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민주화 운동이나 민주화 투쟁이란 흑백사진의 기억이다.
그것은, 전두환의 퇴진을 요구하며
전국 대학교수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을 때
그에 동참한 (혹은 앞장선 이들 중 하나였던) 아버지가,
당시 재직 중이던 대학의 어떤 동상 아래에서
아마도 뭔가 선동을 하는 듯한 자세로 찍혔던
흑백사진 한 장에 집약된 것이었다.
전두환 집권 당시 (그때 명칭으로) 국민학생이었던
나에게 군부니 독재니 하는 말이 가진 의미란,
기껏해야 교과서 맨 앞장마다 들어가 있던 국민교육 헌장과
별로 잘 생긴 것 같지도 않은 어떤 대머리 아저씨의 사진 정도였고,
그런 시절의 내게 민주화 운동이란 곧,
아버지가 찍힌 그 한 장의 사진이었다.
대학시절 운동권이었다고 했던 아버지는
박사를 받고 교수로 취직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사진을 찍히기도 전에 미리, 곧 직업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말씀을 엄마에게 하셨던 것도 같다.
심하게 다혈질이다 싶었던 성격의 아버지는
짐작컨대, 아마도 운동의 영역에선
상당히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대의 운동은 과연 그런 것을 요구했다.
나를 때려 죽이려고 하는 자들에게,
어디 한번 죽여 볼 테면 죽여 봐라,
라고 바득바득 대들 수 있는 것.
내 목숨 따위 하나 없어져도
너희들이 우리를 죄다 몰살할 수는 없을 것이라
온힘을 다해 으름장을 놓는 것.
결국 그런 개인들이 뭉치고 뭉쳐,
무너지거나 흩어지지 않은 채 성취한
민주주의의 시대 속에서,
민주화 운동을 그저 흑백사진으로만 기억해도 좋을 시절을 살아온 나는
과연 집안 어딘가에 남아 있기나 할는지 알 수조차 없는 그 사진을
요즘 들어 이따금씩 떠올린다.
그리고는
군부가 아닌 자에 의한 독재가 자행되는 시대,
납치나 감금, 노골적인 고문이나 무력에 의한 살상을 저지르지 않는 독재자가
정권을 손에 쥐고, 마치 수 년에 걸쳐 자신의 병든 아이를
소금으로 독살했다는 어떤 어미에 관한 기괴한 이야기처럼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사람들을 무력화하고 질식사시키는 것 같은 시대에 이루어지는
민주화 운동과 사람들 사이의 연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그 독재의 압박이 매일 같이 총천연색의 UHD TV 영상으로
우리를 서서히 조여 들어오는 시대를 통과하는
지금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30년쯤 후에 기억할 민주화 운동의 사진 한 장은 어떤 것이어야 할지에 대해
요즘 들어 자꾸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