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영화 흥행의 중심에는 <건축학개론>이 있었다. 그 가운데 조용히 장기상영을 이어가고 있던 <말하는 건축가>의 존재를 접했을 때, 처음 내가 받은 인상은, 그저 뭔가 공교롭다는 것 정도였다. 올해는 무슨 건축 영화의 해인가? 하는 의아함 같은 거였달까. 그러다 그 영화가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님 작품이라는 사실과, 그것이 '심지어' 다큐멘터리라는 소식을 접하고 더욱 의아해졌다. 이건 대체 무슨 조합이지? 결국 그 호기심이 이 게을러 빠진 나에게 오랜만에 나홀로 극장행을 종용하였다.
특별히 다큐멘터리 영화를 선호하진 않는 탓에 별 기대없이 극장에 들어섰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극장에 들어서면서도 <고양이를 부탁해>와 <말하는 건축가> 사이에 별 상관관계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물론 굳이 어떤 상관관계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헌데 조금도 닮지 않았을 것 같은 두 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이,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납득이 되었다. <말하는 건축가> 속에서 묘하게도 나는, 어둠 속에 몸을 옹송그린 채 뾰족이 오무려 다문 입을 하고, 깊숙이 꽂히는 동그만 까만 눈망울을 느릿하게 깜빡거리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기저기 두리번대는 한 마리 고양이 같던 태희의 잔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면 <말하는 건축가> 속 정기용 선생님의 삶 역시, <고양이를 부탁해> 속 태희가 그러했듯, 자신의 존재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그것으로 다른 이들을 압도하는 대신, 유연한 발걸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고 녹아들어가 알게 모르게 다른 이들의 삶을 이어주는,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다가가는 정재은 감독님의 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화는, 예기치 않게, 정기용 선생님 생애 마지막 1년을 좇아 만들었다. 몇 년 전 대장암 선고를 받고 촬영 당시 투병중에 있던 선생님의 건강은, 정재은 감독님이 영화를 찍는 1년 사이에 급격히 저하되면서, 결국 선생님은 촬영이 마무리되기 전에 임종을 맞이하셨다. 헌데 이 영화의 특이성은 정기용 선생님의 병환이 이 영화의 중심에 놓여, 일부 극영화처럼 억지 눈물을 쥐어짜는 도구로 사용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물리적 존재감이 시간과 함께 스러져가고 쇠락해가는 과정은, 선생님의 삶에서, 그리고 도저히 일부러 만들어내려 해도 만들어낼 수 없었던 극적 설정으로써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는 없는 부분이었다. 그것은 그 어떤 인위적 힘으로도 조율해낼 수 없는 철저한 우연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체로 인간 존재의 필연적 귀착지를 역설하는 너무도 강렬한 필연이기도 했다. 저물어가는 햇살이 스며드는 거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나이가 들수록 사람에겐 철학이 있어야 함을 조용히 역설하시던 선생님의 음성이 마음 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간 것에는, 그런 기로에 놓여있던 선생님의 삶이 있었기 때문이란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터이니 말이다.
이름 자체가 이미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지닌 거장들이 지은, 흡사 그 자체가 예술품과도 같은 건축물에도 물론 아름다움이 있으며 그런 것들 앞에서 경외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허나 특정 건축가의 이름을 달고 있지 않으면서도, 정교하고 섬세한 동시에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고찰이나 자그마한 한옥들을 볼 때, 나는 그런 거장의 건축물을 볼 때와는 또 다른 경이로움을 느낀다. 거기엔 한 사람의 이름이나 명예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두께가 무엇보다 견고하게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건물을 지은 이가 누군지도 모른 채 '안성 면사무소(주민센터)'라는 건물의 '쓰임새'를 온전히 누리고 계신 안성면 주민들을 영화 속에서 보았을 때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났던 것은, 내가 바로 사람의 이름을 남기지 않은 그런 건축물에서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고집하는 대신, 그 안을 채워갈 삶들을 끌어안으려 한 '어떤 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소위 공무원들이 그 면사무소 건물과 무주 등나무 공설운동장에 흉물스런 태양열 에너지판을 덕지덕지 뒤집어 씌워놓고는, 마치 '이건 내가 했소!'라고 떠벌이고 있는 듯한 모양새와는 너무도 딴판이라 더욱 그러했을 터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려놓고 다른 이들의 삶을 품으려는 마음으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내게는 아주 드물고도 귀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
