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올해는 내내 블로그를 사실상 버린 상태였던지라 그나마 이거라도 제일 먼저 하고 싶어서 연말부터 꾸준히 써 나가고 있었건만, 결국 그마저도 선수를 빼앗겼다. 아쉽네- 암튼 2013 베스트를 안 하고 넘어간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었는데 올해는 기어이 해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확실히 ㅌㄹ 마을 주민들하고 같이 영화나 전시, 공연, 여행 등을 가는 횟수가 줄어드니, 원래도 갈리던 취향이 더 극명하게 갈라지는 듯한 각자의 편향이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는 이런 '올해의 베스트'도 비교해 보는 재미 측면에서는 더 재미가 있는 듯도 하다. 아마 첫 번째 항목부터 확 깰 것으로 예상됨.
Best 영화 3
보이후드
뭐, 영화에 대한 호불호나 영화의 장단점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갈릴 수 있겠지만, <보이후드>가 12년의 시간에 걸쳐 동일한 배우들을 계속 기용해서 '시간'을 담아낸다는 '최초의' 영화적 시도였다는 성취를 이루어냈다는 점 자체는 영원히 기억되고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신선한 시도라는 점 외에도 영화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있는' 날이나 순간 외에, 왜 그런 순간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을까 싶은 순간들을 기억의 편린들로 포착해냈다는 점이 확실히 독특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영화였다. "세상에 요정 같은 건 진짜론 없죠?"라는 아들의 질문에 아버지가 대답해주는 장면이라든가, 어른(들)의 선택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야 하는 아이들이 집에 대고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 같은 거 너무 사랑스러웠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연말에 본 영화라 그런가, 이 영화가 많이 기억에 남아 있다. 물론 이 영화 본 이후에 <언더 더 스킨>과 <무드 인디고>도 봤는데, <언더 더 스킨>은 영화는 괜찮았지만, 사실 너무 참혹하게 우울한지라 당분간 의식적으로라도 삭제를 하고 싶은 작품이고, <무드 인디고>는 그냥 너무 별로여서 봤다는 기억 자체를 삭제하고 싶다.
암튼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는 영화의 내용 측면에서는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한 '마리아'를 위한 영화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좀 더 영화 외적인 요소를 고려했을 때, 캐스팅 측면에서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예술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회생시킨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영화 내에서 클로이 모레츠가 연기하는 젊은 여배우에게 벌어진 여러 가지 스캔들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실제 사생활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어쩌면 감독이 부러 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자기희화화를 통해 그런 스캔들을 극복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검색을 해 본 수준에서는, 원제는 "Sils Maria" (스위스 알프스에 있는 지명 중 하나)인데, 영문 제목을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로 붙인 걸 한국어 제목로도 따온 듯하다. 여주인공 줄리엣 비노쉬의 이름을 '마리아 엔더스 (Maria Enders)'라고 붙인 것이 과연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영화 제목 자체와 연관시켜 좀 더 큰 의미를 부여하려는 느낌이 들긴 했다. 스위스에서 사용하는 4개국어 중 하나인 로만쉬어 단어로 "sils"는 "seal" (봉인, 인장)라는 뜻이 있다고 하는데, "Sils Maria"란 단순한 지명이기도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마리아를 봉인했던 것' 혹은 '마리아의 인장'이라는 의미도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는 영화 속에 영화이자 연극으로 등장하는 <말로야 스네이크>의 두 여주인공의 관계와, 영화 속에서 여배우와 매니저 역할로 등장한 줄리엣 비노쉬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관계에서 일종의 동성애를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세 명, 혹은 두 명의 서로 다른 인물들 사이의 동성애적 관계로서뿐만 아니라, 한 여성 혹은 여배우 안에 내재한 자아의 성장 과정, 혹은 서로 다른 자아의 화해의 과정으로, 즉 한 사람의 성장 과정으로 볼 수도 잇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즉, 이 영화는 단 한 작품을 통해 20대에 혜성처럼 영화계에 등장한 뒤 40대의 관록의 배우가 된 후에 불안감, 공허감, 그리고 여전한 자의식 등을 느끼는 '마리아'라는 여배우의 성장담, 혹은 오히려 자신만만한 속에 오히려 불안함을 감추고 있던 젊은 시절의 자기자신을 떠나 비로소 부족함이 있어도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성숙함에 도달한 40대의 자신과 해후, 혹은 화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과 (억지로^^;) 연관시켜 보면 '20대의 자기 자신'이라는 하나의 '봉인'을 해제한 것이기도 하면서, 또한 '마리아'라는 여배우의 고유한 '인장'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성범죄 혐의로 다소 이미지가 실추되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이것이 격이 다른 브라이언 싱어표 엑스맨이로구나,하는 감탄을 자아낸, 오랜만에 '엑스맨'다운 '엑스맨' 영화였다. 센스 넘치는 액션 장면도 ("Time in a Bottle"이 흐르는 액션 장면 단연 압권. 올해의 액션이라 꼽을 만한 명장면.), 액션이라는 장르적 한계에 갇히지 않고 돌연변이로 표상된 소수자들의 고민을 녹여내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솜씨나 깊이도 모두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였다. 영화적인 오락성이 결코 사회적인 문제의식의 깊이와 동떨어져 있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재확인시켜 준 블록버스터. 올해 특히 한국에서는 '소수의 다수자'들에 의해 '다수의 소수자'들이 고통을 당하는 사건들이 잦았던지라, 이 영화가 준 대리만족으로서의 쾌감이 더 컸던 것도 같다.
