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나 혼자 이렇게 흡족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제 다녀온 서도호 전시는 몹시 만족스러웠다. 근래는 물론이거니와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게 본 전시는 없었던 듯. (이렇게 말해놓고 문득 다른 게 생각나면 민망할 듯? ㅋ)


서도호는 뉴욕에서 유학을 한 뒤 뉴욕을 비롯하여 런던, 베를린 등에서 다양한 작업으로 흥미로운 궤적을 보여주고 있는 예술가다. 나는 또 밤늦게까지 잠이 들지 못하던 어느날 밤 넋 놓은 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그를 인터뷰한 방송을 중간부터 보게 되었다. (그걸 보다가 호기심이 발동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느라 정작 방송을 끝까지 보진 못했다.) 외국에서의 첫 유학생활을 시작하며 느끼게 된 문화충격과 향수가 곧 그가 '집'이라는 공간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로 인해 현재 그의 대표작인 '집'을 테마/모티프로 한 많은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것.


현재 리움에서 하고 있는 그의 전시 '집 속의 집'은 그런 그의 작품 세계를 비교적 풍성하게 보여주고 있는 전시다. 어느 인터넷 속 사진에서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 전시되었던 하얀 방 안의 천장에 걸린, 반투명한 천으로 만들어진 빨간 계단을 발견했을 때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헌데 이번에 온 작품들은 규모와 종류 면에서 그것을 몇 배 능가하는 수준. 현대한국화의 대가인 아버지 서세옥씨가 창덕궁의 사랑채 건물 중 연경당을 모델로 하여 지었다고 하는 그의 서울 집을 반투명한 실크를 사용하여 실물 크기로 재현한 서울 집이나 북쪽 벽 등의 한옥 작품은 물론, 폴리에스터 천을 사용하여 마찬가지로 반투명한 실루엣을 살려 만든 뉴욕집 입구를 표현한 청사진이라는 작품이나 복도와 방, 욕실, 주방, 계단 등을 실물 크기로 만들어 직접 들어가볼 수 있는 뉴욕 집 등은 콘센트 구멍, 냉장고 상표, 계기판의 글씨 등 어디 사소한 것 하나조차 놓치지 않은 그의 섬세한 디테일에서 경탄을 자아낸다. 


다분히 관념적일 수 있는 문화충격, 향수, 그리고 이방인으로서 느꼈을 정체성의 혼란과 자각 등의 인식과 감정 등을 거의 완벽하게 구상적인 형태로 만들어놓은 그의 작품은 일단 완벽하게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품 자체를 보는 데서 오는 미학적 즐거움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비록 다른 사람의 집을 옮겨 놓은 것이긴 하지만, '집'이라는 다분히 익숙한 공간을 마치 어린이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처음으로 만난 것 같은 기분으로, 하나의 유희처럼 신기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일종의 유희적 즐거움, 그 공간을 만들어낸 그의 --어쩌면 편집증에 가까웠을-- 집념과 집중력에서 동시에 어떤 유머를 발견하게도 한다. 콘크리트, 흙, 벽돌 등으로 지어졌을 주거공간으로서의 집이 철사나 실 등에 의지해 반투명의 옥색, 초록색, 하늘색, 파란색 등등의 천으로 천장에 걸려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금세라도 옅은 공기 속에 증발하거나 흩어질 것 같은 기체의 느낌(실은 'ethereal'이라 표현하고 싶은데 이 단어가 제대로 번역이 안 돼서...), 마치 색색의 연기로 지어진 집 같다는 느낌마저 준다. 동시에 행여 지나가다가 옷깃이라도 스쳐 흠집 하나라도 낼까 조심스러워지게 하는 데서 그 물질성을 자각하게도 된다. 그것은 당연히 일차적으로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일 수도 있겠지만, 육체/물질성을 가진 존재, 혹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하나의 자각, 혹은 관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관념이 구상의 형태를 거쳐 다시 한 번 하나의 철학, 혹은 관점으로 변환되는 이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이 느껴지는 연쇄의 고리.


이러한 색색의 천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1층의 주된 전시 작품이었고, 2층에 가면 그의 드로잉들이나 좀더 가벼운 (듯이 보이는) 실을 이용해서 '그린' 작품들 사이에 거대한 '별똥별'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의 뉴욕집은 물론 그의 집이 속해 있던 3층 건물의 외양과 이웃집의 살림살이까지 속속들이 옮겨 5분의 1 크기로 축소한 것을 기반으로 하여, 거기에 다시 한번 자신이 살았던 서울 집이 불시착하여 하나의 충돌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흥미있는 작품이다. 입을 다물 수 없게 하는 그의 디테일에 대한 천착은, 최소한 예닐곱 가구는 되는 각각의 집안의 사소한 부분들을 빠뜨리지 않고 재현한 데서 다시금 표현되었다. 마치 인형의 집을 연상케 하는 그 집안을 들여다 보는 재미에다, 자신의 뉴욕 집에 불시착한 그의 서울 집이 빚은 거대한 혼란상이 더해지면서 이 작품의 재미는 배가 된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재미있게 본 듯한데, 개인적으로 나는 1층의 '연기로 빚은' 듯한 집의 형상이 더 마음에 들었다는.


그 외에 2층에서 볼 만한 주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면, 1층의 작품들과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서울 집 대문? 어쩌면 쪽문과 벽 위로, 영상물로 제작한 서울집의 이미지를 비롯해, 새가 날아갔다 흩어지고, 글씨를 물고 날아오는 나비 등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구상미술과 비디오아트의 절묘한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제목을 제대로 보고 나온 게 없어서 영... ㅎ)



3월 22일부터 오픈해서 6월 3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라고 하는데, 어제는 근로자의 날 휴일인 터에 전시장에 사람이 너무 많았던 점이 다소 아쉬웠다. 전시 내리기 전에 한 번 더 가서 꼼꼼하게 살펴보고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전시였다.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한 다른 날 10:30부터 18:00 (입장마감은 17:00)까지 열려 있으니, 조금이라도 관심이나 흥미가 있다면 절대 놓치지 말야할 전시! ...라고 나는 생각한다는.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이렇게 사진으로 공개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스포일러인 것 같아서 자제해야 할 것도 같긴 하지만, 사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이미 어마어마한 양이 떠돌고 있기도 하니. 나도 재미삼아 몇 장 더 보태어 본다. 굉장한 색감에, "절대 만져볼 수는 없었지만" 흥미로운 질감을 눈으로라도 맘껏 보고 또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던 그의 1층 전시 작품들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