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마음의 짐과 불편함을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에 사실 거의 애써 회피하다시피 해 왔던 두 편의 영화를 지난 열흘 사이에 다 보았다. 그 영화들이란 <모래가 흐르는 강>과 <지슬>. <모래가 흐르는 강>은 ㅇㅁㅂ의 사대강 사업 이후 훼손되어 가고 있는 내성천 주변 지역을 지율 스님이 직접 촬영한 다큐고, <지슬>은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오멸 감독의 극영화다. 이 둘은 우리나라의 '공권력'에 관한 것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 모래가 흐르는 강
이런 영화를 편집 같은 기술적인 차원에서 논의한다는 게 일종의 지적 허영이고 오만일 것이다. 헌데 <모래가 흐르는 강>은, 연출이랄까 편집이랄까 하는 면은 전반적으로 평이하고 서술적이었다. 몇 번 더 보아야 그 연출의 흐름이 전체적으로 읽힐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연대기적이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떤 주제들에 의해 이야기의 뭉터기가 나누어졌다고 할 수도 없어 보였다. 비유하자면, 찍어 놓고 정리하지 못했던 사진들을 생각나는 대로 꽂아 넣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대로 메모를 한 사진첩 같은 정도의 인상. 전체적으로 영상 메모 같은 느낌의 다큐였다.
그럼에도, 물론 그 안에서 다루고 있는 상황들은, 예상했던 대로 처참했고 분노를 자아냈고 결국엔 가슴이 답답해 왔다. 사대강 사업을 위해 건설될 댐 때문에 수장되어 버릴 한 마을의, 균열될 일상의 풍경을 보여주는데, 정말 내 마음 속엔 '수장되어야 할 ㅅㄲ가 누군데, 누가 누굴 수장한다는 거야.'라는 말만 계속 울려대고 있었다. 이미 수장은 결정된 사안이지만, 떠나기 전까지라도 당신이 시집온 이후로 줄곧 농사지어 온 땅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한 할머니가 심어놓은 작물들을, 굳이 와서 모조리 헤집어놓고 간 모습에는 그저 먹먹해질 따름이었다. 그리고 이 사대강 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자 한, 환경영향평가 및 사업기대효과를 설명한 거대한 (화면상으로 볼 때 족히 천 페이지 분량은 넘을) 정부 발행 책자에서, 그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한 교수의 이름은 단 한 명이 나왔다고 한다. 물론 그가 대표연구자고 그 교수와 함께든 혹은 그 밑에서든 다른 교수나 대학원생들이 평가를 진행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 포함된 문구들은, 그 평가 프로젝트를 위해 고용된 대학원생들이 복사 & 붙이기를 반복해서 찍어낸 내용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게 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도대체 이 인간이라는 것들은 어째서 수백 수천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동안 자신의 속도와 보폭에 따라 흐름과 결을 만들어온 지형과 지질을, 단 몇 해만에 꺾고 헤집고 부수어 버리는 데 아무런 사려도 가책도 없을 수가 있는 것인가. 심지어 그 일을 자기 임기 동안의 엄청난 사업으로 떠벌이며 '끝내' 해내고 만 그 인간은 소위 이 나라의 일류, 엘리트 대학이란 곳을 나왔고 국가의 수장까지도 되었다. 그런 인간의 뇌에서 이런 정도의 일이 나올 수 있다는 건, 정말 이 나라의 교육 수준이라는 게 무엇인지까지도 말해준다는 점에서 더욱 암울하다. 그리고 그런 따위의 인간에게 나라와 국토의 운명을 맡기고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는 나같은 인간이 있다는 것 또한.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논점이 너무 흐려지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공권력이라는 것이 이런 폭력을 일말의 가책도 미래에 대한 어떤 책임의식도 없는 채로 무자비하게 제 힘을 휘둘러대는 이 현실 자체의 문제를 엄밀하게 직시해야 한다. "무엇이라도 해야 했기에" 이 영화를 찍었다는 지율 스님의 문제의식만큼은 우리들도 결코 가벼이 여기거나 망각해선 안 되는 문제라 생각된다.
아, 그런데 정말이지 --같이 영화 본 친구는, '수장' 정도로는 안 되고 더 고통을 주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왜 그, 바로 얼마 전까지 국가 수장 노릇하셨던 그 분, 수장 그렇게 좋아하시니까 정말 당신이나 수장 당하라고!!!!!!