그 외 인상적이었던 영화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가디언스 오브 캘럭시, 모스트원티드맨, 액트오브킬링.
Best 공연 3
서울재즈페스티벌 - 대미언 라이스
대미언 라이스가 다시 한국을 찾아 주었다. 흑- 난 그걸로 여한이 없었다. 연말에 앨범도 냈으니, 올해는 단독 콘서트 한번 더 와 주지 않을까? 아일랜드나 다른 유럽 지역에서 그의 공연을 꼭 한번 보고 싶다.
서울시향의 클래식 르네상스
정동의 성공회 성당 내 음향 효과가 그렇게 좋아서, 클래식 연주자들 가운데서는 일부러 거기서 음반 녹음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고, 누군가가 그곳에서 하프시코드와 파이프오르간 공연을 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항상 가보고 싶었던 공연장이었는데, 올해 드디어 소원 풀이했다. 연말에 또 다른 논란의 중심에 놓였던 서울시향의 공연이었는데, 전체적으로 공연의 질은 좋아다. 이번에 파이프 오르간 공연은 봤는데, 좀 더 집중적으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하는 공연을 한번 더 보고 싶고, 하프시코드 공연도 언제 한번 보고 싶다-
올댓스케이트 2014
우리 연아의 현역 은퇴를 기념하는 아이스쇼. 이번 쇼는 캐스팅의 화려함 측면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캐나다에서도 다른 아이스쇼가 기획되어 있어서 일단 캐나다 출신 선수들은 하나도 못 왔었다.) 다소 취약하긴 했지만, 한국인 독립운동가 민긍익의 후손이라고 알려진 "데니스 텐"이 처음으로 출연해서 아름다운 연기를 보여 주었고, 올댓스케이트의 전속 공연자나 다름 없는 스페판 랑비엘이 변함없이 한국을 찾아줬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연아가 다시 한번 우리들 앞에 섰다는 사실만으로 뭉클했던 쇼였다. 올해는 두 번의 쇼가 잡혀 있다고 하던데 둘 다 갈 수 있을까...
Best 전시 3
조르조 모란디
주로 정물을 그려서도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채도가 낮은 무채색 느낌의 색채를 통해 그림 속에서 고요함을 느끼게 했던 조르조 모란디의 전시, 좋았다. 전시 연계 상품들까지도 마음에 들어서 흡족했던 전시. 기회가 된다면 내리기 전에 한번 더 보고 싶기도 하다.
마리스칼 전
정형적이지 않은 기발한 캐릭터들이 돋보였던 마리스칼 전시. 갖고 싶어지는 작품들이 많았던 반면, 전시 연계 상품은살짝 아쉬웠던.
창경궁 야간개관(?)
딱히 전시라고 말하긴 어려운데, 그렇다고 공연도 아니고. 아무튼 선선한 가을 밤, 어둑한 고궁을 거닐어본 경험이 상당히 기억에 남는다.
