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으로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페이지를 구독하는데, 얼마 전에 '스테이시 켄트'라는 미국 출신의 재즈 가수와의 인연에 관한 글이 실린 것을 보게 되었다.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남편과 함께 영국으로 온 스테이시 켄트가 "무인도 디스크 (Desert Island Disc)"라는 라디오 방송에 자신이 평소 좋아하던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나오길래 듣고 있었단다. 이 방송은 초대손님에게 '무인도에 혼자 떨어지게 된다면 꼭 가져가서 듣고 싶은 음악 8곡'을 소개하게끔 하는 컨셉으로 이루어진 방송인데, 그날의 방송에서 자신의 우상과도 같은 이 작가가 자신의 곡을 선택하더란다! (나한테 일어난 일도 아닌데, 정말이지 나라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 뛸 듯이 기뻤을 거 같다.) 그래서 마음 먹고 감사의 이메일을 보냈고, 그 이후로 꾸준히 연락을 하는 친구가 되고 부부 동반으로 함께 서로의 집에도 놀러가기도 하고 그랬단다. 뭐, 글을 죽 읽고 보니 그녀의 새 일범에 그가 어떻게 가사를 써주게 되었는가,에 대한 일종의 홍보성(?) 글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
헌데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 글보다도 그 글을 읽고 나서 바로 그 "무인도 디스크"라는 방송이 대체 뭔가 하는 궁금증이 생겨서 찾아 보다 그 팟캐스트를 발견했기 때문. 심지어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장수 프로그램이었고, 초대되는 사람들은 정치인부터 작가, 방송인, 배우, 디자이너 등등 어쨌든 한 분야에서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사람들 누구라도 포함된다. 그래서 내가 평소 관심 가진 인물들의 방송분을 직접 찾아서 들어보니 정말 제법 재미있다. 이 방송은, 앞서 말했다시피 무인도에 갈 때 반드시 가져가서 듣고 싶은 음악 8곡을 선정해서 그 선곡 이유도 듣고, 그 초대손님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는 그 가운데 단 한 곡만을 다시 선택하게 하고, 성경과 셰익스피어 전집은 무조건 제공해 준다면 그 외에 어떤 책 하나를 더 가져가겠냐고 묻는다. (내 기억에, 유안 맥그레거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선택했다는. 이 책은 --내가 알기로-- 우리 나라에 번역된 버전으로도 얼추 10권은 되는 분량이라는 ㅋㅋㅋㅋ)
뭐 최초의 방송부터 들어보진 못해서 어떻게 이런 식으로 구상을 하고 정착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단순하고 진부한 것 같은데도, '만약 무인도에 떨어지게 된다면 갖고 가고 싶은 음악은?'이라는 그 공식질문이, 한 인물에 대한 여러 가지 결들을 발견하게 하는 함축척이면서 재미있는 질문인지라, 간단한 형식인데도 불구하고 장수하게 된 것 같다. 듣고 있으면 당연히(?) 나라면 뭘 갖고 갈까라고 스스로 질문도 해보게 되니까. 아직 많이 듣지는 못했는데, 내가 재미있게 들었던 사례는, 이 방송을 처음 접하게 해준 '가즈오 이시구로', 그리고 '유안 맥그레거'의 에피소드 하나.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 방송을 들으면서 그의 작가로서의 여정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재미있게 읽는 작가인데도 그런 거에 별 관심 기울인 적 없었던 ㅎ) 원래는 싱어송 라이터가 되고 싶었고, 또 대학을 졸업하면서는 사회복지사 일 같은 것을 했는데, 그 와중에 대학원의 문예창작과 과정에 들어갔다는 것. 그래서 그곳에서 처음 쓰기 시작했던 글이 결국 처음 출간한 장편소설의 단초가 되어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소설가로서 등단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 이력을 보면 아무래도, 작가를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혹은 그냥 뒤늦게 재능을 발견한 천재일 뿐인건가 궁금하기도 한데 이 방송에서도 그 비슷한 질문을 한다. 도대체 '글쓰기'라는 것이 가르친다고 되는 것이냐, 혹은 학교에서 뭘 배우긴 한 것 같냐고. 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당시 우리 학과의 교과과정을 담당하고 운영하고 있었던 말콤 브래드베리와 안젤라 카터 선생님이 한 일은, 실제 작가가 글을 창작하는 조건에 최대한 근접한 환경을 조성(시뮬레이션)해 주는 데 주력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글쓰기에 집중하도록 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들을 제거하고, 일종의 텅 빈 공간을 제공하여, 오로지 자기 자신과 종이 한 장만이 마주하고 앉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경험해 보면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 생각엔, 자신은 글을 쓰고 싶노라고, 이렇게 바쁘지만 않다면 글을 쓸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를 바쁘게 만든 요인들을 정작 제거해 버리고 났을 때, 아무런 쓸 이야기 거리가 없거나, 심지어 자신은 글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사람들도 많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글을 쓰지 못하거나 쓰지 않는 데는 다른 요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이 아무런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 심지어 자신은 글을 쓰고 싶어하지조차 않는 사람일 뿐이라는 그 한 마디가 정말 서늘하게 와 닿았다.
그리고 유안 멕그레거와 관련된 일화는 정말 귀여운 이야기. 아마도 팬들은 이미 익숙하게 잘 아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는데, 유안 멕그레거가 어렸을 때 (아마도 초등학생 때) 가출을 결심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더 이상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 당시엔 나름대로 심각해서 엄마께 더 이상 집에 있을 수 없으니, 이제 집을 나가겠노라고 말씀을 드렸다고 한다. 그랬더니 가만히 자기 이야기를 들으신 엄마가 그럼 일단 짐을 싸 갖고 오면 도시락이라도 싸주겠다고 말씀을 하셨단다. 그래서 가방을 챙겨 오니 도시락을 싸주시면서, '강아지는 어떻게 할래? 데리고 가야지?'하고 도시락과 함께 강아지를 데려 가라고 주셨단다.
강아지를 데리고 가방을 메고 동네 어귀에 가 앉아서 엄마가 싸주신 샌드위치를 먹고 있으니, 학교 선생님이 지나가시면서, '너 거기서 뭐하니?'하고 물어보시더라고. 그래서 가출했다고 하니, 선생님도 그냥 알았다고 하시곤 지나가셨단다. 그런데 저녁 때가 되니 강아지 밥을 챙겨줘야 하는데 줄 수가 없어서 결국 그날 저녁에 가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엄마가 그 생각을 하시고 자신에게 강아지를 데려가라고 하신 것 같다고, 어머니의 재치와 지혜에 놀란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는데, 유안도 그렇고 어머니도 참 귀여웠다. ㅋㅋ
이 어머니는 결국 나중에 유안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연기를 하고 싶고, 학교는 그만두고 싶어했을 때도, 그의 그런 의중을 아시고는, 아버지랑 이야기를 나눠 보았는데, 학교에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 개학하고 학교에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방학이 끝날 무렵 그렇게 말씀을 하시며 유안의 꿈을 지지해 주셨다고 한다. 정말 어머니가 자식을 그렇게 자유롭고 탁월한 예술가이자 배우로 키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유안 이야기는 그냥 듣고 나서 생각나는 대로 쓴 거라 세부적인 부분에서 틀린 부분이 좀 있을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쨌든 인상적인 이야기.
암튼 이 프로그램 앞으로도 종종 찾아서 들을 듯. 그리고 왠지 이 프로그램의 공식질문들 나도 언제 한번 문답으로 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