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드라마는, 미래에 대한 어설픈 공상과학 시리즈물인가,라는 의심이 들게 하는 도입부로부터 시작한다. 간단하다 생각하자고 들면 한없이 간단한 설정이다. 2077년의 테러리스트 8명이 사형집행장에서 자신들이 개발한 타임머신을 통해 2012년으로 탈출을 꾀하고, (여)경찰 한 사람이 그 형집행장에 함께 있다가 예기치 않게 그 시간여행에 끌려들어가게 된다. 



드라마 도입부의 시공간적 배경이 된 2077년의 캐나다 밴쿠버. 이는 아마도 그곳을 포함한 미래 사회 전반에 대한 표상일 터이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후의 이 미래는 자본가가 곧 세계를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의 시대. 그 시대 안에서 정부와 정당을 통해 개개인이 자유롭게 정치적 힘을 행사하는 민주주의 체제는 무의미하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반대하여 소위 혁명을 달성한다는 명분으로 그 과정에서 수천 수백 명의 인명을 살상한 테러리스트 집단인 '리버레이트(Liber8)'의 수장 카가미를 포함한 그의 핵심 추종자 8인이 구속되고 이들에 대한 사형 집행 명령이 내려진다. (1회 본 지 좀 돼서 어떤 식으로 사형을 집행했는지는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하핫-) 당시에는 '프로텍터(protector)'라 불리고 있는, 현재의 경찰에 해당하는 법집행자 집단에 속한 주인공 키이라 카메론은 사형 집행장에 함께 자리해 있다. 사형을 위한 일종의 전기 충격이 이들에게 가해지는 순간, 이미 탈출을 계획했던 이들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이 만든 타임머신을 가동시킨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에는 실패하고 만 소위 '혁명'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6년 전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기계 오작동으로 6년 전이 아닌 65년 전, 즉 2012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형집행장 내에 유일하게 함께 있던 프로텍터 키이라는 예기치 않게 그들과 함께, 자신의 어린 아들과 남편으로부터 떨어져, 65년 전 세계에 함께 던져진다. 처음엔 실수로 2012년에 떨어졌지만, 고장으로 어차피 타임머신을 다시 사용할 수 없는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이 2077년에 이루려 했던 목표의 씨앗을 2012년에 심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한다. 함께 오게 된 경찰 키이라는 이들의 계획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렇게 시작된 키이라의 2012년의 삶. 연고도 없는 시간대에 혈혈단신으로 떨어진 그녀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그녀는 생각지도 않은 조력자를 만난다.  그녀의 시대인 2077년에 경찰의 내부 소통 체계는 물론, 그 시대의 모든 소통 체계를 장악한 무선통신망을 구축하고 소유한 회사의 회장인, 알렉 새들러가 바로 이 시대에 십대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 그는 정규교육과정 외부에서 혼자만의 천재성에 의존해 이미 십대 시절에 자신의 골방 실험실에서 일종의 해적 통신망을 구축했고, 이는 2077년에 세계를 장악하는 무선 정보통신망의 초기 형태였다. 바로 그 통신망을 통해 소통이 가능한 키이라가 그와 무선으로 '접속'을 하게 된 것이다. 홀로 2012년에 떨어져 버린 그녀는 알렉의 힘을 빌어 연방수사국(FBI)의 요원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내서 밴쿠버 경찰의 수사에 가담하면서, 미래를 바꾸려는 테러리스트 집단 리버레이트를 잡기 위한 그녀의 추격이 시작된다.