Best 책 3
Not That Kind of Girl
나중에 드라마 항목에서 다시 등장할 <Girls>의 제작자 겸 연출자 겸 작가 겸 주연인 '리나 더넘(Lena Dunham)'이라는 20대 여성 아티스트의 나름의 자서전이다. <Tiny Furniture>라는, 어떤 면에서 드라마 <걸스>의 모티프 혹은 모태(?)가 된 독특한 코미디 독립영화 한 편으로 대중예술적인 창의성 측면에서 주목받게 된 그녀는, 거의 혜성처럼 미국의 드라마계(?)에 입문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독특한 삶의 궤적을 자신의 그 독특한 언어로 담아낸 코믹한 자서전이 바로 <Not That Kind of Girl (그런 여자 아님)>이다. 이 책 자체에 대한 평 자체는 여러 가지로 충돌하지만, 그래도 20대의 여성이 자신의 세계를, 그것이 아무리 자의식 덩어리의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충실히 드러내려 노력했다는 것 자체는 재미있는 시도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는 공공연한(?) 페미니스트인데, 그녀와 더불어 엠마 왓슨(<해리 포터>, <월플라워>, <노아>)과 줄리아나 마굴리스(<굿 와이프>) 같은 서구 여배우들을 통해 뭔가 때론 잊고 살았던 여성주의에 대해 상기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반면 그런 여성들과는 대조를 이루어, 여성주의를 남성혐오와 동일시하거나, 역사적 맥락은 알지도 못한 채 '전 부모님이 남녀차별을 하고 키우지 않아서 여성주의 그런 거에 대한 생각이 없어요'라고 떠드는 철 모르고 멋 모르는, 다른 20대 할리우드 스타들도 있어 더욱 그러했다.) 물론 여성주의가 표방하는 의미를 부정하거나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갈등관계를 회피부터 하고 보는 성격 때문에 그런 입장을 표현하는 데 대해 늘 소극적인 편이었는데,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 또한 작용하긴 했다.) 그래도 그 입장을 언제나 지지하고 어떤 방식으로라도 표명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새삼스레 재확인했다. 그런 계기를 제공해준 것만으로도 리나 더넘의 존재와, 그녀의 이 첫 번째 책은 나에게 그 자체로 의미있는 하나의 지점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 상에서, 록산 게이(Roxane Gay)라는 여성 칼럼니스트가 쓴 <Bad Feminist>라는 책이 좋다고, 내가 즐겨듣는 팟캐스트에서 추천을 받아서 주문해 놨던 걸 이제 손에 넣긴 했는데 과연 여성주의에 대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낼지 기대가 된다.
Gone Girl
앞서 언급한 리나 더넘의 <Not That Kind of Girl>과 더불어 '걸' 시리즈로 엮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제목의 책. 올해 개봉한 영화 <나를 찾아줘>의 원작이다. (영문 제목은 영화 역시 책과 동명 제목인 <Gone Girl>이다.) 영화도 재미 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남녀 주인공의 비중이라든가, 섬세한 내면의 표현 등에서는 확실히 소설 쪽이 훨씬 깊이와 질감이 충만했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가 있는 부부라는 이들 양자의 공생관계라든가, 사회적 시선 안에 갇힌 인간의 욕망의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찾아서 읽게 되었는데 그러길 잘한 거 같다. 그게, 영화가 볼 때는 스릴을 즐기며 재미있게 봤는데, 진짜지 극장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에서 완전히 증발해 버린 거 같다. 그리고 사실 결정적으로 너무 깊은 외상을 남긴 섹스 장면 때문에 그거 기억에서 삭제하고 싶어서 더 의식적으로 지워버린 면도 있을 거 같다.
헌데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점은, 영화는 남편 닉의 대사가 수미상관의 형식으로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했고, 영화의 흐름과 캐릭터를 봐도, 찌질하든 어쨌든 남편에게 동정심을 가지게 하는 구도가 있었던 것 같다. 헌데 소설은 남편의 말로 시작을 해서 아내 에이미가 마지막을 장식하고, 실제로 형식 자체가 남편과 아내의 목소리가 장(chapter)의 형식으로 계속 교차해서 나오고, 실제로도 그 점이 이 소설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된다. 각 화자가 신뢰할 만한 화자냐 여부를 떠나서, 그들 내면의 목소리를 여과없이 계속 들려주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변명을 위한 이야기를 해 봐도 그 본심이나 본성이 은연중에 드러난다고 할까. 어쨌거나 책은, 워낙 추리물 장르와 사건 위주의 서사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이런 류의 장르 소설이 오랜만에 읽는 재미를 충족시켜 준 점 때문에도 제법 각인되었던 것 같다.
이건 여담인데, 사실 추리소설의 구조를 많이 차용한 듯한, 디분히 자극적이면서 대중적인 역사소설 장르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사라 워터스가 작년에 낸 신작인 <The Paying Guests>가 그렇게 재미있다던데, 올해 좀 챙겨 읽어봐야 할 듯. 아, 워터스 소설이 물론 나름대로 풍부한 인물 묘사나 관계 설정을 놓치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자극적인 재미'의 요소가 없다면 읽는 재미가 반감할 듯. 그간은 주로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많이 다루는 편이었다면, 이번엔 1차대전 이후를 다루고 있다고 하는데 그 시대상 속에서 어떤 사건들을 그려낼지 궁금하다.
