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몇 편의 영화들

review/movie 2013. 9. 11. 02:36


영화평을 좀 더 본격적으로 쓰려고 보니, 그 중압감에 결국 아무 것도 쓰지 않게 되는 것 같아서 그냥 몇 편을 뭉뚱그려 단평으로나마 정리를 해 본다. 



<일대종사>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도입부 엽문(양조위)의 일대다(一 : 多) 무술 대결 장면의 아름다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가 마지막에 가장 강력한 상대를 쓰러뜨릴 때 (물론 그에게 맞서기엔 여전히 부족함이 더 많은 상대로 그려졌지만) 그 상대가 거대한 철제 대문과 함께 쓰러지면서 튀어올랐다 떨어지던 빗방울 소리가 오죽하니 그의 예술에 가까운 무공에 대한 박수갈채처럼 들렸을까. 그리고 영화 속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장쯔이가 연기한 궁이의 애달픈 삶에 가슴이 저렸다. 전체적으로 비와 눈을 정말 잘 활용한 무술 장면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영화다. 그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의 크기 만큼, 서사의 헐거움이 안타까운 영화였다. 오죽하면 이 영화를 봤던 내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일선천'의 일화는 왜 들어간 것일까,를 다들 반문했으랴. 그나마 영어 제목은 단 한 명의 일인자만을 지칭하는 듯한 뉘앙스의 '일대종사'가 아닌 복수를 명백해 표시해 주는 'Grandmasters'여서 좀 더 의미전달이 명쾌해 보인다.

어쨌거나 이 영화의 서사의 진행에 대한 나의 인상을 말하라고 한다면, 마치 브레인스톰을 거쳐 반드시 넣어야겠다고 골라놓은 몇 개 장면의 콘티를 별 개연성 없이 나열된 그대로 스테이플로 쿡 찍어놓은 종이 뭉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하리라. 반드시 넣고 싶고, 넣어야만 하는 장면이 있다는 것은 알겠다. 부디 그 장면들을 엮는 서사의 얼개는 다른 솜씨 좋은 사람에게 짜라고 반드시 맡기면 좋겠다 싶을 따름이다. 그럼 그 눈부신 장면들이 더욱 빛날 텐데 말이다. 헌데 그 모든 결함들에도 불구하고, 두 번을 보았고, 두 번 다 좋았다. 그러니 아쉬움이 더 클밖에. 



<설국열차>

봉준호 영화의 말의 '맛'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준 영화다. 장면의 구성이나 영화의 전개는, 그저 직진과 후퇴의 양자택일만이 존재하는 단선적인 공간 배치에서 오는 불가피한 시간적 배치였다고 수긍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분명 '미묘'하게 비틀어진 한 마디의 표현에서 비롯되는 그의 영화의 언어적 '묘미'를 담아내기엔, 언어의 장벽이 너무 높은 듯이 느껴졌다. (벨로는 고아성이 연기한 요나라는 캐릭터에 투영된,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의 아시아인 여성/소녀의 형상화 방식에서 클리셰를 발견했지만) 영어 대사의 중요한 부분이나 장면 표현이 대부분 클리셰처럼 느껴진 점은 그래서 더욱 두드러져 보였고, 봉준호 영화다움이 최대치 발현되었을 때의 결과를 상상해 볼 때 더욱 아쉬웠다. '문'에서 오직 진격과 후퇴만을 보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에게 제3의 길을 제시하는 낭궁 민수(송강호)의 제안은, 물론 신선하다면 신선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자체도 하나의 클리셰로 보일 지경이었다. 차라리 커티스가 세뇌되는 길을 택했다면, 이 영화가 일견 보여준 냉혹한 현실 인식이 오히려 더 와 닿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다.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라는 프랑스 그래픽노블을 보고 매혹되어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축자적으로는 만화로써 지면상에 있었을 때, 그리고 실제로 실행에 옮겨지기 전에 구상의 단계에서만 좋을 수밖에 없었다는, 중의적 의미에서 "good on paper"였던 작품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플레이스 비욘드 파인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스키넥터디(Schenectady)"라는 인디언 언어에서 온 지명의 의미를 딴 이 영화의 제목 "The Place Beyond the Pines"는, 그 장소를 지칭하는 동시에, 그야말로 '소나무 숲 너머'의 (구원일 수도, 용서일 수도, 방황일 수도 있는) 어떤 세계를 보여준다. <노트북>의 남자주인공으로 처음 존재를 알았을 때의 라이언 고슬링은 그저 '모여라 눈코입'의 인상을 주는, 그래서 그의 '귀여움(cuteness)'이 과대평가 되었다고 느껴진, 로맨스영화의 한 명의 남주였을 뿐이었다. 그런 뒤 <블루 발렌타인>을 보고, 이 영화를 보았을 때 그는, 그냥 배우나 연기자라는 직업인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그를 미처 알아보지 못한 나의 미욱스러운 눈을 스스로 자책하게 한 존재였다. 그저 거칠고 타락한 삶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한 그(의 영화 속 인물)의 일련의 선택 속에서도, 그의 연약함과 순수함을 발견하게 하고, 그러기에 그의 어리석은 선택에 가슴이 미어지게 만드는 그의 연기는 탁월하고 탁월하다. 

그리고 여배우 미아 와시코브스카와 더불어 드라마 <인 트리트먼트>를 통해 어린 나이였에 이미 무언가에 어설프게 기대거나 속여서는 결코 보여줄 수 없는 연기력의 정수를 보여주고, 최근의 영화계에 여리고 고요하면서도 강단 있는 모습을 드러낸 데인 드한 또한 이 영화에서 놓칠 수 없는, 그리고 아마도 결코 눈을 떼지 못할 중요한 존재다. (마치 젊은 시절 풋풋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27살의 나이에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이 배우는 이십대에 찍은 두 편의 영화에서 맡은 고등학생 역할(이 영화 외에 <크로니클>)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