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속편 유감

review/drama 2017. 8. 17. 10:47

 

작년에 가장 인상적으로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시그널>과 <청춘시대>였다. 나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기본적으로 이 드라마를 본 여러 시청자들에게서 고르게 호평을 받았고, 그래서 시즌 2 제작 요청도 은근히 많았던 것으로 안다. 그런 와중에 올해 <청춘시대>의 시즌 2 제작이 결정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러나 역시(?) 우려했던 대로 스케줄 문제로 인해 원래 섭외되었던 배우들이 전부 그대로 배역을 맡지 못하는 불완전한 시즌 2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요배역 한 명의 경우 캐릭터는 그대로인데, 배우가 바뀌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사실 바로 이런 점이 내가 우리 나라 드라마들의 시즌 2 제작을 별로 환영하지 않는 이유다. 물론 한때는 한국 드라마들은 왜 항상 일회성으로 끝나고, 시즌제로 제작이 되지 않을까,에 대해 불만을 가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시즌제도 가능해진 환경이 된 현재는 우리 나라에서는 다른 이유로 시즌제가 어려운 환경임을 거꾸로 실감하게 된다. <청춘시대> 같은 드라마가 잘 보여주고, <시그널>이나 (현재 시즌2 요청이 역시나 강력한) <비밀의 숲> 같은 드라마를 봐도 그렇고, 아주 단순하게 작품, 특히 인물의 연속성을 위한 배우들의 섭외 가능성을 봤을 때, 그냥 불가능한 것 같다.

 

사실 <청춘시대>의 경우에는 한예리나 윤박 정도를 제외하고는 별로 유명한 배우조차 없는 편이었는데도, 오히려 한예리는 시즌2에 참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배우들이 참여가 불가능해지면서 서사의 전개 자체를 바꿔야 하는 선택이 불가피해진 상황이 눈에 훤히 보인다. 작품의 완성도 자체를 위한 서사적 자유를 누리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불참으로 인해 억지로 바꾸는 이야기의 흐름과 등장 인물의 첨가가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가 상당해 의문이다.

 

이 정도 배우들만 해도 그런데, 김혜수, 조진웅, 이제훈에다 배두나, 조승우 같은 배우들이 주연을 했던 <시그널>과 <비밀의 숲> 정도로 가면, 그냥 시즌 2는 차라리 신기루에 가깝다고 본다. 물론 시즌2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만들 수야 있겠지만, 어차피 같은 등장인물들이 연속성을 가지고 나오지도 못하는데 시즌 2를 만든다는 게 굳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쯤 되면 그냥 원작 드라마가 가졌던 명성을 등에 업고, 어설픈 복제품을 만드는 것에 불과할 뿐.

 

게다가 우리 나라 시즌 2 드라마들이 가지는 또 다른 문제가 이번 <청춘시대> 사태에서 한번 더 보였었는데, 그건 바로 일단 원작의 인기로 인해 시즌 2를 진행하게 되면 갑자기 원작에선 섭외할 수 없었던 좀더 지명도 높은 배우/연예인들이 합류하게 되는 일이다. 이번 경우엔 그것이 온유였다. 그의 등장이 이 원작이 가졌던 개성에 과연 얼마나 힘을 실어주는 선택이었는지는 여러 모로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내가 <청춘시대>를 좋아했던 이유는, 마침내 우리 나라 드라마에도 여러 가지 면모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다양한 여성 인물들이 등장했다는 점이었다. 로맨스의 요소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솔직히 20대 여성 다섯 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에 로맨스가 아예 배제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가식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도 여성 인물들 각자의 개성과 (서툴면 서툰 대로의) 연애 방식과 시련 등이 고스란히 담겼었다.

 

헌데 비록 연기자로서는 아직 신인이라고는 해도, 온유처럼 지명도가 있는 남자 연예인이 등장하는데, 드라마 속에 현실성이 배제된 미화된 로맨스나 그 배우를 멋있어 보이게 하는 불필요한 장면이 추가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게 과연 이 드라마의 시즌 2에 부합하는 선택일까가 의문이다. (드라마 외적인 그의 최근의 불미스러운 사건은 명확하게 진위 여부가 밝혀지진 않았으니 일단 차치해 두더라도 말이다.) 이런 것도 일종의 속편 징크스 (sophomore jinx)인지 모르겠지만, 시즌 2를 제작해서 잘 된 한국 드라마가 딱히 떠오르진 않는 걸로 봐서 아무래도 우리 나라 드라마들이 시즌제로 가는 건 무리가 있는 것도 같다. (초기 OCN의 수사물들 정도가 예외라고 할까?)

 

아무튼 제작진들이 어설픈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난 원작의 배우들이 그대로 등장하지 않는 한 <시그널>과 <비밀의 숲>의 시즌 2는 오히려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미 여운을 남기고 잘 마무리 된 작품들에 굳이 오물을 뒤집어 씌우는 일은 부디 없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papyrus