The Adventures of Sherlock Holmes
ㅋㅋㅋ 몇 해 전 베네딕트 (컴버배치) 앓이를 시작하게 한 시리즈 <셜록> 때문에 결국엔 거의 20년을 손대지 않았던 셜록 홈즈 책까지 다시 읽게 되다니! 아, 그런데 물론 여전히 꾸준하게 보는 추리물 드라마들이 있긴 하지만, 새롭게 발굴한 것이 별로 없어 섭섭했던 터에 간만에 셜록 홈즈 읽으니까 왜 이리 재밌는 거야! ㅎㅎ 왠지 초등학교 때 집 앞에 오던 이동도서관 차를 매주 손꼽아 기다려서 빌려 읽던 그때 그 재미를 다시 찾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시대 배경상 분명 말투는 고아한 투이긴 한데, 그 안에서 절묘하게 드라마 <셜록> 속에서 그려진 셜록과 왓슨의 성격과 관계를 추출한 것 같은 부분들이 눈에 띄면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암튼 지난해 <셜록>은 오랫동안 기다렸던 거에 비해선 좀 재미가 덜 했었는데, (역시 '모리아티'가 등장해 줘야 제격.) 언제 한번 더 찬찬히 봐야하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책들을 좀 더 읽은 뒤에 한번 볼까 싶다.
@ 그나저나 다른 이웃들은 소설을 골라도 엄청 격 있는 소설들, 미묘한 뉘앙스들이 섬세하게 표현된 작품들 골랐거나 그럴 거 같은데, 나 너무 자극적인 책들만 베스트로 꼽은 듯함. ㅎㅎ 뭐 취향이라는 게 변명의 대상은 아닐 수도 있지만, 굳이 핑계를 대자면 2014년은 그냥 '재미'마저 없었다면 너무 심리적으로 견디기 힘든 한 해이기도 했기 때문에, 더 이런 쪽으로 심하게 기울었던 것도 같다.
Best 음반 3
Damien Rice 정규 3집: My Favourite Faded Fantasy
몇 년을 기다렸는지 햇수를 헤아리는 것조차 잊게 만들었던 대미언 라이스의 신보. 뭐, 전체적으로는 예전보다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마치 좋은 술처럼 (ㅎㅎㅎ)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지지 않을까,라는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그리고 그냥 무엇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The Greatest Bastard'를 마침내 완성된 곡으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흡족했다. (어쩐지, 경악하며 몸서리치고 있을 ㅋㄷㄴ의 반응이 떠오른다. ㅋ)
곽진언 데모 앨범
곽진언 팬질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데모 앨범 구매. 인터넷 검색으로 그가 작년에 홍대의 작은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했던 라이브 앨범과 데모 앨범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 그 클럽의 인터넷 카페에서 주문해서 손에 넣은 앨범. ㅎㅎ 굳이 비교하자면 라이브 앨범은 그의 멘트를 듣는 재미가 있었지만, 곡들은 겹쳤는데도 앨범 자체는 데모 쪽이 더 좋았다. 고작 일 년 정도 전이긴 하지만, 그의 풋풋한 음악들을 듣고 설렜고, 그 덕분에 슈퍼스타 K를 더 재미있게 시청할 수 있었다.
Rubinstein Chopin: Piano Sonata No.2 & No. 3
클래식에 관한 한 '기-승-전-모차르트'주의자인 나에게 쇼팽 음악의 매력을 새롭게 느끼게 해 준 앨범. 특히 '장송 행진곡'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2번 소타나의 묵직하면서도 명료한 음색과 연주가,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쇼팽이라는 낭만주의 음악가를 연상했을 때 느꼈던 (내 기준에서,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부드러운 선율과는 달랐기 때문에 더 좋게 느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장송 행진곡'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했던 건 아마도, 작년 한 해를 뒤덮었던 무겁고 복잡했던 온갖 사건 사고 사태 더미들 가운데서, 어쩌면 마음 속에 매순간 이런 음악이 필요했기 때문일지도. (그런데 기-승-전-모차르트, 병은 어찌할 수 없는지라, 이 쇼팽 소나타의 '장송 행진곡' 악장을 좋아라 하며 반복해서 듣는 와중에도, 또 모차르트 '레퀴엠'을 다시 찾아서 들으면서, '크- 역시 좋구나.' 이랬던. ㅋㅋㅋ)
Best 드라마 3
굿와이프 (The Good Wife) 시즌6 - 미국
이 드라마는 사실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봐 오긴 했는데, 지난 9월 시즌6가 시작한 이후로 정말 새삼스레 감탄하며 보고 있다. 2014년 5월에 5시즌에서 주인공 알리샤에게 다시 한번 극적인 인생의 전기가 찾아오는 클리프행어에서 끝이 났었는데, 그걸 절묘하게 이어받아 너무나 흥미진진한 전개가 시즌6와 함께 계속되고 있다.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2015년 5월이라야 이 시즌이 끝나긴 하는데, 지금까지의 진행으로 봐선 실망시키진 않을 듯. 이 드라마를 한 마디로 평하자면, 정말 '어른들'의 이야기라 하겠다. 어설픈 감상주의나 낙관주의 같은 것 없이, 마냥 선량하지도, 그저 악하지만도 않은 복잡미묘하고 다종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영원한 친구도, 절대적 적도 아닌 관계들로 끊임없이 얽히고 부딪치는데, 섣불리 그 내면을 단정하지 않고, 그저 거의 순수하게 '사건'과 '행위'를 통해서만 그들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그들의 의도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행위를 관찰하면서 소소한 사건 하나하나, 그들이 끊임없이 벌이는 치열한 두뇌싸움을 들여다 보는 재미가 굉장한, 정말 어른들의 세계에 관한 드라마고, 바로 그 점이 이 드라마 최고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매드맨>도 어른들의 세계를 정교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고도 하겠지만, 사실 <매드맨>이 훨씬 더 작품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반면, 그 세계는 때론 너무 우울해서 견디기 힘든데, 이 드라마는 대중성과 유머를 잃지 않는 점에선 오히려 더 쉽게 다다갈 수 있을 것이다.
