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요즘 간혹 서점에 가서 신간 코너를 훑어보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저자의 책을 보기라도 할라치면, 그런 물음부터 올라온다. '이 책을 과연 몇 명이나 사 볼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뭔가 기발하다면 기발한 기획은 눈에 띄지만, 대부분 책들이 뭔가 기본기가 약해 보인다는 느낌이 든다. 그건 인문학 출판시장에서 점점 '대중을 위한' 인문서라는 것이 많아지거나, 몇몇 편중된 '스타' 인문학자들의 저술이 인문학 관련 서적들에서 소위 베스트셀러를 차지한다는 점도 이런 면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인 것 같다. 


인문학의 기반이 약한 것이 우리 나라 풍토의 큰 문제라고 지적을 하는 학자들이 많은데, 나는 사실 그런 이들이 많은 경우 '쉽게 읽는' 인문학 시리즈를 써내는 것이 별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나의 독서 경험상 그렇게 쉽게 고전 원문에 접근하도록 도와주는 해설서를 읽은 뒤에 정작 그 문제의 고전을 읽으면, 그 책이 그렇게 이해가 된다기보다 그냥... 배신감이 많이 들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도대체 당신이 읽은 그 책과 지금 내가 읽는 이 책이 진심으로 같은 거라는 말이야야???'라는 질문들이 마구 솟구치면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떨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인문서/입문서들은 고전을 위한 문이 되겠다 자처하지만 사실 그렇다기보다는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읽은 체하게 만드는 요약본(cliff note) 그 이상 그 이하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더 심한 경우엔 아예 그 원문으로 가는 길을 봉쇄해 버리기까지 하는 것 같다. 


난 예전에 고등학교 때 논술 쓸 때도 모든 문제를 너무 '교육'의 근원적인 문제로 환원시킨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었는데 (ㅋㅋ) 사실 우리 나라 교육이 현재의 '교과서' 체재로 가는 한 이런 문제는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 무슨 말인고 하니, 책을 통으로 다 읽기보다 항상 교과서에 요약된 것이나 교과서에 발췌된 일부만을 읽고 책의 나머지 내용은 요약본으로 접하고 빨리빨리 넘어가도록 하는 방식의 독서에 익숙해진다면, 그 어떤 고전도 스스로 읽어낼 힘도 흥미도 생기진 않으리라는 것이다. 대학진학률이 높고 교육열이 높은 게 죄다 무슨 소용이냐고. 그런 면에서 대중을 위한 인문서들이 쏟아지는 것도 요즘은 점점 이런 교육의 연장처럼 여겨지고 그렇기 때문에 고무적이라기보다 문제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최근 인문(해설)서의 저자들은 대부분 전국민을 위한 '라이프 코치(life coach)' 혹은 '카운셀러/상담사'를 자처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에 더욱 그렇다. (국민 배우, 국민 여동생, 국민 첫사랑 해서 '국민'자 붙이는 거 우리 나라 언론은 참 좋아하던데, 그 풍토에서 보면 결국 요즘은 국민 상담사나 국민 라이프코치의 시대인 것 같다.) 자신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도 결국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서 말한 것이고, 그것이 심지어 자기자신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계몽과 쇄신을 위한 것이라는, 이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는 이야기 방식은 뭔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뭔가, 쐐기를 박듯 '너나 잘 하세요~'를 차갑게 내뱉던 금자씨의 한 마디가 절절히 와 닿는 기분이다.) 


문학이든 아니면 다른 장르든, 해설과 비평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 작가의 고유한 '창작물'을 일차적으로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경향과 풍토를 진작하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종류의 창작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한동안 미국 같은 나라에는 소설 같은 창작물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토록 많은 '회고록/자서전(memoir)'이 왜 출판시장을 장악하는 걸까,라는 의문과 회의를 품었었다. 헌데, 요즘은 그것도 어찌 보면 자신만이 경험한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고 만들어내는 '창작'의 풍토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면에서는 도리어 긍정적인 징후로 읽히기까지 했다. 어찌 보면 우리 나라의 독서 인구가 증가하지 않는 것은,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창작물 자체가 그만큼 적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아니, 좋아하는 책이나 저자가 있냐고 질문을 받았을 경우, 그 책이 누군가의 고유한 생애라거나 서사도 아니고, 그냥 그 사람이 '해설'한 어떤 고전이나 문학이고, 그 삶의 고유한 '행적'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삶을 '해석'한 방식이 좋다고 하는 건 어쩐지 빈약해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자기계발서라면 나 역시도 병적으로 싫어하지만, 그런 류의 인문학 해설서라는 것, 그것을 통해 삶을 바꾸라 운운하는 것,이 과연 자기계발서와 큰 맥락에서 다른지 요즘은 회의마저 드는 상황이다. 생각해 보면, 대중의 독서 수준만을 폄하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풍토에 기생/편승(?)해서 그런 책만 자꾸 찍어내서 팔아 먹기 전에, 고전과 원작으로 다가갈 수 있는 독서 환경이 만들어지고, 무엇보다 일차적으로 대중들이 읽고 싶어질 만한 흥미롭고 참신한 창작물부터 더 많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