이것이 --설명이 쉽지만은 않고, 제대로 됐는지도 알 수 없는-- 드라마 '컨티뉴엄(Continuum)'의 초기 설정이다. 공상과학물과 수사물을 결합하여,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한 한 (여)경찰의 수사과정을 그린 드라마라고 보면 간단해 보일 수도 있다. 헌데 드라마의 구도는 뭔가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이는 때때로 보이는 키이라의 모호한 태도에서 읽힌다. 비록 불가피하게 젊은 시절의 알렉으로부터 도움을 받긴 하지만, 그의 미래에 대해 묻는 알렉의 질문에 그녀는 묘하게 대답을 피한다. 그리고 2회부터는, 매회 도입부에 키이라가 살던 2077년에 일어났던 한 사건이 해당 에피소드에 대한 단서처럼 등장한 뒤 2012년의 상황이 본격적으로 이어져 나오는 구성으로 매편이 진행된다. 그런데 이처럼 단서로써 제공되는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미래시대에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키이라의 회상 속에서, 그녀가 자신이 속해있던 법집행자 집단이나 권력을 장악한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테러리스트'라 규정된 리버레이트의 행동들에 대해 단정적으로 범죄시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으로 반응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이 드라마의 대결구도가 단순하고 견고한 선악 구도 위에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헌데 이러한 그녀의 회의는 사실 그 누구보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현 시대의 시청자들에게 적용된다. 단순히 주인공이 속한 집단의 가치에 반하는 '테러리스트'라 생각했던 극 중 인물들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를 회복하기 위해 자본가에 의해 장악된 세계체제에 저항하고 있는 이들이라는 걸 발견하는 순간, 일말의 주저함이나 내적 혼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 순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 혼란스러움이 이 드라마가 가지는 큰 매력이라 하겠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소위 신자유주의 시대라는 현재가 곧 그런 시대, 혹은 그런 시대로 향해 가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원론적으로야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본이 민주주의 원칙의 상위에 존재하고, 자본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시대 말이다. 오죽하면 민주주의 국가의 수장이라는 한 나라(라 쓰고 우리나라라 읽는다-_-)의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확대가 아닌, 자기 개인과 자기 주변 사람들의 이익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움직이겠는가. 그렇다면 리버레이트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지만, 정작 그들이 회복하려는 민주주의 체제는 현재 대부분 국가들이 운영되는 정치체제이며, 그들이 전복하려고 하는 자본에 의한 통치란 곧, 현재 우리 사회의 병폐이자 문제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런 것을 추구하는 이들을 무조건 악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미래사회에서 키이라가 겪었던 일들이 지금 그녀가 머물고 있는 현 시대의 반영물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녀에게 어떤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기도 하면서 나름의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물론 성찰의 계기나 철학적 질문이란 중요하지만, 그것만이라면 철학서나 논문으로도 충분하지 않았겠는가. 이 드라마는 드라마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다. 다시 말해, 그런 묵직한 질문 위에 공상과학물과 수사물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사건들을 정교하게 직조해내면서 극적 재미까지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첫 회에서는 의상 같은 소품도 그렇고, 미래 사회의 앞선 기술을 표현하는 그래픽의 효과 같은 것도 그렇고, 좀 어설픈 공상과학물이 아닐까,하는 미심쩍은 느낌을 줬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그런 인상은 옅어지고, 플롯의 정교함에 감탄하게 된다. 그렇게 어설퍼 보일 수 있는 위험을 애초에 방지하기 위함인지 몰라도 2077년을 주된 시공간적 배경으로 삼지 않고 2012년을 배경으로 한 점도 현명한 것 같고. 더 이상의 말은 어떻게 해도 스포일러가 될 우려가 있어 드라마의 플롯이나 인물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저 철학적이거나 정치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극적 정교함으로 그것을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 드라마로서의 이 작품의 강점이다. 



이 드라마는 밴쿠버가 배경인 것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미국 드라마가 아니라 캐나다 드라마다. 내가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계기는 '크리미널 마인드' 시즌 6에서 그 시리즈 고정이었던 JJ가 갑자기 극에서 잘리면서, 그녀의 대용품 삼아 나왔던 배우 '레이첼 니콜스' 때문이었다. ('대용품'이라고 하는 이유는, JJ 같은 '크리미널 마인드' 고정을 별 이유도 없이 잘랐다가, 그게 시청자들의 불만을 사는 원인이 되자 또 그녀를 다음 시즌에 급히 복귀시키면서 '레이첼 니콜스'는 별 설명도 없이 다시 잘라 버렸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대용품'조차 못 되었고, 도리어 '일회용품'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마저도 든다.) 그 전에도 다른 드라마에서 종종 눈여겨 봤었지만 불행히도 작품 운이 없어서 주연을 맡은 시리즈도 한두 시즌을 버티지 못하고 없어져 버리거나, '크리미널 마인드'의 경우처럼 해명도 없이 극에서 불쑥 잘려버린 배우였다. '크리미널 마인드' 사태 직후에 이 작품에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다길래 잘 되길 바라긴 했지만 별 기대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생각 외로 작품이 너무 좋아서 내가 다 기뻤다. 


한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드라마 호평을 쓴 일을 이미 후회한 전적이 있어서, 이 드라마는 10편으로 기획된 시즌 1이 마무리되는 걸 끝까지 기다렸다. 그래서 진작에 이 드라마 찬양을 하고 싶은 걸 여태 참느라 힘들었다. 앞으로의 진행이 어찌 될지는 이 시점에선 예측하기조차 힘들지만, 일단 시즌 1은 그 자체만으로도 꼭 한번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작품이다. 아직 시즌 2 제작 여부는 논의 단계일 뿐 확정되지 않았다는데, 시즌 2가 반드시 나왔으면 좋겠다.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