걸스 (Girls) 시즌3 - 미국
이 역시 시즌1부터 재미있게 보아 오긴 했는데, 이번 시즌은 특히 흥미롭게 봤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인물들 설정에서는 앞서 선정한 <굿와이프>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할, 정반대의 재미가 있는 드라마다. 말하자면, 젊은 시절의 치기와 허세와 미숙함 등이 도리어 진솔하고 현실적이고 유머러스하고 공감가게 하는 면모가 있다. 사실 이 드라마는 뭔가 뒤틀린, 어린 버전의 <섹스 앤 더 시티>라는 평을, 시리즈가 시작하는 시점부터 들으면서, 사실 주목을 받으면서 시작한 드라마였다. 그건 바로 뉴욕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맨하튼 대신 브루클린으로 옮겨졌고, 이미 자신의 일에서 일정한 성공을 거둔 네 명의 30대 여성 주인공들 대신, 확실한 직업적 성취와 자아실현은 커녕 자기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몰라 갈팡질팡하는 네 명의 20대 여성들이 주인공이기 때문. 그런데 <걸스>는 언뜻 발견되는 이런 외형적인 유사성으로 둘을 연장선에 놓기 힘들 정도의, 전혀 다른 분위기와 유머 코드가 있다. 아마도 깔끔한 웰메이드 드라마를 좋아하는 취향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일지도. (뭔가... 유머가 병맛스럽다.) 하지만 숨기고 싶어도 숨겨지지 않는 각자의 충돌하는 욕망과, 가리려 해도 가려지지 않는 내면의 온갖 찌질함들이 드러나는 방식을 보면서, 때로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조하게 되는 그런 재미가 만만치 않는 희극이다.
연애의 발견 - 한국
물론 올해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한국 드라마는 <미생>이었지만, 나에게는 <연애의 발견>이 가장 재미가 있었다. 물론 방영 당시엔 <미생>도 충분히 재미있게 보았고, 특히 임시완이나 강소라 같은 어린 배우들이 미묘함을 표현하는 연기들이 돋보인 초반부 회차들은 무척 좋았다. 그래도 나는 오랜만에 드라마에서 다시 보게 된 반가운 얼굴 에릭과, 나로서는 믿고 보는 여배우 중 하나인 정유미가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장면들에 괜시리 콩닥콩닥하며, 매주 기대하고 기다려가며 본 드라마였다. 뭐랄까, 형식과 소재 그 자체가 새로웠던 <미생>의 혁신 만큼이나, 이미 너무 식상할 대로 식상해진 '연애'를 드라마의 소재로 삼고도 여전히 새로운 설렘과 재미를 줄 수 있는, 그런 구도가 신선하게 느껴져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선 <연애시대>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고. 연애와 사랑이 소재일 바에는 아예 이렇게 노골적인 혹은 대범한 정공법을 택하는 편이, 훨씬 더 와닿게 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것 같다. 괜히 직업적으로 엄청난 능력자들인 척하면서 실은 일은 뒷전이고 모든 게 '연애'로 귀결하는 드라마들보다, 아예 '연애의 발견'이라는 제목 자체가 시사하듯, '연애'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오히려 그 이면에서 각자의 일에 충실한 프로의 면모를 보여주는 설정이 나름의 반전과 매력이 있었다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그냥 '난 널 좋아해. 마냥 네 곁에 있고 싶어.'만이 아닌, 그 사람이 일을 통해 자신을 충분히 다 표현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성숙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 점이 좋았다고 할까. 그런 와중에 연애 과정에서 나오는 온갖 찌질함과 갈등과 곡절도 놓치지 않으면서. 그리고 "너랑 있을 때 내가 가장 너 같아서."라는 그 대사가 정말 단순하면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사랑을 한다면 나도 어렵고 스스로를 포장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는 상대가 아닌, 그낭 나답고, 나 같아도 부끄럽다거나 미욱하다고 느끼지 않아도 괜찮을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음, 그건 심지어... 생리작용도 포함 ㅋㅋㅋㅋ) 암튼 디비디가 나온다면 꼭 소장하고 싶은데, 출시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긴 어려울 듯.