2. <지슬> 관련
인디영화 관련된 트위터 계정들 몇 개를 팔로우하다 보니 이 영화에 관한 호평을 정말 많이 접해 왔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달지 엄두가 나지 않는달지, 하는 이유 때문에, 그리고 뭐 이런 영화에 대한 호평이라는 것이, 이런 류의 영화를 선호하는, 고매한(?) 취향을 가진 일부 사람들의 무거운 문제의식이나 과시적 허영심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하는 편견 같은 것 때문에 이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을 사실은 좀 꺼려 왔다. 그래도 끝내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일으켰던 것은 '그네박'의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책임감과 부채의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는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걸 보는 것조차 하지 않는다면, 동시대인으로서 정말 해도 너무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영화는 역시 무거웠다. 섬뜩하고 공포스럽기도 했고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처연하고 가슴이 미어졌고 절망스러웠고 숨이 턱턱 막혀 왔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해학이 있었고 용기와 기백이 넘쳤고 순박하고 밝았으며 위무의 손짓이 있었고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그래서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고 희망을 품고 나오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은 극영화이기에 동일선 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만, <모래가 흐르는 강>과 비교해 보면, 영화적 기교와 연출이 빼어났다. 어떤 장면들이나 영화의 '장(章)'이랄까, 마디랄까 하는 부분들을 구분해 주는 장면들은 다소 작위적이다 싶을 정도로 그렇기도 했지만, 영화의 진행은 이 작품이 제주를 위한 '위령제'라는 점에 대해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명쾌하게 보여주었다. 나의 빈곤한 영화적 전거를 긁어모아 보자면, 어딘지 연극 무대처럼 느껴지는 공간이나 장면의 설정들이나 무력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 가해지는 국가나 권력자의 잔혹한 폭력과 유린의 측면에서 <도그빌>을 연상시키는 점도 있었고, 묘하게 아이러니한 유머와 해학은 <나라야마 부시코>나 <가케무샤>, (그리고 이건 사실 흑백영화라는 측면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는데) <제7의 봉인>의 정서나 웃음 같은 걸 연상시키기도 했다.
이 영화는 사실 제주 4.3 사건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조금만 알고 있거나 최소한 검색만 해보고 가도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내용인지라, 딱히 스포일러,라고 말할 만한 요소도 없는 영화이긴 해서 영화의 장면이나 전개와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해도 문제가 될 건 없다. 그런데도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영화 장면 자체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로 인해 온갖 복잡하고 잡다한 문제들이 환기된 부분이 더 많았다. 그래서 그냥 그런 얘기들을 단편적으로 적게 될 듯. 간단히 하나만 언급하자면 '지슬'이란 제주도 말로 '감자'를 뜻하고,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이자 모티프가 된다. 근데 아무래도 제주도 말이 생소하다 보니 '지슬'이란 단어가 워낙 낯설어서도 그렇고, 영화의 내용 면을 봐서도 그렇고, 나는 '지슬'이란 제목을 보면 자꾸 "니들이 한 '짓을' 좀 봐라"라는 말, 같은 게 떠오른다는. 쩝. 아, 그리고 이 영화는 제주도 방언 때문에 표준어 자막이 따로 나온다는 것이 특이점.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딧을 유심히 보면, 영화 속 배우들이 영화의 스태프들과 겹치는 걸 간혹 볼 수 있다. 인터뷰 같은 걸 자세히 찾아보진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예산의 문제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래서인지 사실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뭔가 외모에서 대단히 특출한 점이 잘 보이지 않고, 그래서 처음엔 (그리고 사실 끝까지, 외모 자체로만 보면) 선명하게 잘 구별되지 않은 인물들도 많다. 그 점이 의도한 것이든 그저 우연에 의한 것이든, 사실 그래서 이 영화는 우리들 중 그 누구도 될 수 있는 보통의 사람들, 민중에 관한 이야기라고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반드시 학살을 당하는 쪽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학살을 명령받고 자행하는 쪽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이분법적 선 긋기란, 반드시 인간의 자율적 의지적 선택에 의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 선이 그어지는 순간 자신이 어느 쪽에 서 있었느냐에 따라 거의 자의적이고 임의적으로 결정된 것이며, 결국 그 선의 어느 편에 있었느냐가 자신의 행동을 결정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화가 끝난 뒤에 있었던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한홍구 교수님도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그들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우리가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는 자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들었다.
