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은 어쩌다 보니 한옥과 인연이 많이 닿은 계절이 되었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살았던 한옥집을 중요한 소재로 한 서도호의 '집 속의 집' 전시에 다녀온 것도 그랬고, 얼마 전에 보고 온 한국가구박물관의 구찌 특별전시도 전시장이 흔한 시멘트 건물이 아니라 입이 떡 벌어지게 한 한옥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주말에 다녀온 안동이 가히 화룡정점이라고 할 만했다.
고등학교 때 국사 선생님의 설명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 나라에서 절이나 궁궐 같은 것을 제대로 짓기 위해서는 목재 골조를 먼저 완성한 뒤, 곧바로 벽을 바르거나 지붕을 얹지 않고 십 년 가까이 그 상태로 골조를 놔두었다고 한다. 이유는 바로 나무가 습기나 풍파 등의 환경 조건에 의해 자연적으로 뒤틀리는 성질이 있기 때문. 십 년 정도 시간을 두면 스스로 자리를 잡고 그 이상의 심한 변형이 생기지 않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나무의 뒤틀림으로 인해 벽이나 천장 등도 갈라져 버릴 수 있다고. 게다가 알 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옥은 못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순전히 목재 조각 하나하나를 서로 맞물리도록 설계해, 사실상 간단한 해체와 조립이 가능하다는. 이를테면 거대한 목조 레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 그토록 정교해 보이는 데에도, 이처럼 단순하면서 과학적인 설계를 통해 이동까지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 또 한 번 감탄을 자아낸다.
헌데 그러한 과학적인 설계의 탁월성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또 충분히, 그 어느 나라의 전통 건축물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그런 가운데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할 만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한옥의 또 다른 놀라운 점. 세월이 앉은 목재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지붕의 기와 하나 담장의 무늬 하나에서도 느껴지는 섬세한 디테일이나 날렵한 처마의 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열린 문틈이나 낮은 담장을 통해 안팎의 풍경이 서로 섞여들듯 조화를 이루도록 조성된 개방적인 공간구조가 너무도 아름다우면서도 경탄스러웠다.
이 모든 것들을 마음껏 음미하며 돌아볼 수 있었던, 길고도 여유로운 하회마을 산책은 참으로 만족스러웠던 코스였다. 그리하여 평소엔 사진 따위 많이 올리는 블로그는 아니지만, 어차피 키드니처럼 상세한 여행기를 올리게 될 것 같지는 않고, 핑계삼아 오랜만에 이런저런 사진을 올려본다. 여행 사진이라는 게 본래 다녀온 사람에게나 재미있지, 뭐 그냥 보는 사람들에겐 시큰둥한 것일 수 있지만 어쨌든. ㅎ 여행을 가서든 일상적인 공간에서든, 사람마다 눈여겨 보는 것이 다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드는데, 내가 주로 눈길을 주게 되는 것들은 어찌 보면 집채 덩어리 하나라기보다는 그 사이사이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작은 디테일 같은 부분이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는 어떤 부분, 어떤 공간이 더 의미 있었을까라는 걸 비교하면서 본다면 이 사진들을 보는 게 좀 덜 지루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변명 한 마디 덧붙이고 일단 공개.
한옥은 대문조차 하나의 독립적인 건축물로 생각해서 지어졌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한국가구박물관에 전시 보러 갔을 때 안내자의 설명을 통해 들었는데, 과연 그렇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완성도 높은 건축이 한옥의 대문인 듯하다. 하지만 굳이 웅장함과 정교함을 느끼게 하는 대문이 아니더라도, 소박한 싸리문이나 비교적 간단한 형태로 만들어진 나무문, 그리고 집의 창문이나 작은 문들도 그 자체의 아름다움, 섬세함, 그리고 때로는 귀여움까지도 간직하고 있더라는.
일본 조경이 담장을 높이 세우고,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를 이루기라도 하는 듯 완벽하게 정교하고도 섬세한 정원을 자신의 집 안에 조성해, 그 담장 안의 사람만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한국 조경의 특징은 담장을 낮춰서 바깥의 풍경과 자연까지도 자기 정원과 삶의 일부로 끌어안는 구조로 만들어진 것이라 들었다. 과연 한옥은 집의 어느 문틈, 어느 담장 너머를 통해서 보아도 그 자체가 완벽한 액자 안에 담긴 그림처럼 보일 뿐 아니라, 그 '그림'이 가옥 구조와도,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참으로 놀랍도록 섬세한 배려이자 미학이 아닐 수 없다.
아기자기하게 귀여웠던 담장의 문양들. 너무 화려하고 요란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고 소박한 무늬가 들어간 돌담이나 흙담은 내가 스스로 집을 지을 수 있게 된다면 꼭 포함하고 싶은 요소 중 하나.
무언가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담장 너머의 풍경. 너무 높지 않은 담장 너머로 아름다운 꽃이나 나무가 언뜻언뜻 보이는 것이 친근감을 주면서도 저토록 아름다운 곳에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라는 부러움을 자아내기도 하고, 이래저래 재미있는 구조다.
내 손 안에 카메라가 있고 그 순간이 행여 우연히라도 꽃이 피는 계절인 한, 나로서는 참으로 지나치기 힘든 것이 꽃 사진. 하회마을에도 구석구석 참으로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담은 붓꽃은 유독 이 마을의 풍경과 잘 어울렸다.
바티칸이 카톨릭의 도시이자 하나의 독립적인 공화국이라 한다면, 아마도 하회마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유교 공화국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헌데 그 안에서 문득 눈에 띄던 이 삼층석탑이 조금은 낯설면서도 주변의 다른 자연 경관들과 조화를 이룬 모습이 참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역시 음식 사진- ㅋㅋㅋ 삭제해서 죄다 없어진 줄 알았었는데, 그래도 애플의 자동 스트리밍 기능 때문에 첫날의 음식 사진이 어쨌든 남아있긴 했다. 아쉬운 대로 이 정도로 찍은 거라도 보는 것으로 만족. ㅎ 미숫가루는 색깔도 더 진하고 먹음직스러웠는데 왜 이리 희멀겋게 나온 건지 모르겠다.
비록 진정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하회마을 도착하자마자 시장을 반찬 삼아 맛있게 먹은 간고등어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