번외로 꼽을 만한 것은 <삼총사>.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으로 이미 신선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여 화제를 일으킨 바 있는 송재정 작가가 새롭게 선보인 사극. 한국 드라마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태조 이성계, 광해군, 영조-사도세자-정조에 이어, 최근에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소현세자의 삶을, 프랑스 소설 <삼총사>의 구도를 빌어와 접목시킨, 나름대로 흥미로운 구도의 드라마였다. 어찌 보면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을 수 없지만, 적절한 유머와 드라마틱한 사건 전개, 그리고...... 이진욱과 서현진이 코믹함과 달콤함이 적절해 배합된 연기로 풀어낸 소현세자와 강빈의 로맨스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좋았다. 그냥 순전히 나의 평가일 뿐이나, 우리나라 배우들 중 남자친구 연기로 특화된 3대 배우가 있는데, 현빈, 에릭, 그리고 이진욱. ㅎㅎㅎ 얘들이 하면, 막 그냥 좋음. ㅋ
@ 음, 그런데 그러고 보니, 올해는 공과학 드라마나 시대극, 수사물 같은 것 말고 처음으로 현실적인 현대극 세 편을 베스트로 꼽은 듯.
Best 지름
로모 인스턴트
로모그래피에서 나온 인스턴트 (폴라로이드) 카메라. 로모의 특성상 비그넷 효과 등이 들어가서 찍기엔 까다로운 데다, 그나마 예전에 사두었던 폴라로이드 필름들도 다 써 버려서 몇 장 못 찍어 본 터라, 제대로 나온 사진이 없긴 한데, 카메라의 외형은 정말 예술예술! >.<
The Dictionary of Untranslatables
사실 7만원 대 정도였으니 영어권에서 발간된 사전 치고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가격이라곤 할 수 없는데, 이 책의 컨셉에 홀려서 거의 충동구매로 산 책이란 점에서, 그리고 그렇게 산 후의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켜주는 도구로서의) 만족도가 높다는 점에서 '베스트 지름'에 꼽을 만 하다 하겠다. 400여 개의 이른 바 '번역불가능한(untranslatable)' 철학, 문학, 정치 등 분야의 개념어를 알파벳 순에 따라 찬찬히 해설을 붙인 이 작업의 노고 자체가 뭔가 숭고하고 아름다운 느낌이다. 지금의 슬렁슬렁한 성격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일찌감치 생각조차 접긴 했는데, 난 문헌학이라든가 사전편찬을 하는 사람들의 집요함과 치밀함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서, 이런 작업을 보면 항상 경이감이 느껴진다. 헌데 이 책의 또다른 묘미는, 실은 불어 원본이 있고, 그 책은 이른 바 '영어'로 번역이 되지 않는 개념어들을 정리한 사전이었던 것인데, 그걸 영어로 번역을 해낸 결실이 바로 이 책이라는 점이다. ㅎ
iPad Mini Retina + Kate Spade origami case
가격 면에서 명실상부 2014 최고의 지름. 그런 면에선 아이폰6를 같은 해에 사지 못한 게 차라리 다행인 것도 같다. 그래도 아이폰6를 새해엔 어떻게든 손에 넣긴 넣어야 할 텐데... ㅎ
2014 베스트 애니메이션 (신설)
원래도 애니메이션을 워낙 좋아해서 즐기는 편인데, 조카의 자연스러운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보여줄 만한 애니메이션을 물색한다는 핑계로 더 열심히 찾아 보다 보니 올해는 유독 더 많이 본 거 같다. ㅋㅋ
드래곤 길들이기 2
이걸 보기 위해 결국 1까지 찾아 봤던 ㅎㅎ 사실 픽사를 제외한 미국 애니메이션은 좀 뻔하다는 인상을 갖게 돼서 한동안 안 봤었는데,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는 시련이나 차별을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나, 그런 시련이 주인공에게 닥치는 결과가 좀 남다른 편인 것 같다. 뭔가 뻔한 권선징악의 구도와 결말을 피해가는 현실성이 부여된 느낌. 투스리스 캐릭터도 너무 귀엽고, 환상적인 비행 장면도 큰 화면으로 볼 만했다.