그리고 내게는 이런 류의 영화가 시사하는 상황들을 보면 항상 비슷하게 떠오르는 의문이 하나 있다. 이 영화에서 소위 빨갱이 토벌에 투입된 군인들 가운데는, 이미 살육의 광기에 무감각해져 버리고 물들어버린 이도 있고, 그 부당함을 뼈저리게 자각하여 (때론 소심하게라도) 저항하는 인물들도 있지만, "내 어머니도 빨갱이 손에 죽었어. 난 빨갱이들이 정말 싫어. 전부 죽여버리고 싶어."라는 인물도 분명히 있다. 나에게는 이런 사람들과의 대립각이 가장 풀리지 않는 문제의 지점이다. 즉, 자신의 입장에선 충분히 정당한 분노를 가질 수 있는 한 개인의 실제적인 체험의 차원으로 들어갔을 때, 과연 우리에겐 이런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을 어떤 해법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과거사 진상규명의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공권력이 강요하고 새겨넣는 공식적 기록/기억이라는 적과 더불어, 더 이상 물리적으로 그런 기억과 시간 자체에 대한 실감이 없는 (우리와 같은) 세대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해 가면서, 또 망각이라는 괴물과도 싸워야 한다. 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기억을 가진 이들 중에서는, 단순히 공식화된 기록을 맹신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실질적 체험에 의거해서 자신의 행동에 아무런 책임도 가책도 미안함도 느끼지 않는 개인들이 존재한다. 그런 경우에는 '망각'보다 도리어 몸에 너무 깊이 새겨져, 거의 문신이 되어 버린 그 '기억'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들의 그런 원한과 복수심이 치유할 방법은 없는 채로, 과연 이 영화 속에서 존재했던 대립이 그저 공권력과 민간인의 문제로만 다루어져서 될 것인지도 의문이다. 왜냐면 그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결국 피학살자의 입장에 있던 개인 중 누군가가 공권력의 위치에 갔을 때, 이와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정도,가 아니라 사실 역사는 그런 문제들의 반복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문점은, 우리 나라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 관한 것. 외국(거의 미국이지만) 영화나 드라마, 라디오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느꼈던 것은, 전쟁을 경험하고 돌아온 군인들이 겪게 되는 PTSD에 관한 것이 주요한 소재로 다루어지는 경우도 많고, 그런 군인들이 전쟁을 경험한 뒤 반전운동에 투신하게 되는 사례들도 많다고 하는 점이다. 그런데 한홍구 교수님이 아주 거칠고 간략하게 설명해 주신 바에 따르면, 우리 나라는 베트남전 참전을 통해 '민간인 학살'을 경험하고 그들을 향해 실제로 총을 쏘아 본 군인들이 광주에 투입이 되어 '효과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 '다져진' 군인들은 유사한 임무가 있으면 또 다시 투입되거나 파병돼서 그 역할을 '믿음직하게' 수행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PTSD를 경험한 군인들이 전혀 없는 건 아니겠지만, 뭔가 국민정서의 차원인지 몰라도, 이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 것도 같고, 실제로 광주에서 '공훈'을 세운 전두환 같은 인물의 행적을 보아도 그렇고, 우리 나라에서는 전쟁이나 살육의 경험이 멘탈을 붕괴시키기보다 무뎌지게 하고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좀더 일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뭐 그렇게 여기도록 다른 목소리들을 은폐하고 침묵시킨 것이 그 자체로 공권력과 거시사가 저지른 또 다른 폭력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것에 무감해지는 것을 자국 문화의 힘으로 여긴다면, 이는 명백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PTSD를 찾아서 치유해야 한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적어도 그런 징후가 나타난다는 것은 그 사회의 윤리적 수준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척도가 될 수 있다. 헌데 그런 징후를 쉬쉬해서 덮는 것이든, 그런 징후가 실제로 부재하는 것이든, 이 사회의 현실이 둘 중 하나라면 어느 쪽이라 해도 모두 문제적임에 틀림없다. 뭐,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 사건의 현장에서는 단 두 명의 생존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칠십대가 된, 당시에 십대였던 그 생존자 중 한 분이 최근에 신문 인터뷰를 한 것을, 한홍구 교수님이 약간 언급하셨다. 그 분 말씀에 따르면, 실제 현장에서는 당연히(?) 영화에서와 같은 웃음이나 유머의 요소나 순간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교수님은, 인터뷰의 표현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인터뷰이가 그런 의미에서는 이 영화도 '나이브'하다는 뉘앙스의 어떤 말씀을 하셨다고 전해 주셨다. 헌데 이 영화는 분명 잔혹하고 처참했다. 하지만 그 잔혹함조차 나이브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사실이 우리를 또 한번 처참하게 만든다. 모르겠다, 한홍구 교수님은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던 어떤 소리가 (스포일러가 될까봐 무슨 소리인지 밝히지 않겠음 ㅋ 궁금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든가, 보지 않으실 분들은 살짝쿵 제게 물어보시든가-) 영화를 너무 절망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감독의 장치가 아닐까 라고 하셨는데, 난 도리어 그 소리가 절망감을 더 깊게 했던 것도 같다. 역사의 잔혹한 수레바퀴가, 멈추지 않고 되풀이해서 돌아가리라 것에 대한 예고의 소리처럼 들려서.
그나저나... 아무리 초라한 블로그 포스팅이라도, 계속 뭔가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그간 몇 달 동안 블로그를 버려두고 아무 것도 안 썼더니, 이 글을 쓰는데 어휘도 계속 막히고 생각이 전혀 정리가 안 됨. 정말 절망해야 하는 건 이 사실인 것 같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