 끝에 넣었는데 포스터 사진 색감 너무 예쁘다는. 찾아 넣은 보람이 있어- 그리고 사건의 주된 배경이 되는 스웨덴의 이슈타트에는 최근 영국 관광객들이 급증했다고 한다. 근데 이 이야기를 읽으니 왜 <겨울연가>에 홀려서(?) 춘천과 남이섬을 찾는 일본 관광객들이 연상되는 건지 몰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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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