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콕 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스포일러가 없다곤 할 수 없음. ㅋ 특히 <다크 나이트>를 안 봤고, 볼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다크 나이트>에 대한 스포일러까지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으니, 일단 '더보기'는 펼치지 말 것.
<다크 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의 어깨는 무거웠다. 전작 <다크 나이트>의 작품성과 흥행성으로 이미 관객들의 기대치가 높아질 만큼 높아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도 같다. 그러니 이 '어둠의 기사의 비상(The Dark Knight Rises)'의 필연적 귀결은 기껏해야 현상유지이거나 예정된 추락밖엔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전 지식 없이 보러 갈까 싶기도 했지만, 결국 영화를 보기 전에 외국의 영화 비평 프로그램도 미리 들어보고, 트위터에서 예기치 않은,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를 접하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반응은 예상대로 두 가지였다. 전반적으로는 <다크 나이트>가 이미 사실상 이 시리즈의 정점을 찍은 상태에서 그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전작에다 '굳이' 대놓고 비교를 하면서 전작으로 인해 높아진 기대의 무게를 잔뜩 얹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그닥 나쁘지 않다는 평도 있다. 나도, 상당히 재미있게 영화를 보았고, 그런 관객의 입장으로는 후자의 평가에 어느 정도 무게를 실어주고 싶은 것이 나의 '의지'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전자의 평가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영화는 '고담 시의 영웅'이라는 이미지로 생을 마감한 하비 덴트 검사의 장례식으로부터 8년이 지난 후, 그를 살해한 '악한'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었지만, 생의 의욕을 상실하고 그 오명을 굳이 씻고자하는 의지조차 없이 은둔하고 있는 브루스 웨인에 대한 일종의 '뒷담화'로부터 시작한다. (하비 덴트의 성인 'dent'라는 단어가 (이를 테면 자동차 표면 같은, 단단한 표면이) 움푹 들어간 상처나 (자존심, 명성 등이) 훼손되다,라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무래도 어느 정도는 그의 운명을 암시하기 위해 의도된 작명이라고 봐야 하겠지 싶다. 물론 그의 경우엔, 전적으로 외부에 의한 훼손이라기보다, 그 외부의 훼손에 의해 작동된 자기 내부의 폭력성을 통한 자멸의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의한 배트맨 3부작 가운데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인 이 영화의 제목으로서 'The Dark Knight Rises'란 일차적으로 은둔자로 살아가면서 쇠락했던 이 '배트맨의 부활'이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단지 '배트맨'이라는 한 개인 뿐만 아니라, 그처럼 어둠 속에서 삶의 빛을 지키려는 이들을 좀 더 폭 넓게 지칭하는, 또 다른 '어둠의 기사(Dark Knight)의 부활'이나, 그와는 반대로 어둠 속에서 세상을 어둠의 지배 하에 두려는 '어둠의 사도의 부활'의 의미도 있을 것 같다. 이는 '다크 나이트'라는 호칭이 과연 '배트맨'을 지칭하는 것인지, 어둠을 지배하는 또 다른 축이었던 '조커'를 지칭하는 것인지, 혹은 '고담 시의 화이트 나이트 (White Knight)'에서 자신에게 가해진 부당한 폭력에 의해 스스로도 선함을 (잃어)버리고 결국 '어둠의 사도'가 되어버린 '하비 덴트'를 지칭하는 것인지 모호했던 전편 <다크 나이트>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다만 이 작품이 그 자체로 상당한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전편과 비교해 취약할 수밖에 없는 점은, 역시 작품 안에 그어진 선악 구도의 견고함에 있다. 물론 전작에서 선악 구도가 견고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렇다고 조커의 캐릭터가 선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보다 전작에서는 '선'의 경계가 모호하고 유동적이었다. 법의 빛나는 수호자였던 하비 덴트가 순식간에 조커와 우위를 가리기 어려운 미치광이 악의 화신으로 돌변하는 모습이 바로 이를 입증했다. 조커의 악함은 절대악이어서였다기보다, 도리어 목적이나 지향을 예측하거나 확정할 수 없는 '이상한 놈'의 악함이었기에 위험하고 도발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대척점에 서 있던 하비 덴트의 선 역시 절대선이 아니라 언제든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비 덴트가 보여준 악행이나 조커의 악행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 우리 안에 억눌러 놓았기에 언제라도 불쑥 고개를 내밀 수 있는 우리 내면의 악의 얼굴이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조커가 보여준 바였으며, 배트맨이 그의 손아귀로부터 고담 시를 구해냈음에도 불구하도 끝내 꺾거나 반증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이번 편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택한 방향은, 악함의 배후에 있는 나름의 명분을 설명하는 쪽이었다. 배트맨과 대치하는 악당들의 악한 행동에는 그 나름의 --어떤 점에서는 납득할 수도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선택이 전편에서 보여준 선악의 불안정하고 모호한 경계를 보여주는 데로는 나아가지 못한 것 같은 데 있다. 그 명분을 보여주는 '반전'을 제시하였지만, 전편으로 인해 너무 눈이 높아진 관객에게는 그 반전조차도 어느 정도 예상된 반전이었다.