레고무비
레고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만들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한, 블럭 장난감으로서의 레고의 특성을 고스란히 살린 섬세한 질감과 조합에다, 귀여우면서도 반전 넘치는 전개, 그리고 귀에 착착 감기는 주제가 "Everything is Awesome"의 멜로디에 중독되어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어네스트 & 셀레스틴
미국 애니메이션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개성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그림풍과 독특한 설정과 서사의 전개가 돋보이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물론 유명한 동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수채화, 혹은 때론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것도 같은 아름다운 그림 자체로도 이미 그 완성도가 상상을 뛰어넘지만, 그 와중에 세상의 소수자들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서사의 깊이까지 더해지니, 단연 최고 중의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 번외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슈퍼배드 2>. 개봉년도는 2013이고, 그 때 보긴 했는데, 작년엔 올해의 베스트 포스팅을 안 했더니 언급을 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았던 터라 짧게나마 언급을. 사실 객관적으로 최고의 애니메이션은 아니라 하더라도, 사실 최근에 본 애니메이션들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슈퍼배드>에 있음. 그건 바로바로 미니언들! <슈퍼배드1>을 우연히 본 뒤, 미니언(졸개들) 캐릭터에 완전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하겠다. 내용적으로는 특히 1편의 경우 늘 선인이 주인공인 통상적인 어린이 애니메이션들과는 차별화가 되게 악당이 주인공이었던 점이 참으로 독특했다. 악당직을 은퇴한 뒤에도 여전히 퉁명스러운 성격이 남아있는 주인공 그루의 매력은 2편에서도 살아 있었고, 무엇보다 미니언을 다시 봐서 그저 좋았다. 우리 집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
2014년의 발견
곽진언.
최근에 '새로운' 가수들을 좋아하게 된 일이 사실상 없는데, 곽진언의 등장으로 정말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 목록에 새로운 이름을 더하게 된 것 같다. 일단 목소리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색이다. 깊이감과 울림이 풍부하되 느끼한 창법을 쓰지 않는 중저음의 남자 가수가 요즘은 은근히 보기 드문데, 간만에 등장해 주셔서 어찌나 좋은지. ㅎㅎ 콘서트하면 꼭 가고 싶고, 음반 내면 꼭 사고 싶은 가수.
Best 여행
일본 간사이 (관서) 지방 여행 - 나라, 교토 & 오사카
연초에 친구의 부탁으로, 그 친구의 친구의 대학 졸업 작품의 영화 시놉시스와 연출의도 영문 번역을 해주었다. 그때만 해도, 그 친구의 친구도 다소 숫기가 없는 성격이고, 나 역시 초면인 사람들에겐 그런 편인지라, 서로 직접 이메일을 주고 받지도 않고, 오로지 내 친구를 통해 일만 주고 받았다. 그러다가 우리가 서로 친해져서 자주 다 같이 밥도 같이 먹고, 친구의 친구의 그 작품이 일본의 '나라 국제 영화제'에 경쟁작으로 초청을 받게 되면서 영문 자막 번역까지 내가 마저 하게 되었다. 그러다 심지어 나까지 여행도 할 겸 그들을 따라 영화제에 가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쨌거나 어릴 때 가본 이후로 간사이 지방엔 가본 적 없었던 터라, 여행도 할 겸 나라를 거처 교토와 오사카까지 구경하고 돌아왔는데, 성격도 잘 맞고, 이야기도 잘 통하는 친구들과 가서, 심지어 관광지만이 아닌 구석진 재미난 동네들까지 잘 아는 데다 일본어도 잘하는 친구와 다니다 보니, 재미가 남달랐던 여행이었다. 오사카에서도 관광지가 아닐 뿐 아니라, 도시 정화 정책이라는 것에 따라 국가나 시에서는 없는 셈 취급하려는, 그러나 노동자 계층이나 노숙자들이 여전히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신기한 동네도 구경하고, 교토에서도 다소 외진 동네에 간판조차 크게 달려있지 않아 아는 사람들 아니면 찾기조차 힘든 작은 카페에서 특이한 커피를 맛보기도 하고, 무엇보다 교토대학 내 학생 자치권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독특한 기숙사인 요시다료를 둘러볼 수 있었던 것 등 관광책자에서 찾아 봐선 할 수 없는 여러 가지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 (기억력이 점점 심각하게 감퇴되므로 물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ㅋ)
2014 워스트
<무드 인디고> - 으악! 미셸 공드리 영화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 영화.
워스트까지 꼽을 정도는 아닌지 모르겠는데, 기대에 비해 실망이 컸던 탓에 이 카테고리에서 김동률의 2014년 신보 <동행>을 언급은 하고 넘어가야 할 거 같은 기분이다.
그녜가 다녀간 모든 자리마다 풀이 돋지 않는 이 지경의 나라... 그 기간이 아직도 3년이 남았다는 것.