선생님의 삶이 다른 이들에게 비쳐드는 빛처럼 느껴지는 동시에 그림자처럼 느껴진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뭐랄까, 건축물을 만들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 기를 쓰지 않았던 건축가로서의 선생님의 '숫기없는' 태도는,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전면으로 나서기는커녕, 마치 그 눈부신 빛으로부터 수줍어서 몸을 피하는 양, 자신의 건축물 뒤로 숨어 그 건축물의 그림자처럼만 존재하려는 듯이 보였다. 그리하여 그 분, 정기용 선생님의 작품과 삶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대신, 마치 악화된 건강으로 인해 쇳소리 섞인 음성으로 간신히 당신의 말을 이어가던 말년의 선생님 그 자체처럼, 침묵 속에서 문득 들려오는 서걱거림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분의 이야기 속에서 그 분은 그렇게,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는 모습으로만 수줍게 존재하는 채로, 오로지 자신의 건축물이 온전히 자연 속에, 세상 속에, 그리고 사람들 속에 서 있게 하였다. 그렇게 선생님은 자신의 삶과, 자신의 이야기와 그리고 자신의 건축물과 혼연히 '하나'로서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엔 혼자서, 그리고 나서 친구에게 추천하여 친구와 함께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보았다. 그 이유는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를 보는 일이기도 했지만, 나 혼자 만나고, 나 혼자 알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그런 사람, 그런 삶을 만나는 일이기도 해서였다. 거실의 소파에 기대어 앉아 나이가 들수록 사람에겐 철학이 있어야 함을 가만가만 말씀하시다가, 조용한 거실에 스며들어 당신을 비추는 '자연의 스포트라이트'를 보며 어린 아이처럼 신기해 하며 기뻐하시던, 이 노인의 사려깊은 지혜와 아이의 천진함이 공존하던 선생님을, 이렇게라도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찌했을까 싶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나무도 고맙고, 바람도 너무 고맙고, 하늘도 고맙고, 공기도 고맙고. 모두모두 고맙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이를 만난다는 게 어디 흔한 일이겠는가. 정작 감사인사를 전해야 하는 건 나인 것 같은데 말이다. 겨우 그 분 삶의 마지막 자취만을, 그것도 몇 개의 단편적 조각밖에 볼 수 없었다는 것은 물론 아쉽고도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토록 좋은 삶, 좋은 분의 이야기를, 게다가 정재은 감독님의 시선을 통해 접할 수라도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기쁘고 고마운 일이었다.
두번째로 영화를 보았을 때는, 때마침 정재은 감독님의 '관객과의 대화'도 있어 영화와 관련된 이런저런 재미있고 의미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첫번째는 극소수의 독립영화관에서 개봉을 했던 <말하는 건축가>의 동원 관객수가 와이드 릴리스 되었던 <고양이를 부탁해>의 관객수를 곧 넘기게 될 것 같다는 것. (이 당시는 4월이었는데, 6월인 지금까지도 일부 극장에서 상영 중인 걸로 봐서 이미 넘었을 것 같다. ㅋㅋ) 그리고 <건축학개론>의 흥행에 힘입어, 그 영화와 혼동을 해서 극장에 온 일부 관객들 덕분에 영화가 잘 되고 있는 것 같다는 농담도 하셨다. 게다가 감독님이 다큐멘터리에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는 마치 극 영화처럼 선생님께 '연기'를 부탁하기도 했었다는데 (영화 도입부가 그 결과물이라고 ㅋ), 시간이 지나면서, 극의 흐름 자체가 처음의 의도대로 되지 않으면서, 선생님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영화 자체를 자연스럽게 맡기게 되었다는 ㅎㅎ 영화와 관련된 재미있는 사실 마지막 한 가지는, 이 영화를 감독님의 입맛?의도?에 맞게 편집했던 분량은 10시간짜리였다는 것. 차마 감독판으로 상영하기에도 불가능한 길이였던 탓에 이 분량의 편집분의 상영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왠지 이 버전이 꼭 한번 보고 싶다. 그래서 극장 뒷자리에 앉아서, 소심하게 DVD에 넣어달라거나 상영을 해달라고 외쳤던 것 같다. (둘중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ㅋ) DVD로 꼭 다시 만나볼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 관람 환경이 그다지 쾌적하지는 않지만, 시네코드 선재에서 6월 20일까지 상영을 한다. 극장에서 한 번 보고 싶다고 조금이라도 생각했던 관객이라면, 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