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수사물은 전형적으로 미국 수사물과는 분위기나 속도감이 영 다르다. 영국인 특유의 건조한 유머가 있긴 하지만코미디적인 장르를 잘 결합하지 않고, 주인공의 성격이 우울하고 분위기가 아주 음울한 경우가 많다. 예전에 포스팅했던 <월랜더>가 그랬고, <브라운 신부>(Father Brown)이나 <화이트채플>(Whitechapel)도 그런데, 전체적으로 음악이나 분위기가 다소 어두운 느낌이고, 그로 인한 건지는 몰라도 속도감도 더 느리게 느껴진다. 그나마 <셜록>이 추리를 진행하는 속도감 면에서는 다소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는 그래도 미국 드라마와는 다르다.
사실 몇 년 전에 <셜록>의 공백으로 인한 공허함을 달래려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월랜더>를 보고 시적인 풍경과 분위기에 홀려서 한동안 보긴 했지만, 일단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한번 이상 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마지막 시즌은 이야기가 너무 산으로 간 듯해서 씁쓸하기조차 했다. 물론 이야기가 산으로 간 것으로 치면 <셜록> 시즌4를 능가할 것이 없겠지만. 열심히 보던 드라마들이 이렇게 되는 건 정말 실망스럽고도 슬픈 일이다.
어쨌든 (추리물 중독자로서)다시 이것저것 찾아 보던 와중에, 작년엔가 쌘 양의 추천으로 보게 된 영국 드라마 중 하나가 <Endeavour> (인데버). '노력'이나 '분투'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긴 하지만,많은 미드나 영드가 그렇듯, 이 드라마의 제목도 (의외로) 주인공 이름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름이 지나치게 특이하고 창피한 탓인지, 주인공은 이름 대신 모스(Morse)라는 성으로 주로 스스로를 소개한다.
이 작품에는 나름대로 재미있는 탄생 비화가 있다. 이 드라마 이전에,원래 중년의 모스 경감을 주인공으로 한 콜린 덱스터의 소설이 1987년부터 2000년까지 <Inspector Morse>라는 제목의 TV 드라마로 방영이 되었었다. 그런데 이드라마가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모스 경감의 파트너이자 후배였던 로비 루이스(Robbie Lewis)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시리즈 <Lewis>가 제작되어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방영되었었고, 이후엔 젊은 시절의 모스를 등장시킨 프리퀄인 <Endeavour>가 2012년에 마침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간 너무 바쁘기도 해서 시리즈 4가 올해 초에 나온 것을 알고도, 띄엄띄엄 끊어서 집중하지 못한 채로 보기 싫어서 미루어 두었다가 휴일에 마침내 다 보아 버렸는데, 이미 아쉽다. 괜히 되돌아가서 지난 시리즈들까지 다시 보고 있다. 보통 한 시리즈 당 네편밖에 하지 않는데, 내년에 예정된 시리즈 5는 그래도 여섯 편이 나온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등장인물이나 서사일수록 프리퀄 같은 것이 제작된다고 하면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는데, 현재까지 시리즈 4가 방영되었고 내년에 시리즈 5방영이 예정되어 있는 <Endeavour>는 그런 면에서 성공적인 평가를 받는 편에 속한다. 일반적인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일단딱히 외모가 동안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도 (이마 주름이 엄청 심하다), 뭔가 분위기만은 여전히 방황하고 반항하는소년 혹은 청년스러운 느낌이 있는 주인공 모스 역의 숀 에반스 (Shaun Evans)의 매력이 이 드라마의 나름대로 대중적인 성공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나의 선택에는 당연히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ㅋㅋ 어쨌든 분명히 지적이고 명민하긴 하나, 사교적인 능력이 전혀 없고 다분히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모스의 성격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셜록과 비슷한 면이 있긴 하지만, 모스의 인상이 좀 더 풋풋한 느낌이 있다.
모스는 특히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고, 집에서 클래식 음반을 듣는 것이거의 유일한 취미 활동인데, 그래서 그의 음악적 지식이 풍부하게 활용된 시리즈 1의 두 번째 에피소드였던"Fugue" (푸가)가 특히 좋은 평을 받았다. 그렇게 하나의에피소드 전체가 음악과 관련되지 않더라도, 음악이나 소리와 연관된 모스의 지식이나 재능을 활용해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내용이 들어간 에피소드가 재미있기는 하다.
그리고 시리즈 3에 대해서는 그간의 <Endeavour>의 전체적인 흐름과 많이 반한다고 하여 호오가 좀 갈리는 면도 있는 것 같은데,개인적으로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오마주랄지, 패러디랄지 싶은 첫번째 에피소드 "Ride"가 재미있었던 건, 그냥 한때의 문청 혹은 영문학도의 어쩔 수 없는 허영인가 싶기도. ㅎ 뭐, 이런 작품 자체를 문학도들이 쓰는 경우가 많아서일테지만, 수사 과정에서문학과 관련된 인용이나 전거가 등장하면 반가운 것은 사실.
이 드라마가 가진 또 한 가지 매력이자 숨은 재미는 서사의 배경이 되는 영국 옥스포드에서 실제로 촬영을 해서 그곳의 거리와 풍경이 끊임없이 등장한다는 점. 물론 그래 봤자, 비슷비슷한 거리 풍경이나 대학가 풍경이고, 주로 살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란 점이 되려 감점 요인이라고까지 할 수도 있겠지만, 보고 있으면 자꾸 가고 싶어지긴 한다.
[#M_모스 역의 숀 에반스|접기|
이 배우가 묘한 것이 다른 역할을 한 사진들을 봤는데, 옷차림도 머리도 다른 시대물은 다 잘 안 어울린다. 아주 본격적인 역사 시대극도, 더 현대물도. 딱 60-70년대의 인물 같음. ㅋㅋ
*역시 어쩔 수 없는 드덕. 2년 만에 한 첫 포스팅이 결국 드라마 이야기라니. ㅋㅋ 난 정말 드라마가 없는 세상 생각도 하기 싫다. 다른 것도 이것저것 끄적여 보았는데, 어떻게 해도 글이 더 나가질 않더라는. 근황 이야기나 다른 소재/주제에 관한 이야기는 퇴직(?) 후 일상이 좀 더 궤도에 오른 뒤에 다시 써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