2014 기억에 남는 일
반야심경 해설서 번역
아직 책으로 나오진 않았고, 내 작업은 초고 번역이었던지라, 감수는 다른 사람이 했지만, 그래도 생애 처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좀 제대로 된 책을 번역해 본 일이었다. (그 전에 사실 알바로 어떤 도록 번역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건 돌이켜 볼수록 도리어 내 이력에서 삭제하고 싶은 일이다. 이름이 책에 박히지 않았던 것이 차라리 안도감이 드는 그런 일이었다는. ㅋㅋㅋ) 뭐, 이것과 더불어 나의 친한 지인의 논문을 번역해 준 것이 영문 학회지에 실리기로 결정된 것 역시 책 번역과 연장선상에 놓을 수 있는 일일 듯.
김연아 팬미팅 참석
올댓스케이트 쇼 가운데서도 가장 비싼 키스앤크라이 석을 사야만 갈 수 있는 연아의 팬미팅. 올해는 친구의 친구가 표를 샀는데 둘 다 못 가게 된 바람에, 친구가 나에게 혹시 갈 생각 있냐고 청해서 운좋게 생전 처음으로 팬미팅이라는 데를 가 보았다. 일찍 가지 않아서 생각보다 가까이서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쿨하고 털털하고 재미있는 그녀의 매력을 현장에서 처음으로 느껴봤던 기회. 훗-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준우승으로 풀죽은 메시의 얼굴
이거 왜 기억에 남는 거야?! 세상에서 제일 돈 잘 버는 축구 선수가, 어쨌거나 축구로는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일이 없을 그가, 자신이 출전해서 자국에 월드컵 우승 하나를 끝내 안겨 주지 못한 것에 시무룩해 하는 그 표정이, 내 눈에 짠하고 안쓰러워 보였다는 게 정말 웃기는 일이지만, 그렇게 웃기는 일이라 더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2014년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팬질의 재발견과 연애세포의 재확인
김연아 팬미팅도 몇 년의 팬질 끝에 처음으로 가본 데다, 심지어 슈퍼스타 K6의 우승자와 준우승자인 곽진언과 김필의 미니콘서트에 가질 않나, '이동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프로그램 속 '김혜리의 주간영화' 코너를 '빨간책방'에서 공개방송 녹음한대서 김혜리를 보기 위해 처음으로 그곳까지 찾아갔다. (심지어 책 챙겨가서 사인까지 받음! ㅁㅎㅎ) 팬질을 이렇게까지 해 본 건 정말 중고생 때도 안 해 보고, 난생 처음인 것 같다. 나 늙어서 미쳤나? ㅋ 암튼 재미있는 경험을 해 본 한 해였다.
그리고 사멸한 줄 알았던 연애세포가 아직도 약간은 남아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해였다. 뭐 '약간' 남아있어서, 연애에 그다지 제대로 발동이 걸리거나 큰 사건이 일어나거나 하진 했지만, 죽진 않았으니 그래도 조만간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2015년 계획이 있다면...
한국 고전 작품의 영문 번역.
웃기는 일이지만, 고등학교 때 내가 번역이라는 걸 하게 될 거라고 생각도 안 했던 시절에, 무슨 영어 경시대회를 나가서 박경리의 <토지> 같은 고전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멋모르고 한 적이 있었고, 십 년쯤 전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영문으로 번역하고 싶다고, 우스개 반 진담 반으로 말했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말의 힘이거나, 내 무의식 속에 나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그런 의지 같은 게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뭔가 '번역'이 조금씩 내 업이 되어 가는 느낌이 든다. (작년에 이어 올해 초에도 '고전'과 다소 연결된 면이 있는 인문서 번역 (분량이 많아서 단독은 아니고, 공역으로 하게 될) 일이 들어왔다.
그런데 정말로 기회나 능력이 제대로 생긴다면, 한문으로 된 한국 고전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 보고 싶다. 번역가의 일이 연구자나 학자보다 못하다고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닌데, 학자로서 어떤 의미있는 발언을 하기엔 난 기본적으로 너무 학문적인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고, 그래서인지 성격상 연구자의 길은 전혀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공부를 오래 하면 할수록 자꾸 하게 되었다. 반면 번역은 어릴 땐 하기 싫었는데, 해 볼수록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일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쩐지 어느 시공간에서도 내가 중간에 끼어 있는 존재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면서, 두 언어를 매개하는 중간자의 입장이라는 것이 왠지 영 이물감이 들거나 거부감이 생기지 않을 뿐더러, 뭔가 점점 더 좋아지기조차 한다. 상반기의 그 작업을 마친 뒤에는 좀더 본격적으로 고전 작품을 번역하는 길로, 아니면 최소한 그런 쪽으로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길로 나의 진로(?) 방향이라도 잡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