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워낙 축적이 많이 된 미국 방송들을 뒤늦게야 접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뭔가 (나에게는) 새로운 (그러나 실제로는 오래된) 팟캐스트를 하나 발견하면 들을 게 하두 많이 쌓여 있어서 그걸 한동안 들이 파고 듣다가, 어느 시점이 돼서 들을 만큼 듣고 나면 좀 시들해진다. 최근에도 그래서 새로운 팟캐스트를 찾아 또 승냥이질을 시작 ㅎㅎ  최초에 This American Life, 이어서 The Moth, Fresh Air, World in Words 를 거쳐, 요즘 찾아 듣고 있는 것이 npr 의 팝컬쳐 해피아워(pop culture happy hour). npr 내에서 각각 대중문화 (주로 텔레비전), 음악, 영화 (및 뮤지컬), 만화 및 책 등을 맡아서 글을 쓰고 있는 네 사람의 작가진이 사실상 한 시간동안 앉아서 '노가리 까는' 게 방송의 포맷이다. 근데 왤케 재밌는 거야!!! 뭐, (굳이 비교를 하자면) "나꼼수"와 비슷하다고 하면 어떤 포맷과 분위기인지 짐작해 볼 수 있을 듯. 다만 소재가 정치가 아닌 대중문화 분야라는 점이 다르나, 무엇보다 굳이 비교하고 싶진 않다. (나꼼수, 한동안 듣긴 했지만, 역시 별로.)


어쨌거나 이 방송의 묘미는 다들 자신이 맡은 분야에 대해서는 잔뼈가 굵다면 굵고, 그러면서도 무엇보다 모두가 '대중문화' 전반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고, 또 한 가지, 다들 똑똑하다는 거다. 우리 나라 일부 케이블 방송에서 소위 연예부 기자라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실명 거론 안/못 하면서 '뒷담화'나 하는 투의 프로그램 간혹 하는 거 본 적 있다. 그런데 그들은 일단 실명도 제대로 거론할 수 없는 내용의 가십거리들을 저속하게 지분대는 거라 딱 보고 정이 뚝 떨어져 버렸다. 헌데 이들은 당연히 실명도 자유롭게 당당히 거론하면서도 단순한 가십거리로 이야기하는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견이나 입장을 똑똑하게 밝힌다는 것. 


그런데 그게 현학적이라거나 지나치게 허세스럽고,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의 '똑똑함'이 아니라는 것이 나에게는 또 마음에 드는 점이다. 이 점이 나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나라의 대중문화 비평을 하는 일부(인지, 뭐 전체인지 알 수는 없으나) 필자들이 때로는 정말 지나치게 대중문화를 무겁고 진지하게 그리고 학술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때로는 그냥 '재미삼아' 이야기 하면 될 것 같은 소재나 문제에 대해서까지 무슨 실낱 하나하나 쪼개가며 세계구원을 위한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굴 때면, 아 작작 좀 하시죠! (lighten up, will ya?)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 오른다는. 그런 글 보고 있으면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이라면 모두 엄청난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이 쓴 거 같다. 더불어, 어제 인문해설서에 관한 포스팅에서와 역행하는 현상 같기도 한데, 뭔가 인문학도들이 자신들의 전문 분야라든가 입장은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통속화하고, 정작 대중적인 것은 기괴하다 싶을 정도로 신성화하거나 어렵게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이들은 책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또 자신들의 너드(nerd)스러움도 잘 알고 있고 그런 점을 인정하면서, 한편으로 다들 유머가 넘친다는 것. (최근에 종종 생각해 보는 주제라면 주제인데, 외국(이라지만 사실 그냥 미국겠지...)은 하위문화로서 '너드 문화'라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에겐 그런 게 없는 거 같다. 생각컨대 그건, 소위 '너드'로 분류될 만한 이들이 우리 나라에서는 어린시절부터 '공부 잘 하는 애들'로 분류되면서 특권이나 기득권을 누리게 돼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뭔가 일찍부터 어깨에 힘만 들어가고 대신 유머는 없이 자라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건 아닌가 싶다는.) 그래서 때로는 서슴없이 자기희화화도 하고, 때로는 대화의 화제가 된 작품이든 인물이든 어떤 대상을 또 마음껏 유머의 소재로 만들면서도, 지적이고 전문적인 이야기도 충분히 버무려낸다. 주제도 그냥 인물이나 작품, 시상식 등 특정 대상을 다룰 때도 있고, '어린이들이 반드시 접했으면 하는 대중문화'라든가 '대중문화에서 잘못 그려진 어린이/노인의 상(이미지)', '재기에 성공 혹은 실패한 과거의 유명인' 등으로 다양하고 흥미롭다. 다들 말도 너무 웃기게 해서 요즘은 또 지하철에서고 길거리에서고 노상 이거 듣고 다니느라 혼자 빵 터지기 일쑤. 


무조건적인 미국예찬주의자도 아니고, 그럴 뜻도 없지만, 맨 처음 "This American Life"를 접했을 때도 그렇고, 미국의 방송들에서 다양한 형식들이 자유롭게 실험되고 공존하는 점만은 정말 신선하고 부럽다. 내가 뭔가 대중문화에 대해 글을 쓰거나 표현을 해 볼 수 있다면, 나도 해보고 싶은 형식 중 하나. (물론 이미 전례가 있으므로 내가 하면 그냥 베끼기가 된다는 것이 함정. ㅋㅋ)



그나저나 I'm on fire! 이틀에 세 개의 포스팅을 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어!(라고 쓰고, 역시 포스팅도 끈기없이 몰아치기로 쓴다,라고 읽는다. 핫핫핫-)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