문제는, '다크 나이트'에서 이미 권력의 정점에 서서 모든 것을 가지고 누렸던 하비 덴트가 돌변하며 보인 악의 양상과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배트맨과 대치하는 악당들이, 그간 (정치, 경제적) 강자들에게 착취당해 왔던 약자들을 선동하여 폭도로 돌변시키면서 보여준 악의 양상이 서로 같은 설득력을 갖지 않은 점에 있다. 이미 강자의 입장에 있던 하비의 추락이 주는 의미와 약자였던 이들이 혼란 속에서 인민재판을 벌이며 무자비하게 자신들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그간 자신들을 억압해왔던 강자들을 처단하는 의미는 달랐다. 전자는 선악을 질문하는 윤리적인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었지만, 후자는 경제적인 강자와 약자가 선악으로 등치되어 대치하는 양상을, 그리하여 일종의 계급투쟁의 양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이 불편함이 얼마나 심했던지, 영화를 보는 동안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느껴진 캐릭터였던 캣우먼을 '굳이' '제 배만 불리는, 있는 놈들에게서만 훔치는 도둑'이라고 명시까지 해준 것이, 어찌 보면 이 구도의 견고함이 문제가 된다고 여겨 이를 해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끼워넣으면서 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이었던 것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약자들이 그간의 억압을 '앙갚음'하기 위해 기존의 강자들에게 죽음과 추방의 양자택일의 선택지만을 주면서 그들을 처단하는 것은, 좋게 보자면, 그들이 당해온 억압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상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결국 그들이 행하는 가시적 폭력이 곧, 그간 그들이 암암리에 받아온 비가시적 폭력과 동일한 것이라는 것을 비춰 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반전의 서사를 통해 배후의 명분을 부여받은 뒤 '혁명'을 입에 올리며 이런 행동을 부추기고 선동하는 이 영화 속 악당들의 모습에서는, 도리어 사회적 강자들이 '혁명'을 반대하고 억압할 수 있는 반대의 '명분'을 주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너희들이 원하는 혁명이란 기껏해야 이런 '앙갚음'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온갖 화려하고 잔인한 영상을 통해 펼쳐내면서 그 가능성과 명분을 빼앗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불편했다...면 역시 과잉해석인 건가. 뭐, 배트맨 속 선악대결의 구도라는 게, 이 정도만 돼도 세련되고 정교한 것이라 여겨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이런 대결구도는 차라리 전형적이고 단순한 만화적 선악구도보다 더 위험하다는 생각을 영화 보는 내내 했다. 그건 아마도 이 영화 속의 사건과 인물들이, 최근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이라는 형태로 '운동'을 하고 있는 '99%'의 모습과 중첩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조커'의 캐릭터에서 기묘하게 경쾌하면서 동시에 음울하고, 그러면서 광기어린 악한의 연기의 정점을 보여준 히스 레저라는 연기자의 죽음이, 이미 이 시리즈가 갈 수 있는 극한에 도달했다는 것을 현실에서도 입증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는 이 시리즈는 할 수 있는 한, 선전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 대해 미리 접했던 평가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호평은 이 편에서 배트맨은 '슈퍼 히어로의 노쇠'를 보여조고 있다는 점이었다. 항상 같은 나이에 머무르면서 다만 에피소드의 변화만을 보여주는 대부분의 슈퍼 히어로물과는 달리, 크리스토퍼 놀란은 --물론 전편에서 입었던 부상의 여파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팡이를 짚고, 과거의 영광을 잃은 채 늙고 병든 슈퍼 히어로 배트맨의 모습을 보여준다. 슈퍼 히어로에 접근하는 이런 전도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은, 과연 이 창작자의 범상치 않은 상상력임에는 틀림없으며, 이 점은 역시 높이 살 만하다. 또, 조셉 고든-레빗의 팬으로서야 생각지도 않게 배트맨 시리즈에서 그를 볼 수 있다는 데서 이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었고, 잘 생겼는데도 묘하게 마이너의 분위기를 풍기는 크리스천 베일이 슈퍼 히어로들 중에서 뭔가 마이너한 이미지가 있는 배트맨 역에는 적격의 배우라 생각하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배우의 발견을 꼽는다면 앤 해서웨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배우는, 처음엔 얼굴만 예쁘장한 고만고만한 여배우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훌륭한 배우라는 생각이 드는 사례. 게다가 캣우먼 의상의 특징인 '고양이 귀'를, 머리까지 뒤집어쓰는 스판덱스 후드를 써서 보여주는 대신, 그녀의 선글라스에 기술적으로 달아서 그것을 머리 뒤로 넘기면 살짝 보이도록 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들에서 감탄하며 보아온 감각적이고 세련된 표현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보인다.
[#M_매력적인 앤 헤서웨이|접기|
몸매 드러나는 검정 스판덱스? 가죽? 옷을 입고, 배트맨 오토바이(?)를 탄 모습은 정말 매력적-
배트맨이 타는 것보다도 더 나은 듯. ㅎ
그리고 --이 엄청난 시리즈를 잇는 부담감을 안고 과연-- 누군가 이 시리즈의 메가폰을 다시 잡을 날이 올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하나의 '전설이 끝난' 것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